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 - 또 다시 업그레이드 된 프로듀서 비전과 역량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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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d Mehldau
프로그레시브/아트 록에의 오마주 담아낸 동시대 재즈 사운드
또 다시 업그레이드 된 프로듀서 비전과 역량
브래드 멜다우의 2002년도 앨범 <Largo>가 처음 발매 되고난 뒤 뮤지션들의 반응은(필자의 주관적인 기억에 의하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던 것 같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별로다, 재능이 아깝다, 스무드 재즈에서 딱 두발짝 직전에 위치해있다 등’으로, 앨범 전반에 매우 박한 평가를 하기도 했었죠. 반면, 또 다른 뮤지션들과 팬들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는데, 사실 너무 긍정적이어서 이 앨범 <Largo>는 지금까지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의 커리어 베스트 셀링 앨범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더랬죠 (단, 해외의 경우에 한합니다)
이젠 누가 뭐래도 브래드 멜다우는 90년대 말 부터 지금 까지 현존 가장 중요한 재즈 피아니스트중 한명으로 재즈의 역사를 실시간으로 계속 써가는 몇 안되는 컨템포러리 재즈 뮤지션 중 한명입니다. 그래서 그가 연주하고 작업해 내는 모든 작품들과 연주들은 어떤 식으로든 꽤 큰 주목을 받는 게 자연스럽고 당연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작품 하나가 새로 발매되면 좀 더 자세히, 현미경을 동원해 그의 작품들과 연주들을 일일이 평가하고 미세 분석하기도 합니다. 브래드 멜다우와 같은 현재진행형 ‘거장급’ 뮤지션들은, 이미 재즈 신의 주된 영감이 된 수많은 선배 재즈 피아니스트들, 듀크 엘링턴, 아트 테이텀, 버드 파웰, 텔로니어스 멍크, 빌 에번스, 허비 행콕, 칙 코리아, 키스 재럿 같은 이들의 계보와 이어져서 재즈의 역사라는 거대한 카탈로그의 기준점이 되는 역할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올해 브래드 멜다우가 새로이 발매하는 신작 <Jacob’s Ladder>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신선하고 흥미롭습니다. 서두에 언급한 <Largo> 때 처럼 다시 한번 양쪽의 견해로 갈릴 수 있을 것이고, 이 음악의 느낌과 의미에 대해 격렬하게 서로 논의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작품들이 담고 있는 재즈와 컨템포러리 음악의 모호한 연결고리들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인지가 ‘가장 주요한 관전 포인트’이겠지요.
글/정수욱, 김희준 사진/Nonesuch, Sofie Knijff
컨템포러리 재즈 아티스트로서의 창조적 일면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번 앨범 <Jacob’s Ladder> 는 20년 전의 <Largo>와는 일견 전혀 다른 관점, 견해가 생길 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선 미리 단언하건데 이 음악들을 ‘재즈라고 부를 것이냐 아니냐의 논쟁’은 너무 근시안적이고 소모적인 시간낭비에 불과할 거라 자신합니다. 이미 그 선은 예전 <Largo> 이후부터 진작에 넘어섰다고 여겨져요. 그의 어쿠스틱 재즈 트리오 사운드를 원하신다면 그냥 멀리 갈 것도 없이 ‘90년대 앨범들인 ‘아트 오브 더 트리오 시리즈’만 평생 반복해서 들어도 지겹게 느껴지지도 않을 뿐 더러, 그 작품들만 확인해도 브래드 멜다우의 음악성 자체를 의심할 일은 전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아트 오브 더 트리오’의 재즈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가 20년 가까이 지난 2022년에 만든 앨범 <Jacob’s Ladder> 을 통해 만들어내고 있는 음악들은, 재즈가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새로 찾아나갈 영감과 창작의 영역을 깊이 들여다보는, 여느 레전드 급의 아티스트들이라면 별 거부감 없이 당연히 해봄직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Largo>와 이번 앨범 사이에 대략 20여년 정도의 시간 간극이 있었고, 이런 탈 장르적인 컨템포러리 사운드의 음악들이 그 사이에도 무척이나 많이 나왔지만, 브래드 멜다우 특유의 프레이징과 네러티브가 완벽한 연주와 같이 뒤엉켜있는 유기적인 앨범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누구든 신디사이저 솔로를 할 수 있지만 브래드 멜다우 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뿐이라는 얘기죠.(다소간의 촌스러운 매력까지 포함해서!)
