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K-POP) 대한민국 대중음악과 문화 기억상실증과 경제 혁신] - 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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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K-POP) 대한민국 대중음악과 문화 기억상실증과 경제 혁신
*존 리 지음 | 김혜진 옮김 | 소명출판 | 2019년 01월 10일 출간 | 365P
케이팝을 이야기할 때 ‘케이팝에 한국적인 것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매번 따라붙는다. 학자들은 본래성이라는 기준으로 민요와 대중음악을 양단한다. 예컨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한 민족 전체가 천재성을 발휘한 유기적ㆍ집단적 창작물이 민요라고 생각했다. 그처럼 민족이라는 ‘본래성’으로부터 태어난 민속음악은 시간을 버티고 살아내며 그 민족의 흥망과 성쇠를 같이한다. 반면 대중음악은 의도적으로 제작된 산업발명품이다. 이런 이분법은 대중음악에 지나지 않는 케이팝에 본래성이 있느냐고 묻는 것을 쓸모없게 한다. 그렇지만 대중음악이라고 해서 과연 본래성이 없을까? 컨트리ㆍ블루스ㆍ로큰롤ㆍ재즈ㆍ힙합에는 미국인의 영혼이 담겨있다. 질문은 다시 시작된다. 케이팝에 본래성, 다시 말해 한국적인 것이 있는가?
『케이팝: 대한민국 대중음악과 문화기억상실증과 경제 혁신』(소명출판, 2019)을 쓴 존 리는 대중문화연구나 음악과 아무런 연관 없는 사회학 이론가이다.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디아스포라 사회학’을 전개하고 있는 지은이는 2010년부터 한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하여 2015년 본서를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한 민족이 지나온 시기마다 거기에 맞는 소리풍경(soundscape)이 있다고 말한다.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은 처음 천 년 동안 고유한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조선시대의 소리풍경은 이러했다. “유교, 지배층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범주는 정악(정통음악)이었다. 지식인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음악 교육을 필수 양반 교육 과정에 집어넣었다. 예술음악도 권력의 소리인 지배층음악이었다. 정악과 지배층 음악 전반에 존재하는 아폴론적 미덕과는 반대로 형식과 지성보다 표현과 감정을 중시하는 디오니소스적 특징이 민속음악(민중음악)을 지배했다.” 지배층인 양반들이 정악을 통해 자기 수양을 했다면, 평민들은 정악보다 더 다양한 장르의 민속음악을 즐겼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그 시절에는 신분과 음악이 사회조직상으로 일치했다.
조선시대의 소리풍경과 당대의 유럽 고전음악은 다른 게 있었다. “유럽 낭만주의 자율음악 또는 절대음악 개념과는 반대로 한국 전통음악은 국가 제례음악이든 농경 축제용 농악이든 사회문화 배경과 얽히고설킨 상태였다. 조용히 사색하며 유럽 고전음악을 듣는 종교에 가까운 행위, 이야기나 춤을 곁들이지 않은 음악 연주, 배경에 매이지 않은 자율음악 개념 같은 관행과 사상이 국악에는 하나도 없었다.” 정교한 악보가 있는 양반 음악조차도 즉흥에 기반 했다.
악보에 기반한 ‘음악’이라는 개념은 서양 음악이 도입되면서부터 생겨났다. 음악이라는 한국어가 원래 ‘양악洋樂’ 즉, 서양음악과 동의어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농경생활이 쇠퇴하면서 농악이 사라졌듯, 유교 제례음악과 유교식 사회질서도 함께 쇠퇴했다. 대한민국 현대인에게 한국 전통음악은 낯선 소리풍경이다. 이들 삶에는 리듬앤블루스와 레게, 벨칸토 오페라와 피아노 소나타가 포함되어 있다. 반대로 국악은 상상속 박물관이며 그마저도 잘 갈 일이 없는 것이다.” 젊은 국악인들이 서양 소리풍경에 젖은 현대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게 바꾸어놓는 작업으로 인기몰이를 하기도 하지만 거기에도 본래성은 없다. “일본 부모들은 자식을 교양 있게 키우려면 (특히 딸들에게) 반드시 고토琴 같은 일본 전통악기 교육을 시켰지만, 이와는 달리 대한민국 부모들은 대개 딸들에게 한국 전통악기가 아니라 서양 것인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1885년 미국 개신교 선교단이 들어오고, 1920년대 중반부터 일본을 통해 본격적으로 유행가가 인기를 얻으면서 한반도에서 천 년 동안 구축된 고유한 소리풍경은 사라졌다. “20세기 초 조선인들에게 생경한 음악은 유럽음악이었어도 결국 한반도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음악은 국악이었다. 그리고 규범이 된 음악은 대중음악이었다.
