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튼 나시멘토, 에스페란자 스폴딩(Milton Nascimento & Esperanza Spalding) - 진솔한 오마주에는 언제나 감동이 있다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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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ton Nascimento & Esperanza Spalding
브라질 MPB 거장과 스타 재즈뮤지션의 첫 콜라보레이션
진솔한 오마주에는 언제나 감동이 있다
서로 다른 시대를 향유한 선후배 뮤지션들이 그 시간 간극을 뛰어넘어 함께 소통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순간은 작품의 내용 성과를 떠나 그 자체로 늘 반갑고 흐뭇합니다. 연배로는 아버지와 막내 딸뻘인 밀튼 나시멘토와 에스페란자 스폴딩은 실제 걸어온 시대와 음악적 행보가 겹치지는 않지만 적어도 에스페란자에겐 그와 함께 뭔가를 한다는 것이 그저 대단한 브라질 출신의 거물 뮤지션과의 콜라보레이션 이상의 큰 의미가 있죠. 초기 시절 그녀의 음악세계에 녹아있는 선율적, 감성적 뉘앙스에 담긴 라틴의 풍미 상당부분은 바로 밀튼 나시멘토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그녀는 이 영향을 오래전부터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감에 웨인 쇼터와 더불어 가장 큰 축을 이루어온 이 거장과의 협업을 언젠가 꼭 한번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하네요. 이 열망은 이미 현역 일선에서 거의 은퇴한 노구의 뮤지션을 설득했고 다시 한번 열정을 발휘해 음악을 만들어내게끔 독려합니다. 자신의 음악적 상상력과 영감의 90% 가 밀튼 나시멘토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말할만큼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이 브라질의 거물 MPB 아티스트의 진가가 과연 어떠하기에 에스페란자 스폴딩 같은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 입에서 저런 이야기가 망설임없이 나올까요? 궁금하시다면 이 커버스토리 글을 한번 읽어보세요. 그리고 이번 음반을 시작으로 밀튼 나시멘토의 음악들을 한번 찾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특정 장르의 범위를 넘어서는 복합적이면서 지성미와 세련됨을 겸비한 유니크한 음악성을 만나실수 있을 겁니다. 본문 글/재즈기타리스트 정수욱 사진/Pedro-Napolinario, Concord, Universal Music.
에스페란자 스폴딩은 ‘21세기‘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재즈 아티스트들 중 한명으로, 이들은 이전 시대의 재즈가 투사하던 보편적 관행이나 전통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경향을 강하게 갖고 있다. 아날로그를 강하게 열망하지만 한편으로는 디지털로 타이트하게 감겨지고 첨예하게 변화한 음악환경에 적응하며,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이전과는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또, 소셜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 문화, 음악적 다양성의 확장을 음악성 자체의 주된 요소로 만들어낸 세대이기도 하다. 이른 바 ‘신세대’ 재즈 아티스트 중 한명인 에스페란자는, 2006년 앨범 <Junjo> (Ayva Musica/2006)으로 데뷔 후, 지난 17년간 9개의 리더작 앨범들과 수많은 협업 작업들, 그리고 흑인 여성 재즈 뮤지션으로는 처음으로 그래미 최우수 신인상(그때 후보가 무려 저스틴 비버와 드레이크였다)을 타는 등, 그녀는 커리어 초반부터 화려한 족적을 만들었고,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지금 세대의 가장 중요한 재즈 뮤지션 중 한명이 되었다. 그녀의 앨범들은 전반적으로 음악적 성향이 뚜렷한, ‘작가주의 정신’이 강한 앨범들로, 이번 신작 <Milton + esperanza>(Concord/2024) 역시 자신의 음악세계에 큰 영향을 준 브라질의 거장 밀튼 나시멘토에 대한 헌정의 의미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앨범 <Milton + Espreanza>는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헌정 앨범으로, 두 사람이 같이 노래하거나 편곡과 프로듀싱에 같이 참여하거나 하는 등의 공동 작업을 담고 있다. 2015년 마지막 앨범<Tamarear>을 만든 뒤, 2022년도 80세 기념 공연을 마무리 한 뒤 더 이상 공연과 투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밀튼 나시멘토를 직접 설득해 그가 사는 브라질 리오의 자택 마루에(밀튼이 TV를 보며 편히 남은 여생을 보내고 있던!) 