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과 노이즈캔슬링 시대에) 다른 방식으로 듣기] - 데이먼 크루코프스키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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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식으로 듣기 스트리밍과 노이즈캔슬링 시대에 | Ways of Hearing
데이먼 크루코프스키 저/정은주 역 | 마티 | 2023년 03월 02일 | 144P
데이먼 크루코프스키의『다른 방식으로 듣기』(마티,2023)의 원제 ‘Ways of Hearing’(2019)은 본문 23쪽에 제명이 이름이 나오기도 하는 존 버거의 1972년 저서 ‘Ways of Seeing’(『다른 방식으로 보기』,열화당,2012)을 본 뜬 제목이다. 1970년대에 영국 BBC에서 제작된 텔레비전 시리즈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존 버거는 아카데미즘이 표준화시킨 해석(시선) 너머의 해석을 제시하면서 미술 작품은 물론 미술에 대한 편협한(아카데미즘) 정의를 벗겨냈다. 팟캐스트로 제작된 <다른 방식으로 듣기>는 존 버거의 전례를 따라, 우리가 듣는 소리 속에 시간적ㆍ공간적ㆍ사회적 의미들이 어떻게 암호화되어 있는지를 밝힌다.
소리를 대하는 디지털 시대의 방식은 아날로그 시대와 다르다. 먼저 아날로그 시대에는 스튜디오에서 녹음이 시작되면 “지금이 우리가 붙들게 될 순간”이라는 느낌이 제작자들의 주의를 사로잡았다. 그 경험은 마치 사고를 당했을 때 일분일초가 갑자기 너무나 생생하게,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껴지는 것과 비슷했다고 한다. “아날로그 녹음이 사고와 비슷한 점은 더 있습니다. 테이프에는 ‘실행 취소’가 없습니다. 시간과 돈이 있으면 다시 할 수는 있죠. 그러나 뒤로 가기는 불가능합니다. 잘했든 못했든 끝났으면 끝이에요. 오늘날 음악가의 삶은 아주 다릅니다. 디지털 스튜디오에서 하는 모든 작업이 일시적이에요. 그러니까 전부 다시 실행하고 다시 만지고 다시 만드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녹음물을 들을 때 우리가 기대하는 것도 원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라고 표현되는 이 순간성이다.
음악가는 시간이 유연하다는 것을 안다. 클래식 연주자는 이를 템포, 루바토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어로 ‘훔친 시간’이라는 뜻이다. 음악가는 여기서 조금 훔쳐서, 다른 곳에 사용한다. 재즈 연주자는 스윙이라고 부르고, 록과 펑크(Funk) 연주자는 그루브라고 부른다. 루바토, 스윙, 그루브 같은 음악가들의 용어가 알려주는 것은 시간이 경험된다는 사실이다. 시계처럼 정확하게 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 경험은 가변적이고 언제나 변화한다. 시간의 이런 유연성은 음악가만 누리는 것이 아니다. 악기를 연주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것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은데다가 그것을 일률적으로 조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디지털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다룬다. 예컨대, 초창기 턴테이블 빅트롤라는 수동이었다. 손잡이를 돌려서 태엽을 감으면 태엽이 풀리면서 회전판이 돌아갔다. 속도는 거의 일정하지 않았다. 한편 20세기 말 힙합 DJ들은 다른 음반과 템포를 맞춰서 그루브가 지속되게 하기 위해 턴테이블의 속도 조절 장치를 이용했고, 스튜디오에서는 기존 음반들에서 샘플을 따서 새 음반을 제작했다. 1980년대에 대중음악은 디지털 기계가 최초로 유입되면서 진정한 변화를 맞이했다.
