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프리셀(Bill Frisell) - 오케스트라와 함께 집대성한 담백하고도 깊은 음악세계l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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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프리셀(Bill Frisell)
커리어 첫 오케스트라 협연작 발표한 거장 재즈 기타리스트
오케스트라와 함께 집대성한
담백하고도 깊은 음악세계
마치 3대 맛집 마냥 ‘최고의 3인’을 뽑아 줄 세우는 것을 선호하는 우리네 문화 속에서 미국의 3대 재즈 기타리스트는 언제부터인가 팻 메시니, 존 스코필드, 빌 프리셀 이 세 명이었다. 그것은 사실, 관객을 모을 수 있는 티켓 파워와 재즈 신 안에서의 활동 등 현실적인 내용을 보더라도 이들 세 명과 4등과의 갭은 상당히 커 보이는 것이 현실이었다. 올해로 72세 1951년생의 존 스코필드와 동갑내기 빌 프리셀, 그리고 69세 1954년생의 팻 메시니 세 명은 그 다음 세대인 1970년생 커트 로젠윙클이 등장하기 전까지 197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대략 2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 시대의 색깔을 규정하는 상징적인 인물들로 자리 매김해 왔다. 글/재즈 기타리스트 오정수 사진/Monica Frisell, Matthew Septimus, Anita Soukizy, Carole D'Inverno Blue Note Rec.
빌 프리셀 트리오 라인업 - 드러머 루디 로이스턴, 베이시스트 토마스 모건, 기타리스트 빌 프리셀
미국 재즈 신의 시대적 흐름, 변화에 대한 단상
로젠윙클과 동갑인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 한 살 어린 색소포니스트 크리스 포터 등 1970년대 생을 주축으로 이끌어낸 그 다음 세대의 재즈는 이른바 오드 미터(Odd Meter) 라고 부르는 5박자, 7박자 혹은 그 이상의 어려운 박자의 음악을 재즈의 중심으로 가지고 왔고, 딜레이 이펙터를 사용하며 컨템포러리 재즈 기타의 사운드를 새롭게 정의한 로젠윙클 덕분에, 이후의 기타리스트들은 모두 딜레이 이펙터를 들고 무대 위에 오르게 되었다.
후세대의 새로운 음악을 향한 고민은, 홀수 박자를 엮거나 또는 그 전세대가 사용하지 않던 새로운 화성 진행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이, 주로 이성적인 고민을 통해 얻어지는 방식으로 그 해결방안을 찾았는데, 그것은 완전히 같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우리에게 1940년대 미국 재즈계에서 있었던 변화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빅밴드 스윙음악 반주에 지친 재즈 연주자들은 새롭고 창의적인 재즈 음악에 목말라 있었고, Three Deuces 같은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댄스 뮤직인 스윙과는 전혀 다른, 빠르고 복잡한 음악인 비밥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찰리 파커를 대표로 하는 비밥 음악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재즈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스타일로, 재즈의 전통을 지켜내는 가장 굵은 줄기로 자리하고 있는데, 반면에 재즈 마니아가 아닌 음악 팬의 입장에서 외부적으로 당시의 음악적 변화를 바라본다면, 비밥의 등장으로 인해 재즈는 일반 팬들을 너무 많이 잃게 되었고, 메이저 대중음악에서 언더그라운드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설상가상, 기술의 발달로 증폭된 사운드를 이용하는 록과 소울 음악의 급부상으로, 재즈는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후세대인 로젠윙클 세대의 컨템포러리 재즈 기타 음악은, 전세대인 50년대 생들이 그 음악적 정체성을 자기가 속한 문화권 안에서 감성적으로 그 소재를 취했던 것에 비해, 더 이성적이었고 차가웠으며, 복잡하고 낯설었다. 재즈를 처음 접하는 입문자들에게는 어쩌면 모두 다 비슷비슷한 음악으로 들릴 정도로 그 기본 컨셉트가 대동소이 했고, 비밥이 그랬던 것처럼 초심자에게는 어디부터 멜로디고 어디부터 솔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음악이었다. 그런 음악적 경향은 또 한 세대 20년 정도를 유지해왔고, 최근 들어 젊은 비르투오소 줄리안 라지가 자기 문화권 안에서 감성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로 인해 새로운 세대가 열릴 수 있게 될지 기대하게 된다.