이 앨범은 보편적인 재즈에서는 듣기 힘든 70년대 프로그래시브 록적인 음향적 발자취와 흔적들이 아주 강하게 깔려있지만, 동시에 재즈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만이 만들 수 있는 특유의 컨템포러리 재즈 사운드가 매우 잘 담겨져 있기도 합니다. 앨범 사운드의 핵심으로는 또 다른 컨템포러리 재즈 드러머인 마크 줄리아나와의 듀엣 콜라보 앨범에 많은 아티스트들이 세션이나 게스트처럼 참여한 형태처럼 되어 있지만, 이번 앨범은 이전의 앨범들보다 더 셀프 프로듀서적인 역할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편곡과 사운드 밸런스가 포진되어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어쿠스틱, 일렉트릭, 그리고 악기 편성의 곡들의 배치는 앨범의 일관성이란 측면에서 그의 다음 프로젝트가 오로지 ‘프로듀싱’으로만 이뤄진 작품이어도 별 상관없을 정도로 무척 좋아진 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되네요.
넘쳐나는 70년대 프로그레시브/아트록의 세례
젠틀 자이언트, 예스, 러쉬와 같은 그룹들의 음악은 멜다우 자신의 10대 유년 시절 음악적 영감이었을 것이고(무척 조숙하게도 말이죠!) 이에 대한 오마주와 헌정으로, 이제 중년의 나이에 다다른 재즈 레전드가 내재된 음악적 사유를 좀 더 여유롭게 그 영감과 융합시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재즈 버전으로 커버한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인 것도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부르는 게 완전히 어긋난 표현은 아니지만 그러기엔 좀 더 ‘컨템포러리-재즈’라는 수식어가 가까울 듯합니다. 우선, 기교적인 정교함이나 싱글라인 즉흥연주가 주된 연주가 아닌, 전체의 맥락을 위한 ‘재료’로 임무부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대 재즈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언급하기에는 ‘재즈’가 가진 바운더리를 매우 넓게 펼쳐야 그 범주에 속할 것 같은 사운드와 구성도 한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포스트-비틀즈 세대, 그러니까 1970년대 이후 태어난 재즈 뮤지션들에게 이런 전통 재즈의 어법 전환과 변화는 그리 낮선 것이 아니며 이는 멜다우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2019년 그의 생애 첫 그래미상 수상작이 된 앨범 <Finding Gabriel> 에서도 강하게 느껴진 그의 성서와 종교적 메시지의 해석에 관한 매우 개인적인 관점이 이번에도 역시나 작품 속에 뚜렷이 녹아 있습니다. 창세기 구절들을 사용한 영어와 독일어(?) 내레이션과 보컬 토널 엑센트들은 그가 평소 느끼는 종교의 의미와 용도, 역할 등을 음악, 특히, 재즈 피아니스트가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미디엄을 통해 연주하는 크로매틱 라인들에서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심지어, 앨범 재킷의 사다리 아트 디자인에서 보이는 브래드 멜다우 자신이 만든 ‘야곱의 사다리’가, 무언가로부터 구원 받아야만 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현실의 종교적 세태를 꼬집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하면 좀 많이간 과장 일까요? 성서의 구절에 멜로디를 붙이는 작업부터 오디오 보컬 콜라주까지 어떻게 표현을 하던 해석은 여전히, 듣는 사람, 개별 청자의 몫이긴 하겠지만 말이죠.
