[레트로마니아 ;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 - 사이먼 레이놀즈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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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마니아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
사이먼 레이놀즈 지음 | 최성민 옮김 | 작업실유령 | 2017년 02월 28일 출간 | 448P
사이먼 레이놀즈의『레트로 마니아: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워크룸,2014)는 머리말의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한다. “바야흐로 팝이 레트로에 환장하고 기념행사에 열광하는 시대다. 밴드 재결성과 재결합 순회공연, 헌정 앨범과 박스세트, 기념 페스티벌과 명반 라이브 공연 등등으로, 왕년의 음악은 해가 갈수록 융숭한 대접을 받는 듯하다. 혹시 우리 음악 문화의 미래를 가장 크게 위협하는 건… 자신의 과거가 아닐까? 지나치게 비관적인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상상하는 각본은 대재앙이 아니라 점진적 쇠퇴에 가깝다. 팝은 그렇게 종말을 맞는다.”
모든 종말은 극적으로 오지 않는다.
T.S. 엘리어트의 시「텅빈 사람들」의 첫 연과 마지막 연 전체를 보자.
“우리들은 텅 빈 사람들/우리들은 짚으로 채워진 사람들/짚으로 채워진 머리를/서로 기대고 있는. 아!/우리들이 모여 수군대지만/그 메마른 목소리는/소리도 없고 의미도 없다.// 이것이 이 세상 종말의 방식/이것이 이 세상 종말의 방식/이것이 이 세상 종말의 방식/팡 소리가 아니라 훌쩍훌쩍 울면서”(이 시를 번역한 이창배는 ‘팡’이라고 번역했으나 다른 번역본에는 ‘쾅’이다). 사이먼 레이놀즈는 팝이 갑작스럽게, 극적인 선언을 통해 종말을 맞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 쇠퇴를 맞는다고 말한다. 엘리어트의 시구처럼 모든 종말은 시부저기 내 발 밑을 허문다.
이 책이 나온 2011년, 영국과 미국의 대중음악계는 온통 레트로 천지였다. 한때 팝의 신진대사는 에너지로 넘쳤고, 그랬기에 60년대의 사이키델릭과, 70년대의 포스트 펑크(Punk), 80년대의 힙합, 90년대 레이브처럼 미래로 솟구치는 시대감각을 창조할 수 있었다. 2000년대는 다르다. 2000년대가 진행할수록 앞으로 나가는 감각은 점점 엷어졌다. 2000년대 들어 팝은 아카이브에 저장된 기억이나 묵은 스타일을 빨아먹는 레트로 록과 같은 과거로 북적이게 되었다. 2000년대는 자신에 충실하기보다 지난 여러 시대가 동시에 펼쳐지는 시대가 됐다. 이런 팝 시간의 동시성은 역사를 지워버리는 한편, 현재 자체의 독자성과 감수성을 좀먹는다.
레트로 붐을 타고 2008년 재결성 투어를 가졌던 당시의 폴리스 멤버들
“21세기 첫 10년은 미래로 넘어가는 문턱이 아니라 ‘재’ 시대였다. 2000년대는 접두사 ‘재-’(再, re-)가 지배했다. 재탕, 재발매, 재가공, 재연의 시대이자 끝없는 재조명의 시대였다. 해마다 기념행사가 넘쳤고, 그에 맞춰 평전, 회고록, 록 다큐멘터리, 전기 영화, 특집호가 나왔다. 그런가하면 재결합한 밴드는 계좌를 충전하거나 더 부풀리려고 재결성(폴리스, 레드 제플린, 픽시스 등등 끝이 없다)하거나 음반 활동을 재개(스투지스, 스로빙그리슬, 디보, 플리트우드 맥,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등등)했다. 늙은 음악과 음악인만 아카이브 자료나 갱생한 모습으로 되돌아온 게 아니다. 2000년대는 맹렬한 재활용시대이기도 했다. 흘러간 장르는 재탕 또는 재해석 됐고, 빈티지 음원은 재처리되거나 재조합됐다. 젊은 밴드의 팽팽한 피부와 상기된 볼 뒤에는 그윽하게 늙은 아이디어의 회색 살이 있었다.”
레트로retro의 사전적 의미는 ①재유행 ②복고풍의 ③소급하는, 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단어의 문화적 의미는 매우 복잡하다. 문화라는 자장 속에서 저 단어는 음악, 의상, 디자인 등에서 페스티시와 인용을 통해 의식적ㆍ창의적으로 표현된 지난 시대의 양식에 대한 찬양 혹은 재현을 뜻한다.엄밀히 말해 레트로는 예술애호가, 감식가, 수집가 등의 거의 학문적인 지식과 날카로운 아이러니 감각을 갖춘 사람의 몫이다. 그러나 오늘날 레트로는 훨씬 넓은 의미에서, 비교적 최근에 흘러간 대중문화라면 뭐든지 가리키는 말이 됐다.