한편 이전 세대 기타리스트들이 자기가 살아 온 문화 안에서 소재를 취해 재즈와 융합(Fusion)한 아이디어는 가히 당시 재즈를 구원 할만한 획기적인 것이었다. 미국 중부출신 백인인 메시니는 포크와 록을, 동부 오하이오 출신인 스코필드는 좀 더 도시적인 록과 펑크(Funk), 소울을, 볼티모어 출신의 프리셀은 컨트리, 포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감성적으로 청자를 설득해 냈는데, 세 사람 중 특히 빌 프리셀은 나머지 두 명과도 더 구분되어진다. 왜냐하면 메시니와 스코필드는 퓨전 음악을 함에도 재즈의 정석이라고도 여겨지는 비밥을 꾸준히 이어오면서 자신의 뿌리가 그래도 재즈에 있음을 상기시켰는데, 프리셀은 그에 비해 비밥을 깊게 다루지 않았고(그의 음악에 비밥의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기타 사운드와 프레이징은 ‘과연 재즈 기타리스트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오케스트라 편곡, 지휘자와 함께한 빌 프리셀 트리오. 좌로부터) 알렉산더 헨슨, 토마스 모건, 빌 프리셀, 루디 로이스턴, 마이클 깁스
문화가 쉽게 한쪽으로 획일화되는 우리 동네의 시각으로는, 그가 그래도 여전히 레전드 재즈 기타리스트로 받아들여지는 미국의 다양성과 포용성이 부럽기도 하고, 우리 문화에서 그런 창의적인 변종이 나타난다면 대중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말 것이라는 상상도 따라오게 되는데, 그래서 더더욱 “그렇다면 프리셀의 음악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가치 있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것은 당연히 아주 복합적인 것이지만, 큰 틀에서 볼 때 빌 프리셀의 경우 “컨트리/아메리카나 음악의 힘”과 “주제 의식”이라는 두 가지 요인을 먼저 꼽고 싶다.
2018년 5월 기준 미국인의 음악 선호도 조사에서 50%의 미국인이 컨트리 음악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반면 재즈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미국인은 20%. 현실적으로 재즈 팬보다 컨트리팬이 2.5배 더 많은 것이다. 게다가 지역별로 바라보면 컨트리 음악을 좋아하는 인구는 미국 전역을 커버하는 반면, 재즈를 듣는 인구는 LA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와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동부의 일부 도시 지역만을 커버한다. 그러니, 프리셀의 컨트리적 접근은 재즈만을 카테고리해서 바라보는 것보다 사실상 훨씬 더 많은 관객을 대상으로 더 파급력 있는 음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미국의 컨트리 음악이 인기 있는 음악이 아니라, 우리는 인지하기 어렵지만, 사실 컨트리는 미국에서 재즈 보다 비교가 무색하리 만큼 인기 있는 대중 음악이다.
또 프리셀이 음악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 의식은 기타 연주자가 아닌, 가수로 비하자면 어쩌면 밥 딜런의 그것에 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We Are the World; The Greatest Night in Pop] 다큐멘터리에서, 테크닉과 성량이 뛰어난 기라성 같은 가수들 사이에서 다소 위축되어 있는 밥 딜런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가 보컬 스킬로는 여느 가수보다 절대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의 노래가 말하는 주제는 필요한 시점에 그 사회에서 적절한 지점을 짚어주고 있기에 그의 음악은 더욱 가치를 가진다. 그런 점을 바로 프리셀의 음악에 적용 시킬 수 있다. 프리셀이 선택해서 연주하는 음악은 미국인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필요한 부분을 건드려주는 음악들이고, 그 때문에 그가 현란한 기교를 가진 연주자가 아님에도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앨범 수록곡들에 관하여
지금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이 앨범 <Orchestras> 의 엔딩을 장식하는 마지막 트랙 ‘We Shall Overcome’ 도 마찬가지이다. 이 곡은 인권과 인종의 평등, 자유를 구하는 공민권 운동의 테마송처럼 활용되었던 곡으로, 원래는 흑인 찬송가인데 1940년대 흑인 직물 공원들의 쟁의에서 불리면서 시위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본 작에서도 함께하고 있는, 현재 빌 프리셀 트리오의 레귤러 멤버, 베이스의 토마스 모건과 드럼의 루디 로이스턴 트리오로 발표한 2020년 앨범 <Valentine> 도 역시 이 곡을 마지막으로 앨범을 마무리 한다. 이 곡의 의미를 우리의 경우로 치환하면, 김민기의 ‘아침 이슬’을 한국 재즈 아티스트가 연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한다면, 어려운 박자를 쓰거나, 복잡하고 모던한 재즈 화성을 대입시키는 것은 여간한 아이디어가 아니라면 어울리지 않을 수 있겠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우리 사회에서 원래 ‘아침이슬’이라는 곡이 가지고 있던 의미와 감정과는 너무 멀어지기 때문이다. 프리셀이 연주하는 ‘We Shall Overcome’ 의 해석도 역시 같은 생각인지, 차분하고 담담하게 곡의 멜로디를 읊어간다.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발표된 본작은, 다른 두 오케스트라가 빌 프리셀 트리오와 프리셀의 대표곡들을 연주한다. CD로는 두 장, LP로는 세 장으로 구성되는데, LP 버전에서는 CD나 스트리밍에서 들을 수 없는 곡도 담겨져 있다. 첫 번째 CD 앞부분 아홉 곡은 거의 60명에 달하는 브뤼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알렉산더 핸슨(Alexander Hanson)의 지휘로 연주하고, 두 번째 CD 뒷부분 일곱 곡은 11인조 움브리아 재즈 오케스트라가 마누엘 몰비디니(Manuele Morbidini)의 지휘 아래 연주한다.
