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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첫 등단한 이후 40년 이상 시와 소설을 두루 써오고 있는 장정일 작가가 음악 이야기가 담긴 종류의 여러장르 책들을 직접 읽고서 쓴 서평, 리뷰 혹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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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연주 : 연주 불안을 겪는 음악가에게 전하는 마음의 지혜] - 케니 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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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연주 : 연주 불안을 겪는 음악가에게 전하는 마음의 지혜

케니 워너 저/이혜주 역 | 현익출판 | 20230828| 원서 : Effortless Mastery: Liberating the Master Musician Within | 272P

 

재즈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케니 워너의완전한 연주(현익출판,2023)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버클리 음악대학 교수면서, 피아노 연주자들을 위한 연주클리닉도 종종 갖고 있는 뛰어난 음악교육자다. 그는 책의 서문에, 전통적인 음악 교수법은 영재들과 재능 있는 사람들처럼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효과적이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이 책은 스스로 재능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구체적인 연습 방법과 더불어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쓴 것이다.”

많은 사람이 연주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는 이를 음악 공포증이라고 부른다. 음악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마치 뜨거운 난로에 손을 갖다 대듯이 악기를 만진다. 비이성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악기를 만진다고 화상을 입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매우 흔하게 발생한다. 부정적인 결과가 전혀 없는데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결코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연주를 두려워하도록 프로그래밍되었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종종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피아노를 배우려는 사람들, 그리고 전문 연주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연주에 다다르는 비법을 이렇게 말한다. “연주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비법은 선사들의 깨달음을 떠올려주는 한편, 어느덧 이 시대의 고전이 된 독일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2012)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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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를 성과사회라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서, 성과사회의 성과주체는 할 수 있다라는 긍정성을 삶의 원리로 떠받든 채 살아간다고 말한다. “성과주체는 노동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착취하는 외적인 지배기구에서 자유롭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자 주권자이다. 그는 자기 외에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점에서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와 구별된다. 그러나 지배기구의 소멸은 자유로 이어지지 않는다. 소멸의 결과는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상태이다.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로 내몰린 성과주체는 소진과 우울증을 앓게 된다. 때문에완전한 연주는 자기 착취로 병들어가는 일반인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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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케니 워너는 그와 똑같이 어릴 때 악기를 배웠지만, 10대 때 그만두었다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음악을 계속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뒤늦게 밝히곤 했는데, 케니 워너는 음악을 그만 두게 된 이유를 이렇게 추측한다. 그들이 공부하는 내용에서 음악이 주는 환희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음악에서 환희를 느끼는 법을 배우지 못한 연주자는 최상의 연주를 할 수 없다. 유럽의 클래식 음악과 미국의 재즈에서도 우리는 트랜스 상태와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상태에 빠질 수 있는 예술가들은 가장 높은 집중력과 가장 뛰어난 기량을 갖춘 이들로서, 우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콘서트를 선사한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수준의 음악적 기교와 인간성을 기를 수 있을까? 여기서 관건은 내려놓는 것이다.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당신의 가장 귀중한 소유물, 바로 연주를 잘 하려는 강박적인 욕구다.”

자신의 클리닉에 오는 연주자들 가운데 잘해야겠다는 강박(자아)을 내려놓으라는 권고를 따른 99%는 연주가 더 좋아졌다고 한다. “잘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연주가 더 좋다. 이것은 흔히 우리가 진리로 여기는 것과는 정반대의 깨달음이다. 신경 쓰지 않으면 연주를 더 잘할 수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인정을 향한 강박적 욕구가 도리어 두려움을 낳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피아니스트의 몸과 마음을 긴장시켜 어깨가 올라가고 목을 뻣뻣하게 만들며 팔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지은이는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 것보다 즐기는 게 중요하다. 열심히 노력할수록 연주는 나빠진다.”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음악은 신이 주는 선물이라 여겨지지만, 많은 이들이 음악을 하면서 엄청난 고통과 두려움을 느낀다. 이러한 두려움은 비이성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가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것처럼 연주한다. 그리고 그 총은 실재한다. 그들 자신이 총을 들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매번의 음, 혹은 캔버스에 칠하는 매번의 붓질을 가지고 본인의 가치를 평가하는 갓이다. 어떤 형태의 예술이든 상관없다. 자아의 노예가 되어 우리는 두려움 속에 갇힌다.” 대부분의 클래식 연주자들에게 즉흥연주를 해보라고 하면 마치 벼랑 끝에서 누가 떠미는 것처럼 반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번번이 문제가 되는 것은 자아다.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은 제한된 나에 대한 의식이다. 자아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서로에게서 분리된 존재임을 인식한다. 분리는 비교와 경쟁을 불러온다. 여기서 저 친구는 나보다 어려’, ‘나보다 재능이 많아등의 생각이 시작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도 음악의 목표는 자아를 사라지게 하고 신과 결합하는 것이다. 보편적 지성과 일체가 된 상태는 사다나(sadhana)’라고 불린다. 사다나는 개인의 독자성을 숭배의 대상과 합치는, 자아를 포기하는 행위의 최고봉이다. 자아라는 폭군에게 시달리는 우리는 힌두교에서 마야(maya), 즉 환상이라고 부르는 상태 속에 살아간다. 마야에 마음을 빼앗겨서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얼마나 눈부신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필요한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욕망은 계속 늘어나고, 우리는 진정한 내면의 행복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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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피아니스트나 또 다른 악기 연주자들이 자신의 연주를 개선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자기개발 목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실제로 지은이는 이 책에 여러 자기 개발서를 참조하고 있으며, 성급한 독자들은 ‘play(연주)는 곧 live()’라면서 벌써부터 이 책을 자기개발서로 예찬한다. 하지만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전문 연주자들의 연주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고 그들에게 음악의 즐거움을 되찾아 주려는 이 책을 자기개발서로 읽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자아를 놓아주고 음악이 우리 속으로 들어와 그들이 마땅히 할 일을 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우리는 그 일의 도구이다.”라는 충고가 음악인에게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대부분이 피고용자인 일반인에게는 유익하지 않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에게 삶의 기술자, 곧 예술가가 되라고 강요한다. 노동 유연화가 필요한 기업은 피고용자들에게 예술가와 같이 독립된 인격체에서 느끼는 자긍심과 극심한 고통을 창조의 계기로 삼는 예술가 정신을 떠맡기려고 한다. 그러는 동시에, 케니 워너가 피아니스트에게 권했던 방식과 똑같이, 노동자에게 자아를 버리고 기업의 도구가 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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