한국 전통의 소리풍경은 일제 지배를 받던 시절 가장 크게 바뀌었고, 해방이 되고 미국 대중문화가 들어오면서 다시 한 번 바뀌었다. “해방 직후 나온 가수들은 대부분 대놓고 모방을 했고, 이름부터 모방으로 시작했다. 1945년 이전 미국 대중음악을 잘 아는 조선인은 거의 없었을 터다. 그러나 1960년대 대한민국 도시인 중에는 팻 분이나 패티 페이지, 도리스 데이, 냇 ‘킹’ 콜 등을 대충이라도 아는 사람이 꽤 있었다. 휘황찬란한 미국 대중음악계에 빠져 빅밴드 재즈나 가슴 아픈 발라드를 듣는 청년들도 있었다.”
한국 대중가요에서 본질적인 것을 가장 따졌던 사람은 박정희다. 그는 1960년대 트로트의 인기를 식혔으며, 1970년대 초반에는 록 음악이 부상하지 못하게 잠재웠다. 같은 시기에 포크음악도 탄압을 받았다. 트로트는 너무 일본풍이었고, 록은 자유의 감각을 퍼뜨렸고, 포크음악은 반정부와 동일시 됐다. 박정희는 불건전가요를 탄압한 뒤 일제의 문화정책을 연상하게 하는 조치로 건전가요를 장려했다. 하지만 그가 작사ㆍ작곡했다는 <새마을노래>는 일본식 5음계에 충실했고, <나의 조국>은 전시 군국가요를 되살린 곡이었다.
지은이는 “대한민국에서는 대중문화가 전통을 대신했다”라면서 동시에 “케이팝에 붙은 ‘케이K’는 한국 문화나 전통보다 오히려『자본론Das Kapital』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케이팝은 소비자를 만족시키려는 대한민국 문화 산업이 낳은 결과물이다. 여기에 최우선인 문화나 미학, 정치 또는 철학 안건은 없으며, 관련된 어떠한 포부도 없다. 최소한 의도 면에서 케이팝은 예술이나 미, 숭고함, 초월을 추구하지 않는다. 케이팝이 하는 일은 그저 사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똑같은 문화 산업이면서도 컨트리ㆍ블루스ㆍ로큰롤ㆍ재즈ㆍ힙합은 어째서 본래성의 음악인가? 해답은 “수출 지향성 산업인 케이팝”의 특수성에 있다. 컨트리ㆍ블루스ㆍ로큰롤ㆍ재즈ㆍ힙합은 내수만으로도 존립이 가능하지만 케이팝은 그렇지 못하다. “문화 산업이 실체와 내용 면에서는 자동차 산업이나 휴대전화 산업과 전혀 다를지 몰라도, 이런 의미에서는 세 산업이 다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며 각 산업은 나름대로 부단한 전통 파괴에 기여한다.”
현재 K-Pop의 대표적 선두주자인 방탄소년단(BTS). 미국시장을 포함한 전세계 팝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함으로서 K-Pop의 수출산업적 비전을 극대화시켰다.
* 저자인 존 리는 한국계 미국인이며 UC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중에 있습니다. 현재 금융 투자관련 컨설턴트로 세간에 유명한 존 리와는 동명이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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