그룹 제네시스의 리더였으며 탁월한 싱어송라이터인 피터 가브리엘의 80년대 젊은 시절 모습
레트로와 역사주의는 구분되어야 한다. 역사주의는 훨씬 오래 전을 돌아보는 반면(예컨대 빅토리아 시대), 레트로는 살아있는 기억에서 유행한 스타일을 개작하고 개조한다. 다시 말해 역사주의는 학술적 접근을 통해서만 소급가능하다면 레트로는 나의 10대 시절의 기억만으로도 재현과 주목이 가능하다. 2011년 MBC에서 방송한 <나는 가수다>가 그렇다.
1980년대 중반부터 영국과 미국의 주요 음악잡지와 신문에 음악평론을 썼던 지은이는, 자신이 가장 기민하고 의식적인 펜으로 지냈던 지난 세기 말을 회상하면서 팝과 락에서 예술적 독창성을 향한 요구가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사라지기 시작한 때가 1977년 이후부터라고 말한다.이때만 해도 케이트 부시ㆍ폴리스ㆍ데이빗 보위ㆍ피터 가브리엘 같은 아티스트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 만들겠다는 욕심을 보이곤 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부터는 많이 들어본 음악을 만들겠다는, 나아가 그런 음악을 완벽하게 마지막 디테일까지 정확하게 만들겠다는 충동이 점점 완강히 대두했다. 그 계보는 지저스 앤드 메리체인ㆍ스페이스맨3ㆍ프라이멀 스크림에서 시작해 레니 크래비츠ㆍ블랙 크로우스ㆍ오아시스를 거쳐 화이트 스트라이프스ㆍ인터폴ㆍ골드프랩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강점은 “모방할만한 양식을 큐레이션하는 솜씨”에 있다.
독특한 보이스와 음악세계를 보여주었던 개성만점 싱어송라이터 케이트 부쉬
영국과 미국의 대중음악계에서 ‘큐레이터curator 아무개’라는 유행어가 침투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부터다. 지은이는 이 용어가 유행을 선도하는 최신 음악가들이 미술관ㆍ갤러리가 교류하는 일이 늘면서 미술계에서 흘러들어온 관행이라고 말한다. 큐레이터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자료의 수집, 보존, 관리, 전시, 조사, 연구, 홍보 및 기타 이와 관련되는 전문적 사항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음악인들이 ‘큐레이팅’처럼 고상한 용어를 쓰는 유행은 미술관 운영이나 전시 기획에 필요한 기술이 밴드의 음악을 형성하는 데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을 함축한다. 미술계에서 큐레이터의 위상이 꾸준히 격상해서 스타 큐레이터가 생긴 지 오래다. 이 현상이 대중음악계로 들어오면서 큐레이터는 크리에이티브creative를 대체하거나 그보다 더 중요한 창작행위가 되었다.
창조보다 선별과 수집이 더 중요한 창작행위가 되어버린 현재의 상황은 현대인이 노스탤지어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될 만큼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의 노스탤지어는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정보와 자료를 언제든지 손쉽게 복원할 수 있는 디지털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이 결합한 덕분에 아티스트는 더 멀고 넓은 곳에서 영향과 원재료를 거둘 수 있을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아날로그시대의 일상은 (새 소식과 신보 발매를 기다려야 했으므로) 천천히 움직였지만, 문화 전반은 전진하는 듯했다. 디지털시대의 일상은 극도로 가속화해서 거의 즉시성(다운로드, 끊임없는 페이지 갱신, 신경질적인 훑어보기)을 띠게 되었지만, 거시적 수준에서 문화는 정체되고 교착한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이처럼 속도와 정지가 모순적으로 결합한 상황에 처해있다.” 레트로 붐은 알랭 바디우가 현대 문화의 특징으로 꼽은 ‘과열된 불임증’을 닮았다.
90년대 초반 복고적인 록 사운드를 더할나위없이 멋지게 재현하며 성공을 거두었던 두 록 뮤지션의 당시 모습 (위 : 레니 크래비츠, 아래 블랙 크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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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독특한 보이스와 음악세계를 보여주었던 싱어송라이터 케이트 부쉬.jpg (File Size: 149.7KB/Download: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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