이번 앨범의 주요 음악적 소개가 된 트리오 러쉬의 1981년도 발매작 <Moving Pictures>
유튜브에 공개된 앨범의 첫 트랙 ‘Maybe as His Skies Are Wider’ 를 통해서 이번 앨범의 음악작업들과 그 단면들을 잠시 엿볼 수 있습니다. 우선 지난번 <Finding Gabriel>과 마찬가지로 아주 많은 보컬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토비아스 베이더(Tobias Bader), 베카 스티븐스(Becca Stevens), 크리스 틸리(Chris Thile), 페드라 마르틴스(Pedro Martins), 소피아 맥키니 애스커(Sofia Mckinney-Askeur), 세실 맥로린 살반트(Cecil McLorin Salvant) 등의 화려한 보컬 게스트 참여, 그리고 멜다우 자신도 보컬로 곳곳에서 음향적 레이어를 쌓아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하프, 리노레(베이스를 닮은 고악기), 만돌린까지 등장하고 있고, 색소폰과 각종 목관들도 공간감을 제공하면서 편곡적 세밀함에 참여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채로운 악기들로 사운드를 채워내고 있음에도 역시나 가장 주된 악기들은 마크 줄리아나의 드러밍을 제외하면 스테인웨이를 포함한 멜다우의 다양한 건반들과 신디사이저들입니니다. 단 이전 앨범들에서는 마치 ‘연주용’으로 배치된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작, 편곡용’으로 배치된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진짜 프로그레시브 록 트랙인 ‘Herr and Knecht’에서 멜다우는 프로펫 신디를 만든 데이브 스미스와 탐 오버하임이 만든 OB6와 Moog modualr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메인테마에 해당하는 베이스 리프로 포문을 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싱클라비어나 CMI Fairlight 등과 함께 1980년대를 호령하던 Emu Emulator II 빈티지 샘플링 신디사이저를 앨범 전반에 사용하면서 과거 프로그레시브 록의 사운드를 무척 잘 오마주하고 있습니다. 이 신디사이저 사운드의 백미는 젠틀 자이언트의 곡 ‘Cogs in Cogs’의 3부작 편곡 중 마지막 3악장의 솔로 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블 푸가’라는 부제의 신디사이저 즉흥연주는 무그 모듈러(일반적인 미니 무그가 아닌 모듈러 방식의 초창기 신스)와 OB6를 동시에 연주하면서 신디사이저 개척자인 웬디 카를로스와 키스 에머슨 같은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가들의 스타일에 헌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앨범의 여러 보컬리스트중 만돌린 천재이자 그룹 펀치 브라더스의 멤버이며, 탁월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한 크리스 틸리가 노래한 캐나다의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트리오 러쉬의 명곡 ‘Tom Saywer’는 이번 앨범에 수록된 리메이크 곡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으로 2012년부터 투어와 앨범활동을 같이한 크리스 틸리의 보컬과 만돌린 게스트가 곡만큼이나 친근함을 전해줍니다. 예전에 배드 플러스 같은 팀들도 이 곡을 커버하긴 했지만, 이 멜다우 버전은 <Taming the Dragon<, <Finding Gabriel> 에서의 편곡적 색채를 더 뚜렷이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원곡의 기본 틀을 가장 잘 살리고 있기도 하죠. 특히 이 곡의 엔딩은 첫 곡으로 등장한 테마를 이어가면서 프로그레시브 록밴드들의 테마들이 이어지는 인용과 삽입과 같은 곡 구성법들을 차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편 트랙 ‘Vou correndo te encontrar / Raceca’에서는 기타리스트 커트 로젠윙클의 추천으로 참여하게 된 브라질 출신의 신성 뮤지션 페드로 마르틴스가 앨범 후반부 기타와 보컬 일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드럼을 포함한 모든 악기와 코러스를 멜다우 자신이 연주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부분에서는 포스트 코로나가 가져온 ‘프로덕션 홍수’라는 지점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이콥 콜리어와의 활동으로도 잘 알려진 싱어송라이터 베카 스티븐스의 활약은 이번 앨범에서 매우 두드러집니다. 그녀의 전천후 보이스가 멜다우의 신디사이저 택스쳐와 이번 작품들에서 매우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녀의 협업으로 레이어링된 보컬 코러스 더빙 사운드도 앨범전반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Epilogue
마지막으로 지난 <Largo> 앨범에선 프로듀서인 존 브라이언(Jon Brian)의 역할이 얼추 5할이었다면, 이번 앨범에선 엔지니어이자 베이시스트이며 뉴욕의 일렉트로닉 뮤지션인 존 데이비스의 역할이 그 정도가 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뉴욕 벙커 스튜디오의 엔지니어이기도 한 존 데이비스의 사운드스케이프와 샘플 프로그래밍은 최근 멜다우와 마크 줄리아나의 작업에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아마 모듈러 신스의 프로그래밍에서도 그의 몫이 클거라는 예상도 앨범의 사운드 결을 통해 볼 때 추측가능한 부분입니다.
P.S 이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이 앨범의 LP 버전은 현재 글로벌 바이닐 공급 부족으로 인해 올 하반기로 출시가 밀려있는 상태입니다. 이 사실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이번 멜다우의 음악을 소개하면서 이 음악들이 LP로 발매되는 게 많은 음악 팬들에게 중요한 지점이 있어 보여서 입니다. 이번 앨범에서 브래드 멜다우의 핵심적인 음악적 영감중 하나는 언급했다시피 7-8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의 음악이었고, 바로 이 장르에서 LP 앨범 포맷의 중요성은 당시 아주 주요했었고 일종의 음악적 ‘규격’이기도 했었던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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