디지털 시간은 체험된 시간과 같지 않다. 그건 기계의 시간이자, 시침처럼 조작 가능한 시간이다. 이 때문에 시간은 불가역성과 유기성을 벗어나 편집되고 파편화된다. “우리는 즉각적이고 세계적인 것처럼 보이는 디지털 소통을 하고 있지만, 온라인 생활은 사실 시간적인 순서가 온통 뒤죽박죽되어 있어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는 다양한 알고리즘에 따라, 가장 두드러지게는 인기에 따라 게시물을 이리저리 뒤섞어 보여줍니다. 결과적으로 어제의 뉴스 속보가 그 뉴스에 관한 오늘 자 해설기사들 사이에 끼어들 수 있지요. 정보 교환상의 이러한 시간 딸꾹질은 대면 소통에서는 결코 발생하지 않습니다.”
앨범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네덜란드 출신 밴드의 ≪Stars on 45≫ (1981)는 디지털 시간의 특성을 음악적으로 설명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례다. 인기곡을 이리저리 뒤섞어 놓은 이 앨범에서 시대는 뒤죽박죽으로 편집되어 있다. 히트곡 가운데서도 자극적인 소절만을 떼어내 패스티시(기계적 인용)한 이 앨범은 음악 감상법마저 바꾸었다. ≪Stars on 45≫는 한 곡의 음악이 가진 고유의 성격인 유기성을 모른 체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잡음과 함께 한다. 특히 잡음을 제거한 도시 생활은 없다. 아날로그 시대의 녹음은 잡음을 막기 위해 애썼으나 한계가 있었다. 재즈 공연의 경우 멤버들 간의 불화가 그대로 녹음되기도 했다. 반면 디지털 녹음은 잡음을 살균 처리하듯 없앨 수 있다. 글렌 굴드가 디지털 녹음 기술이 발달한 지금 태어났다면, 그가 연주를 하며 내는 흥얼거리는 소리를 잡음으로 간주되어 깨끗이 삭제되었을 것이다.
“제가 아날로그 녹음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소음을 완전히 없애기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게 아날로그 미디어의 본성이에요. 아날로그 녹음의 귀감이 되는, 가령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나 비치 보이스의 ≪Pet Sound≫ 같은 음반의 볼륨을 키워보세요. 그러면 앞에 놓인 소리, 즉 신호와 함께 온갖 종류의 소리가 들릴 겁니다. 이 음반들에는 소음이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바이닐 레코드를 듣는 사람들은 바이닐 레코드에 디지털 음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질감이 있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것은, 소음인지도 모른다.
인터넷은 우리가 정보에 무제한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한편, 우리가 정보에 접근 하는 것을 조종(조절)할 수도 있는 권력이다. 우리가 음악을 듣는 조건을 바꾸어 놓은 인터넷은 우리의 음악 취향마저 미세하게 조정할 수 있다. 구할 수 있는 음악이란 음악은 몽땅 서비스 할 수 있는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판도라 같은 디지털 음원 기업은 알고리즘을 통해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선곡해 준다. 음원 추천 알고리즘이 도달한 단계는 경이로워서 매번 “이 음반을 내가 좋아할 줄 어떻게 알았지”라는 경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우리에게 생면부지의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거나 간접적으로라도 아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것처럼, 스포티파이와 같은 음악 추천 서비스도 내가 언젠가 들었던 비슷한 음악만을 제공해준다. “구글은 우리가 뭔가를 검색할 때 우리를 ‘놀라게 하고’ 싶어 할까요? 페이스북은 우리가 친구를 찾을 때 우리를 ‘놀라게 하고’ 싶어 할까요?” 음원 추천 서비스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발견’하게 이끌어주지만 ‘놀라운 것’은 선사하지 않는다. 추천을 통해 처음 듣는 음악은 지금까지 들은 음악 중 최고일 수도 있지만, 그 음악은 당신이 전에 한 번 들어본 것과 같은 음악이다.
저자인 데이먼 크루코프스키. 현역 뮤지션이자 음악 저널니스트로 팟캐스트와 웹진등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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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서 디지털 시대의 음악감상에 대한 예로 든 Stars on 45. 테마별로 주요 팝 히트곡들의 메인 코러스만 무작위적으로 짜깁기해 댄스버전으로 바꿔 인기를 끌었다..jpg (File Size: 97.1KB/Download: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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