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 이즈 힙스터?] / [힙스터 핸드북] - 문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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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언 지음 | 민효인 그림 | 여름의숲 | 2017년 08월 10일 | 184P
한국에서 힙스터(Hipster)는 지금까지 한 번도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았다. 그런 뜻에서 문희언의『후 이즈 힙스터?/힙스터 핸드북』(여름의숲,2017)은 뒤늦은 시도를 하고 있는 책이다. 왜냐하면 글로벌한 문화네트워크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힙스터의 시대’는, 힙스터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1999~2010년 사이에 완료되었다고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독자는 뉴욕을 근거지로 한 계간 비평지『n+1』이 기획한『힙스터에 주의하라』(마티,2011)를 보면 된다.
『힙스터에 주의하라』는 문희언의 책이 나오기 전에, 한국에서 힙스터를 다룬 유일무이한 단행본이었고, 지금도 한국의 힙스터 현상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기준점이 되어 준다. 뉴욕 대학 회의실에서 여러 명의 논객들이 벌인 야단법석(野壇法席=symposium)을 기록해 놓은 이 책은 힙스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식 가능한 현상으로서의 힙스터주의(Hipsterism)는 특정한 패션과, 경미하지만 개성 강한 트랜드와도 끈끈한 관계를 맺고”있으며,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이 다른 문화와 스스로를 구별 짓고 자기애와 집단적 우월 의식”을 드러낸다. 이들은 애초에 “소비자 문화의 독립적인 대안으로 남으려 했지만, 통합되고 굴욕을 당하고 파괴되고 마는 청년문화 고유의 ‘좌절하는 전통’”을 고스란히 따라 걸었으며, 앞으로의 전망이라고 해봤자 “‘얼리어답터’의 커뮤니티로 변질될 소지가 크다.”
이런 정의가 너무 일방적이라고 느낄 독자도 분명 있을 테지만, 위와 같은 정의에 기분이 상한 독자는 결코 힙스터가 아니다.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힙스터를 힙스터답게 해주는 첫 번째 신조는 결코 “자신이 힙스터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부인 심리는 ‘첨단’을 부정하고 ‘기원’에 집착하는 모더니스트의 전형적인 입장과 매우 흡사한데, 실제로 힙스터들의 복고적이며 친환경적인 취향 역시 모더니스트의 기원에 대한 집착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개인적 취향의 과시와 전파”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들 또한 기술과 자연의 융합과 혼종 속에 태어난 히피의 적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1999년을 원년으로 하는 현대의 힙스터는 인터넷의 대중화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힙스터라는 어원이 음악에 대한 취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면, 오늘날 대중음악의 대세가 된 힙합과 힙스터의 연관성도 검토해 볼만하다. 이때 참조할 수 있는 것은, 아프로-아메리칸 작가이자 흑인 인권운동가인 페트리스 에반스가『힙스터에 주의하라』에 실은 한 편의 에세이다. 그는 우리를 공공의 주제로 인도하는 힙스터와 힙합이라는 두 개의 문 가운데, 하나의 문을 선택하라면 힙합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힙스터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페트리스 에반스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 중에는 힙스터라는 용어에 대해 아는 사람이나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람들을 분류할 때 인종, 돈, 이외의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일은 없었다.” 다시 말해, 백인 주류 사회의 주변부를 자칭하는 백인 힙스터는 흑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껴안고 있는 인종과 계급 문제를 동시에 회피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힙스터와 한국의 힙스터가 각기 미국과 한국에서 살고 있는 만큼이나, 두 나라의 힙스터는 상당히 다르다. 문희언은 그 예로, “미국에서는 힙스터를 돈 많은 젊은이들이라고 정의하지만, 한국의 힙스터는 비록 돈은 없지만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젊은이”라는 사실을 든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두 나라의 힙스터는 한미동맹 만큼 굳건하다.『힙스터에 주의하라』를 기획한 마크 그리프는 힙스터 세대의 정치적 감수성을 드러낸 두 가지 사건으로 1999년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와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을 꼽았으며, 문희언은 한국의 힙스터들이 2016~2017년 촛불집회의 적극적인 참여자였다고 말한다. 힙스터가 진보적인 이유마저 그들의 정체성이 “‘최첨단 소비자’, 혹은 ‘저항적 소비자’”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너무 악의적인 비평일 것이다.
이어령은『오늘을 사는 세대에게』(신태양사,1963)라는 이름으로 초간되고『거부하는 몸짓으로 이 젊음을』(삼중당,1975)이라는 제목으로 재간된 책에서 한국 최초로 “히프스터(힙스터)”라는 낱말을 소개했다. 이어령은 잭 케루악의 소설을 해설하는 자리에서 비트족族은 “재즈를 아는 자만이 인생을 안다. 샌님들에게는 재즈가 없다.”라고 믿으며, 이들은 “재즈를 이해하는 자들은 히프(hip)라고 부르고 재즈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을 스퀘어(square)”라고 부른다고 썼다. “비이트족의 전문 용어로서 ‘히프’라고 하면 직접 사물의 경험을 통해서 인생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뜻한 것이고, 스퀘어라고 하면 책이나 남의 말을 듣고 간접적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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