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거품] - 보리스 비앙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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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비앙 지음 | 이재형옮김 | 웅진씽크빅 | 2009년 01월 23일 출간 | 284P
『세월의 거품』(웅진씽크빅, 2009) 표지 앞날개에 적힌 보리스 비앙(1920~1959)의 약력은 인상적이다. “소설가이자 작사가, 평론가, 번역가, 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트럼펫을 연주하는 재즈 음악가이기도 했던 프랑스 문학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전후(戰後) 동생 알랭과 재즈 밴드를 구성하여 작은 재즈 클럽에서 연주했다. 그러나 심장 질환으로 트럼펫 연주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 후 재즈에 관한 기사와 평론을 썼으며, 듀크 엘링턴,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미국의 재즈 음악가들을 초대하여 콘서트를 열었다.
프랑스 지식인들이 재즈에 바친 경모는 특별나다.『세월의 거품』에「엘링턴적 걸작」이라는 작품해설을 쓴 질베르 페스튀로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한다 “콕토로부터 아라공까지, 싸르트르에서 레리스까지 재즈에서 현대성의 강력한 상징을 보았던 프랑스 지식인 계층은 재즈에서 반反 나치 운동의 상징을 이끌어낸 전쟁 세대와 마찬가지로 이 음악에서 매력을 느꼈다고 할 수 있다.” 즉 프랑스 지식인들은 재즈가 가진 반형식주의에서 현대성을 발견했던데다가, 재즈를 그들을 나치로부터 해방시켜준 해방자들의 음악이었다는 것이다.
『세월의 거품』에 나오는 젊은 주인공 콜랭은 어떤 사교 모임에서 앞으로 결혼을 하게 될 클로에라는 여성을 만났다. 이때 콜랭이 클로에에게 처음 건냈던 말은 이랬다. “듀크 엘링턴이 당신을 편곡했나요?” 여기서 뿐 아니라, 듀크 엘링턴은 작가의 삶과 작품에 자주 출몰한다. 먼저 비앙은 이 소설의 작가 서문에 이렇게 썼다. “어여쁜 처녀들과의 사랑 그리고 뉴올리언스나 듀크 엘링턴의 음악. 그 나머지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앙이 버넌 설리반이라는 미국식 가명으로 출간했던 20세기 누아르 소설의 고전『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뿔,2008)에 나오는 또 다른 젊은 주인공 리 앤더슨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위대한 작곡가들은 다 흑인이야. 듀크 엘링턴 같은 사람을 생각해 보라고.”
출간이후 300만부 이상이 팔린『세월의 거품』의 줄거리는 사실 너무 진부해서 식상할 정도다. 재즈와 쾌락에 탐닉하며 무료한 생활을 이어가던 스물한 살 난 청년 콜랭은 수줍은 듯하지만 관능적 매력을 지닌 클로에를 만난다. 듀크 엘링턴을 숭배하는 콜랭이 클로에를 만난 것은 어쩌면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콜랭은 그녀를 만나기 이전부터 듀크 엘링턴의 곡인 <클로에Chloe>를 잘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의 결혼식에 클로에가 연주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신혼은 클로에의 폐에 수련睡蓮이 자라는 괴상한 병이 생기면서 불행으로 바뀐다. 콜랭은 그녀의 치료를 위해 모든 재산을 다 쓰고 마지막엔 육체노동까지 하게 된 것이다. 평소의 콜랭은 노동을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현혹된 노동자들의 자본가에 대한 과행으로 인식했는데 이유는 아래와 같다.
“‘일을 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냥 습관적으로 그리고 거기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 일을 하는 것뿐이지. 그건 그들이 ‘노동, 그것은 신성하고, 즐겁고, 아름답고, 무엇보다 중요하고, 오직 노동자들만이 모든 것에 대해 권리를 가지고 있다.’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야. 그들은 바보야. 그래서 노동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라고 그들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 자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거지. 그래서 그들은 생각도 하지 않고, 진보를 위해 애쓰지도 않고,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는거야.”
한편 콜랭의 친구 시크는 철학자 장 솔 파르트르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그는 파르트르의 장서가용 책과 그의 소지물을 수집하는데 막대한 돈을 쓰면서, 애인인 알리즈와 점차 멀어진다. 장 솔 파르트르는 ‘장 폴 사르트르’를 음위전환한 이름으로, 비앙은 한때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생 제르맹Bd. Saint Germain 문학 그룹의 일원이었다. 그 증거가 사르트르가 창간한『현대Les Temps Modernes』에 발표된 바로 이 작품이다.
하지만 비앙은 초대장이 없는 청중이 파르트르의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영구차를 타고 잠입하거나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광경을 통해 실존주의 소동을 희화화하고 있으며, 스노비즘의 희생자인 시크를 통해,‘사르트르의 추종자들’을 비웃고 있다. 이들은 유행을 추종하고 있을 뿐, 대부분은 사르트르의 책을 읽지 않았고 이해하지도 못했다.
해설자가 지적하고 있듯이『세월의 거품』은 “풍자와 기괴함이 교대로 나타나는 이미지의 시, 그리고 음위전환과 소리와 문법을 이용한 말장난, 동음이의어, 신조어에 이르는 언어유희”가 마치 “논리적으로 화해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마술적으로 융화된 스윙 재즈”를 연상시킨다. 질베르 페스튀로는 이 작품에 ‘엘링톤적 소설’이라는 명칭을 붙여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세월의 거품』은 낭만주의 장르를 가짜 리얼리즘이라 비판하고, 예술에게 꿈의 신비와 내적 환상의 힘을 드러내라고 하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요구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예증한다.『세월의 거품』의 매력은 초현실주의와 몽환의 영향을 받은 언어와 환상의 일치, 스윙 재즈적 문체와 환상적인 세계의 조화에서 기인한다.”
에릭 홉스봄은『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영림카디널,2003)에서 엘링턴의 음악은 정통 작곡가들의 작업 방식과 거리가 멀며, 엘링턴 음악의 위대성 또한 그런 특성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음악이, 개인적인 창조자이자 작품을 만든 아버지로서의 전통적인 ‘예술가’ 개념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예술가에 대한 그러한 고루한 정의는 현재 무대예술과 영화에서 폭넓게 이뤄지고 있는 공동작업 혹은 집단창작 형태의 예술작업에는 부적합한 것이다. 이것은 예술과 예술창작에 관한 기존의 정의나 설명에 대해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일임에 분명하다. 엘링턴을 ‘작곡가’라고 말하는 것은 부르주아적 ㆍ데카르트적인 환원주의로 기우는 경향이 있는 프랑스 비평가들이 할리우드 영화감독들에게 ‘작가’라는 명칭을 붙여주는 것만큼이나 부정확하다. 하지만 엘링턴은 영화감독이나 연극 연출가들처럼 공동작업을 통해 진지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은 그 자신의 작품이기도 했다.” 일평생 사회주의자였던 홉스봄은 “서민계급 출신의 밤의 생활자들이 만들어낸 재즈는 소박한 꿈을 갖고 살아가던 직업 연예인들의 음악”이었지, 결코 “실내악과 같은 ‘예술’”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시대가 바뀌어도 재즈 연주자라면 누구나 엘링턴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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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던 재즈 피아니스트_작곡가 듀크 엘링턴.jpg (File Size: 365.9KB/Download: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