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업성과 음악적 내용 사이 절묘한 줄타기’ [Big Blues] - 아트 파머와 짐 홀(Art Farmer & Jim Hall)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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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Farmer/ Jim Hall <Big Blues> CTI/1979
Arranged By – David Matthews*
Art Direction – Sib Chalawick
Bass – Mike Moore*
Coordinator – Betsy Palumbo
Drums – Steve Gadd
Engineer – David Palmer*
Engineer [Assistant] – Joel Cohn
Flugelhorn – Art Farmer
Guitar – Jim Hall
Liner Notes – Ira Gitler
Photography By – Alen MacWeeney
Producer – Creed Taylor
Vibraphone – Mike Mainieri
1 Whisper Not
2 A Child Is Born
3 Big Blues
4 Pavane For A Dead Princess
Recorded February 2 & 3, 1978
Studio Electric Lady Studios, New York
CTI 7083
70년대 초 플루겔 혼으로 전향하던 시기 아트 파머의 연주모습.
‘상업성과 음악적 내용 사이 절묘한 줄타기’
재즈 트럼페터 아트 파머(하지만 이미 60년대 중반부터 플루겔 혼 주자로 전업 전향한)와 기타리스트 짐 홀이 공동리더로 발매한 <Big Blues> 는 당시 퓨전 재즈로 향하던 상업적인 재즈의 중간 기점에서 가장 성공적인 음악 결과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원래 시작은 재즈 트럼펫 사이드 맨으로 이름을 날리던 아트 파머가 60년대에 의미 있는 솔로 리더 작들을 발매하기 시작하는데, 이 무렵 그는 일반 트럼펫 사운드와 뮤트 사운드의 절충으로 플루겔 혼의 두텁고 부드러운 사운드를 메인 악기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피아노가 없는 쿼텟을 결성하게 됩니다. 기타에는 소니 롤린스와 빌 에번스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모던 재즈 기타리스트 짐 홀이 담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60년대 초반 새로운 재즈 ‘히트 그룹’으로 등장하는가 싶더니 짐 홀의 퇴장으로 이 밴드의 활동은 끝나게 됩니다. 하지만, 다시 1978년 둘은 크리드 테일러의 레이블 CTI를 중심으로 각자의 프로젝트들을 시작하게 됩니다. 아트 파머는1977년의 <Crawl Space> (CTI, 1977), <Something You Got>(CTI, 1977), <Art Farmer Live in Tokyo> (CTI, 1977), <Yama> (CTI, 1979)등의 비교적 단출한 작품 활동을 선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기타리스트 짐 홀은 <Concierto> 등을 시작으로 크리드 테일러, 돈 세베스키의 작업 서클에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 이 앨범들을 발매한 레이블 CTI의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는 레이블의 초기 시절 스타로 자리매김했던 프레디 허바드나 조지 벤슨등을 대체할 아티스트들을 찾고 있었습니다. 또, 아트 파머와 짐 홀의 60년대 음악들 (특히, 앨범 <Live at the Half Note(Atlantic, 1963)” 에서의 활동 등)은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가 자신의 레이블을 새 방향(좀 더 쿨 스타일의 퓨전)으로 틀 수 있는 적절한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이때, ‘퓨전 영역’으로의 참여를 머뭇거리던 아트 파머와 짐 홀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많은 앨범들을 제작하게 됩니다. 여기에 당시 젊은 뉴욕 드러머 스티브 갯, 비브라폰 주자 마이크 마니에리등이 참여하게 되며, 아트 파머와 짐 홀도 자연스럽게 이들 후배들과 연결됩니다. 편곡을 맡은 데이빗 매튜스는 원래 CTI 전설의 편곡자 돈 세베스키의 후임 밥 제임스와 함께, CTI의 후반기 앨범들의 전속 편곡자 역할을 하는 뮤지션이기도 했죠.