재즈 아티스트가 자신의 대표곡을 오케스트라와 녹음/공연하는 것은 여느 앨범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섭외하는 것은 일반적인 재즈 앨범 제작 규모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고, 대부분은 기관이나 단체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는 경우가 더 많기에, 그런 작업은 그 아티스트의 예술적 업적을 인정하고 존경을 표현하는 의미도 가지게 된다. 본 작은 두 오케스트라와 있었던 두 번의 의미 있는 공연을 기록하고 있다.
편곡을 맡고 있는 마이클 깁스(Michael Gibbs)는 86세의 노거장 편곡가로, 길 에번스처럼 재즈 오케스트라에 록적인 아이디어를 도입해, 재즈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팝 음악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역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자코 패스토리우스, 팻 메시니, 존 스코필드부터 조니 미첼, 휘트니 휴스턴, 피터 가브리엘 등 그의 손을 거쳐간 아티스트들은 너무나 많다. 특히 비브라폰 연주자 게리 버튼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유명한데,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프리셀과도 5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친밀한 관계로 지내왔다. 그래서 그런지 편곡은 프리셀의 음악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는 듯, 즉흥성이 강한 이들 트리오의 인터 플레이를 전혀 방해하지 않고 적절히 파고든다. 또한 모든 것이 사전에 정해져 있어야만 하는 오케스트라의 라인을 즉흥 연주 안에 녹여내는 것은 쉽지만은 아닌 작업일 것이다.
첫 곡 ‘Nocturne Vulgaire’는 깁스의 곡으로 2분여 동안 오로지 오케스트라만 연주한다. 이 장엄한 분위기 가운데 도대체 어떻게 프리셀이 등장하게 될 지 기대하게 한 후, 슬며시 등장하는 기타 사운드는 전체 작품의 문을 열며 이후의 음악을 암시 해주는 복선으로 작용한다. 그 기타 연주는 그가 자주 연주하는 빌리 스트레이혼의 대표곡 ‘Lush Life’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앨범에는 ‘Strange Meeting’, ‘Monica Jane’, ‘Throughout’처럼 프리셀의 곡도 있지만 뿐만 아니라, 그가 평소 즐겨 연주 했던 곡들이 담겨 있다. ‘We Shall Overcome’처럼 민속적인 포크 곡이 또 하나 있는데, 1800년대 미국의 슈베르트로 불리는 스테판 포스터(Stephan Foster)의 민요 ‘Beautiful Dreamer’가 그 곡이다. 우리도 단번에 들으면 알아챌 수 있는 익숙한 멜로디이다. ‘Doom’, ‘Electricity’, ‘Sweet Rain’ 세 곡은 두 오케스트라가 두 번의 공연에서 같은 곡을 한번 더 연주하기도 하는데, 다른 편성의 다른 공연에서 곡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해서 들어보는 즐거움이 있다.
프리셀이 지니고 있는, 마치 본인의 느릿한 말투와도 같은 기타 프레이징은 나이가 들고 근육이 쇠퇴해도 전혀 노쇠함이 느껴지지 않는 일관된 사운드를 가지고 있다. 그의 그런 표현 방식은 평생 예술가로 살아온 빌 프리셀의 삶의 지혜처럼 느껴지고, 1시간 30분의 음악 마지막 트랙까지 듣고 나면, 필자 또한 그에게 가슴에서 우러나는 존경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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