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나 사이 ; 흑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 타네하시 코츠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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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나 사이
흑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타네하시 코츠 지음 | 오은숙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09월 05일 출간 | 248P
2014년 8월 9일, 미주리 주 퍼거슨에서 열여덟 살 된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이 한 편의점에서 엽궐련 몇 갑을 훔친 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백인 경찰관과 실랑이를 벌이다 총에 맞아 사망했다. 비무장 상태의 소년에게 열두 발을 발사한 경찰에 대한 항의 시위는 보름간 계속되면서 퍼거슨 사태로 불리게 되었다. 미국의 흑인 작가 타네하시 코츠는 마이클 브라운을 쏜 경찰관이 처벌될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열네 살 난 아들 사모리는 기소 여부가 발표되기를 기다리며 밤 11시까지 자지 않고 있다가,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는 뉴스를 보고나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울었다. 타네하시 코츠는 그런 아들에게 주기 위해『세상과 나 사이』(열린책들,2016)를 썼다.
지은이가 아들에게 읽히고자 썼던 이 책의 핵심은 “검은 몸을 하고 ‘꿈’ 속을 헤매는 나라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압축되어 있는데, 이 문장의 열쇠말은 ‘검은 몸’과 ‘꿈’이다. 모두 알다시피, 미국은 스스로를 “지금껏 지상에서 존재했던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국가”라고 믿는다. 그것이 미국의 꿈이다. 하지만 그 꿈은 오로지 백인의, 백인에 의한, 백인을 위한 꿈이다. 여기에 흑인이 들어설 자리는 없을 뿐 아니라, 백인의 꿈은 흑인의 희생 위에 건설된다.
“‘화이트 아메리카’는 우리 몸뚱이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그들의 배타적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구성된 연합체란다. 때로 이 권력은 직접적이지만(린치), 때로는 교활하지(빨간 줄긋기: 투자 제한 지역).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든지 간에, 지배와 배제의 힘은 자신이 백인이라는 믿음에 중심을 두고 있고, 만약 그 힘이 사라진다면 ‘백인’은 그 존재 근거를 잃고 말 거야. 아들아, 네가 없다면 그들도 없다. 네 몸을 부러뜨릴 권리가 없다면 그들은 필연코 산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 신성을 잃고 ‘꿈’에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다.”
타네하시 코츠는 마이클 브라운의 죽음을 백인 경찰관의 일회적인 업무상 실수가 아니라, 흑인의 신체를 파괴해온 미국의“전통”이며 “문화유산”이라고 말한다. 이 전통과 문화유산은 국가 권력이나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흑인을 문자 그대로 살해해왔던 역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공황 극복과 경제 안정, 하층 계급 원조를 목표로 했던 뉴딜 정책이 그렇다. 루즈벨트 정부는 노동 시간 축소, 최저 임금 인상, 퇴직 연급, 실업 보험 보장, 주택 보급 계획 등을 시행했으나 그 혜택은 모두 백인 실업 노동자에게 돌아갔다. 흑인은 대부분이 소작농, 농장 일꾼, 임시직 노동자였기 때문에 수혜를 받을 수 없었다.
1964년 미 연방 정부는 흑백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미국 의 여러 대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빨간 줄긋기(redlining)는 인종분리가 지금도 정부 정책에 의해 버젓이 설계되고 있다고 말해준다. 빨간 줄긋기는 흑인 빈곤층 거주 지역을 빨간 펜으로 지도 이에 표시하면서 생긴 말로, 이렇게 표시된 경계 지역은 대출이나 투자, 보험 등의 금융 서비스가 정책적으로 제한된다. 그 결과 흑인 빈곤층 거주지는 더욱 열악한 빈민화(slum)가 진행된다. “게토는 인종주의의 우아한 행동이자 연방 정책에 의해 입안된 킬링필드”라고 말하는 지은이는, 이런 게토 안에서 벌어지는 “‘흑인에 대한 흑인의 범죄’라는 말은 허튼소리”라고 말한다.
“시카고의 킬링필드, 볼티모어의 킬링필드, 디트로이트의 킬링필드는 ‘몽상가들’의 정책으로 탄생했지만, 그 무게, 그 오명은 온전히 그 안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만 지워지지. 여기에는 엄청난 속임수가 있어. ‘흑-흑 범죄’를 외친다는 건 총으로 사람을 쏘고는 그가 피를 흘린다며 창피를 주는 일이야.”
2012년 11월 23일, 플로리다 잭슨빌의 한 주유소에서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흑인 조던 데이비스는 자동차에서 틀어 놓은 음악이 너무 크다며 시비를 걸어온 45세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마이클 데이비드 던과 말다툼을 벌이던 중, 던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살인자는 총탄을 다 비우고 나서 여자 친구를 차에 태우고 호텔로 갔다. 그러고는 다음 날 한가한 시간에 자수를 했다. 그는 조던의 엽총을 보았으며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웠기 때문에 정당방위를 했다고 주장했으나, 엽총은 발견되지 않았다. 지루한 재판 끝에 백인 살인자는 일급 살인죄를 모면했다.『세상과 나 사이』에는 이런 예가 수두룩하다.
흑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들에게 검은 몸을 파괴한 것쯤은 얼마든지 허용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검은 몸을 하고서 어떻게 자유롭게 살 것인가?”라고 다시 묻는다. 미국에서 흑인은 “엄청난 자연재해, 어떤 역병, 어떤 눈사태나 지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에 속한다”고 말하기도 하는 지은이는, 흑인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삭제가 “검은 몸뚱이에 대한 파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들에게 인류 역사에 울타리 쳐놓은 백인들만의 전제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교실은 백인들의 관심사로 꾸며진 감옥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음악에 관한 책이 아니지만 흑인들이 온 골목이 울리도록 크게 켜놓은 과시와 허세 가득한 대형 휴대용 카세트 볼륨과, 육체적 숙련과 해방을 특징으로 하는 힙합 문화의 형성 비밀을 조곤히 귀띔해 준다. 우선 커다란 볼륨은 “그들이 가진 몸뚱이의 주인은 바로 그들”이라는 것을 공표하는 행위다. 또 힙합 음악에 맞춘 격렬한 춤 동작 역시 경찰의 총에 쉽게 부스러질 수 있고 감옥에 빼앗길 수 있는 자신들의 부자유스러운 육체를 다시금 자신의 것으로 찾아와, 자신의 육체를 자신이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흑인의 제의 행위다. 그러니까 흑인들의 과장된 몸짓은 백인 중심 사회에 오랫동안 억압된 “육체 박탈”에 저항하는 육체적 아비투스(habitus)인 것이다.
마이크 브라운 사건에 대한 대규모 집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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