이 앨범 <Big Blues>는 당시 재즈의 상업적 ‘퓨전’으로의 전환기를 무리없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당시 음악적으로나 커리어로나 재즈 베테랑으로 들어선 아트 파머와 짐 홀이 15-20여년 후배들인 베이스 마이클 무어, 드럼에 스티브 갯, 비브라폰에 마이크 마니에리와 함께 그때의 트렌트를 반영한 ‘새로운 재즈 작업’을 하게 된거죠. 과제는 ‘어떻게 하면 음악적 퀄리티를 떨어뜨리지 않고, 상업적, 음악적 양쪽으로 성공을 거두냐’ 였을 겁니다. 비록 아쉽게도 이 앨범 이후 별개의 후속작이 없어 반짝 히트로만 끝나야 했지만, 재즈가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도 대중들과 가까워 질수 있는 접점을 찾은 앨범들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90년대 텔락 레이블 시절 기타리스트 짐 홀
우선 선곡은 아트 파머의 절친인 테너 색소포니스트이자 재즈 작곡가 베니 골슨의 ‘Whisper Not’ 으로 시작합니다. 잘 알려진 스탠더드 레퍼토리로 시작하는 것이 정석이긴 하지요. 재즈 연주자로서도 물론이지만 작곡가로서의 짐 홀 역시 무시 할 수 없는 경험과 통찰로 유명했습니다. 두 연주자 모두 많은 음을 연주하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선율들로 공간을 잘 채워 주고 있습니다. 이곡에서 짐 홀의 솔로는 매우 서정적이면서도 현장감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간감과 무게감을 동시에 잘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솔로답게 다양하고 모던한 라인을 현재의 기타리스트들이 사용하는 많은 어법의 효시답게 자연스럽게 선보입니다. 한편 아트 파머의 플루겔 혼은 부드럽지만, 견고한 재즈 어법으로 후배 리듬섹션을 이끌면서 비브라폰에게 솔로를 넘겨줍니다. 마이크 마니에리와 스티브 갯이 “바로 이때다!” 싶은지 트리플랫 더블타임필로 재빠르게 주고받다가 다시 선배들의 감성을 구현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후반부 섹션은 라틴성 더블타임으로 재미난 에너지를 띄워놓게 됩니다. 스티브 갯의 캐러비언 라틴 리듬과 마칭리듬의 교차는 매우 경쾌한 이 당시 ‘퓨전’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트럼페터이자 편곡자인 쌔드 존스(Thad Jones ;피아노의 전설 행크 존스의 동생이자 드럼의 전설 엘빈 존스의 형)의 3박자 발라드 넘버 ‘A Child Is Born’를 두 번째로 선곡하고 있는데, 아트 파머는 하몬드 뮤트로 더욱 톤을 다듬고, 좀 더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컴핑 반주를 비브라토가 담당하면서 분위기가 자칫 절제의 끈을 놓게 되는 순간, 짐 홀의 ‘원 노트’ 솔로와 ‘그랜트 그린’을 연상시키는 소울풀한 라인과 리듬의 조합은 멜로디와 또 다른 멜로디에 버금가는 표정을 남깁니다. 바이브로폰이 남긴 마지막 솔로와 마지막 헤드 아웃, 짐 홀의 블루지한 아티큘레이션등이 아쉬울 때쯤 오리지널 LP는 A 사이드를 마치고 B 사이드를 기대시키는 페이드 아웃으로 들어갑니다.
