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 - 히사이시 조
- Johnk
- 조회 수 273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
히사이시 조(Hisaishi Joe) 지음 | 이선희 옮김 | 이레 | 2008년 01월 10일 | 199P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이레,2008)에서 히사이시 조는 자신의 경력을 중심으로 예술과과 인생론을 함께 펼친다. 그의 이름이 낯설 독자도 있겠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에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이라면 히사이시 조의 이름을 모를 리 없다. 그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후, <천공의 성 라류타>ㆍ <이웃집 토토로>ㆍ <원령공주>ㆍ <붉은 돼지>ㆍ <샌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든 작품에서 음악을 담당했다. 또한 그는 기타노 다케시의 <소나티네>, <하나비>,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키즈 리턴>, <기쿠지로의 여름>, <브라더>의 영화음악을 맡았다.
네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던 히사이시 조는 일본 국립음악대학을 졸업했다. 1950년생인 그는 대학 시절부터 서른 살까지, 현대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존 케이지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가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은 채 무대를 퇴장하는 <4분 33초>라는 음악을 관객에게 들려(?)주었고, 프랑스 출생의 유고슬라비아 작곡가 글로보카르는 작곡이나 연주에 우연성을 가미하겠다고 무대 위에서 의자를 집어던졌다. 하지만 히사이시 조는 전위예술보다는 온건한 미니멀리즘(미니멀 뮤직)을 추구했다. 조형예술계에서 사용되던 미니멀이라는 용어를 음악계에서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마이클 니만이고, 미니멀 뮤직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필립 글래스다. 두 사람은 현대 클래식 작품을 만들면서 영화음악 작업도 나란히 하고 있다.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10년 넘게 미니멀 뮤직을 하고 있던 히사이시 조는 어느 날, 자신이 왜 음악을 하고 있는지 새삼스레 돌이켜 보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내 음악을 이론화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이론을 말로 무너뜨릴 수 있을까?” 자신의 작업은 자신의 음악적 실험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어떻게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으랴.” 이런 반성 끝에 “예술가로서의 길을 버리고 앞으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폭 넓은 음악을 하자! ‘거리의 음악가’가 되자!”라는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으로부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음악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후로 그는 영화음악가의 길을 걸었다. “일단 미니멀 뮤직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문은 닫았지만, 미니멀 뮤직을 만들면서 익혔던 감각은 다행히 영화음악이라는 장르에서 살릴 수 있었다. 그때 만약 예술가의 길로만 달려갔다면 아마도 지금쯤 다른 식으로 살고 있으리라.”
히사이시 조와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 음악가는 왜 예술이 아닌가? 예술은 자신을 입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 영화음악은 자신을 입증하기 어렵다. 영화음악을 의뢰받은 작곡가는 “영화에 들어가는 모든 음악을 구성해야 한다. 하지만 내 멋대로 곡을 만들 수는 없다. 영화의 세계관과 어울려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감독이다. 감독이 ‘이 음악은 아니다.’라고 말하면 내가 아무리 좋다고 주장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하는 것이다.” 위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작품의 생사가 오로지 의뢰자의 판단에 달려 있는 영화음악은 예술일 수 없다.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해보면, 자신을 입증하기위해 혼신을 쏟았던 작품이 무효가 되는 세계는 비단 영화음악 장르만이 아니다. 그가 베토벤이었든 폴 메카트니였든 음악가의 존재방식은 결과물을 향유하는 청자, 곧 대중이 아니었던가? 단지 영화음악가는 미야자키 하야오나 기타노 다케시처럼 의뢰인이 특정되어 있고, 베토벤과 폴 메카트니와 같은 클래식 음악가와 대중 음악가는 의뢰인이 익명일 뿐이다.
하므로 자신을 입증하기만 하기만 해서는 예술가일 수 없다. 그의 결과물은 누군가의 귀에 들려야 한다. 현대음악을 하다가 ‘거리의 음악가’가 되기로 한 히사이시 조는 그것을 잘 안다. 문제는 “항상 창조성과 수요 사이에서 고민하며 얼마나 창조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느냐에 심혈을 기울여야하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예술가나 비즈니스맨이나 똑같다.”
영화에서는 연인들의 이별 장면이나 자동차가 질주하는 장면, 그리고 결투를 하거나 긴장을 고조시켜야 할 때,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음악이 나온다. 이런 음악을 ‘상황외음악(狀況外音樂)’이라고 한다. 이와 달리 커피숍이나 레스토랑 또는 상점가에서 실제로 흐르는 음악, 등장인물이 노래를 하거나 연주를 할 때 나오는 음악을 ‘상황내음악(狀況內音樂)’이라고 한다. 후자는 자연스럽지만, 전자는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상항외음악이 없다면 영화는 답답해 질 뿐 아니라, 깊이를 잃게 될 것이다. <나쁜 피>(레오 카락스,1986)에서 알렉스(드니 라방)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데이비스 보위의 <Modern Love>의 전주를 듣고 길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에서 노래가 계속 나오지 않았다면 주인공의 내면적 고통은 관객에게까지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킬빌>(쿠엔틴 타란티노,2003)에서 브라이드(우마 서먼)와 오렌 이시이(루시 류)가 검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산타에스메랄다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는 폭력을 겁내고 미워한다면서도 넋 놓고 그것을 즐기는 관객을 대놓고 조롱한다.
영화음악은 부자연스럽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상에 충실하게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나는 우는 장면에는 슬픈 곡을, 낭만적인 장면에는 달콤한 곡을 사용하는 정해진 패턴을 싫어한다. 그것은 음악이 영상에 기대고 의존하는 것이다. 나는 음악이 화면을 따라가게 만들고 싶지 않다. 음악이 영상의 종속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슬픈 장면이나 기쁜 장면에 애절하고 활기찬 음악을 내보내지 않고 일부러 다른 느낌의 음악을 내보내기도 하는데, 히사이시 조는 그런 대위법이 “장면의 분위기를 한층 더 높이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말한다.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는 듯한 음악은 이미지를 제한해서 그 이상의 감정을 끌어낼 수 없다.
이 책은 스스로 ‘엔터테인먼트 세계’의 작곡가라고 말하는 지은이가 어떻게 비즈니스 이상의 음악적 성과를 내왔는지를 엿보게 해준다. 답은 이렇다. “작품을 만들 때마다 자신의 한계에 도달해야 한다.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새롭고 매력적인 작품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범주 안에서만 승부하면 평범한 작품밖에 만들어낼 수 없지 않을까?” 창작자에게 영감이란 무엇인지, 창작을 직업으로 삼으려면 어떻게 자신을 관리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의외의 도움이 된다.
2016년도에 발간된 개정판 표지
- 1.jpg (File Size: 59.4KB/Download: 52)
- 2 2016년도에 발간된 개정판 표지.jpg (File Size: 35.1KB/Download: 52)
- 영화음악가이자 작곡가 히사이시조.jpg (File Size: 805.5KB/Download: 51)
- cfaf3225c2bf9f4186c78d11d1493da8.jpg (File Size: 579.8KB/Download: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