다시 B면, 그러니까 3번째 트랙에서는 짐 홀의 오리지널 넘버, ‘Big Blues’로 시작됩니다. 이곡은 짐 홀이 재즈 테너 색소포니스트 스텐리 터렌틴의 사운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합니다. 스티브 갯의 ‘하프타임’ 스윙이 펑키함을 더해가면서 드럼과 베이스, 비브라폰의 컬렉티브한 컴핑 위에 짐 홀의 모던한 솔로가 멜로딕한 색채를 잃지 않게 잡아 주고 있습니다. 전통 뉴올리언즈 재즈에서, 스윙으로, 스윙에서 비밥으로, 비밥에서 쿨과 하드 밥으로 넘어오는 동안, 재즈의 다양한 음악적 측면이 바뀌었지만, 즉흥적인 음악적 대화의 모습은 지금가지도 계속 지켜져오고 있는데, 특히 이곡, ‘Big Blues’ 에서도 인터플레이의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마이크 마니에리와 스티브 갯은 다시 한 번 선배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연주를 연주로 마무리합니다. 후주엔 마치 펑키 소울 트레인을 연상시키는 잼으로 마무리해줍니다.
'60년대 초 애틀랜틱 시절 짐 홀과 아트 파머의 모습
사실 아트 파머와 짐 홀은 일반적으로 웨스트 코스트, 쿨 재즈 스타일의 주요 연주자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60년대 아트파머/짐 홀 쿼텟으로 활동하면서 퓨전을 포함해 좀 더 새로운 재즈의 스타일을 시도 하고 만들게 됩니다. 특히, 유러피언 클래식 음악과 재즈의 다양한 교합을 시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이 앨범의 4번째 마지막 곡은 인상주의 클래식 작곡가 라벨의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느’를 편곡, 연주하고 있습니다.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짐 홀의 1975년 <Concierto> 앨범에서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을 이미 시도한 전력이 있고, 익숙한 멜로디에 재즈 코드 진행을 바탕으로 솔로 하는 방식은 당시에 가장 많이 활용된 프로덕션 스타일이기도 했으니까 충분히 납득할만한 시도라고 보면 될 듯 합니다. 자칫 상업적 기회로 인한 음악적 평가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CTI를 비롯한 수많은 70년대 재즈의 혼란 스러운 상황에서 이런 종류의 작업은 흔한 케이스였습니다. 70년대 초반 마일스의 퓨전이 실험에서 전형으로 자리 잡아오던 과정에서 여러 ‘포스트 밥’, ‘스트레이트 어헤드’한 재즈 뮤지션들은 팝의 거대한 상업적 흐름을 옆에서 그저 쳐다만 보고 있기에는 매우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일부는 자의적, 타의적으로 그 흐름에 동참해 음악적 ‘밑천’을 바닥내면서 몰락하기도 했고, 어떤 뮤지션들은 이 ‘기회’를 또 다른 음악적, 혹은 상업적 탈출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파반느’에서 짐 홀의 솔로가 이런 노파심을 잠재우는 역할을 잘 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후배 기타리스트들, 팻 메시니, 존 스코필드, 마이크 스턴, 빌 프리셀이 막 재즈 신에 등장할 시기라 그들에게 더 큰 영향을 줬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앨범 <Big Blues> 는 일단 상업적으로 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시 크게 흥행을 하거나 평단의 좋은 평가가 일관성 있게 주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이 앨범의 깊은, 숨어있는 매력들이 들리기 시작하고 평단과 팬들이 좀 더 많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수작 반열에 올라갔습니다.
매우 많은 밴드에서 사이드 맨으로 활동하였고 또한 다수의 리더작도 남기긴 했지만, 오리지널한 넘버가 그리 많지 않았던 아트 파머와 짐 홀은 이후 이렇다 할 성공작을 함께 만들어 내지는 못했지만, 그들 각자는 8-90년대에도 여러 의미 있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특히 짐 홀은 후반기 다시금 음악성이 만개하며 화려하게 재조명을 받게 되었죠. 사실 짐 홀의 기타 연주는 웨스 몽고메리 이후 가장 중요한 재즈기타 스타일리스트로 공히 인정받으며 거장중의 거장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화려한 테크닉을 지니고 있지 않았으며 페르소나를 등진 연주로 한동안 이목을 끌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솔로들과 작곡들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의 코드 플레잉은 이 앨범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기타 보이싱의 간결함을 핵심으로 모던한 재즈기타의 테크닉과 방향에 아주 큰 단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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