녹음장비를 설치하고 앨범과 곡 얘기를 나누고 보컬녹음 작업까지 같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앨범은 두 사람이 직접 밀튼 나시멘토의 5곡과 에스페란자 스폴딩의 오리지널 곡들을 선택하며 시작되었다고 한다. 처음 들었을 때엔 조금 의아하게 생각되었던 비틀즈와 마이클 잭슨의 레퍼토리도 이 둘의 조우를 위한 소재이자 소중한 편곡의 결과물이 된 점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여겨지며, 동시에 이 앨범이 많은 대중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기대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게다가 초호화 게스트 피처링 리스트도 눈길을 끈다. 거장 포크 뮤지션 폴 사이먼이 밀튼과 같이 노래한 ‘Um Vento Passou’ 는 폴 사이먼이 몇주간 포르투갈어로 밀튼의 가사와 멜로디를 직접 익혀 노래했다고 한다. 밀튼 나시멘토가 직접 그의 친구이기도 한 폴 사이먼을 위해 만든 곡으로 같은 시대 다른 문화권의 거장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존중하는 특별한 의미도 가지고 있다. 곡 후반부 에스페란자의 보컬 백그라운드도 두 노장의 거칠지만 부드러운 대화에 몽환적인 이미지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채색해주고 있다. 또한 재즈 보컬 레전드인 다이앤 리브스 역시 마이클 잭슨의 환경 운동송가(?)인 ‘Earth Song’에서 가진 역량을 쏟아 부어 멋진 보컬을 들려 주고 있고, 고(故)웨인 쇼터의 아내였던 캐롤리나 쇼터의 목소리로 쇼터의 곡 ‘When You Dream’을 완성하고 있다. 이 곡은 밀튼의 오랜 친구인 웨인 쇼터가 밀튼과 같이 작업한 1974년 걸작 앨범 <Native Dancer> (Columbia/1974) 이후, 오랜만에 발매한 첫 솔로 앨범 <Atlantis>(Columbia/1985)에 수록된 곡으로 에스페란자에게는 이 두 영웅의 교차되는 영감을 트랙으로 담는 게 반드시 필요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 밖에도 R&B 싱어송라이터 리안 라하바스, 브라질의 차세대 MPB 스타 마리아 가두 등이 격의 없이 참여한 보컬 코러스 편곡등도 이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
앨범 수록곡에 관하여
앨범 <Milton + esperanza>은 총 16트랙으로 메인 트랙들과 짧은 인터루드들이 사이사이에서 이 둘의 대화나 몽환적인 영감의 순간들을 채우고 있다. MPB (Música popular brasileira)는 브라질 대중음악을 지칭하는 이름이자 70년대 초 밀튼 나시멘토와 같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브라질의 음악적 정체성을 모던 팝의 새로운 어법, 사운드로 풀어낸 장르다. 브라질 20세기 대중음악의 대표적인 아티스트인 밀튼 나시멘토의 앨범 <Clube Da Esquina>(Odeon/1972)는 당시 브라질 음악의 전형성을 벗어나 록 밴드 롤링 스톤스나 비틀즈가 보여줬던 ‘팝의 영역’까지 수용하면서 중요한 성과를 느끼게 해준 MPB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앨범의 수록곡 ‘Cais’는 앨범의 첫 번째 밀튼 나시멘토 리메이크이기도 하다. 50여 년 전 30대 초반의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지만, 자신의 TV소파에 앉아 손녀 뻘인 에스페란자와 호흡을 맞춰 부르는 굵고 거친 호흡에서 그의 젊은 팔세토 미성을 더 이상 들을 수는 없지만 뛰어난 음악적 본능과 감각은 시간이 얼마나 흘러도 감출수가 없는 것 같다. ‘Outubro’는 1969년 밀튼의 명반 <Courage>(CTI/1969)에 수록된 곡으로 그는 이 앨범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허비 행콕과의 첫 작업을 하기도 했다.(이 앨범의 수록곡 ‘Vera Cruz’를 종종 연주했던 팻 메시니는 에스페란자가 대학시절 열렬하게 좋아했던 뮤지션이었다) 이 곡은 새 앨범에서 소프트한 터치의 70년대 펑크(Funk)로 편곡되어 펼쳐지는데 앨범의 주요작업들에 참여한 에스페란자의 투어링 메인 밴드(기타에 맷 스티븐스, 드럼에 저스틴 타이슨과 에릭 둡, 오래 같이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뉴욕 피아니스트 리오 제노베세, 신디자이저의 코리 킹 등)가 연주에 참여하고 있고, 엘리나 핀더휴의 플루트 솔로 연주도 인상적이다.
에스페란자가 밀튼을 음악적 영감의 대상으로 처음 만나게 된 건 그녀가 버클리 음대를 다니던 즈음 한 식사자리에서 우연하게 들은 웨인 쇼터의 <Native Dancer>에서 흘러나온 밀튼의 목소리였다고 한다. 그날 이후, 밀튼은 에스페란자의 여러 음악적 영웅 중 하나가 되었고, 그녀의 두 번째 앨범 첫 곡으로 밀튼이 1975년 발표한 곡 ‘Ponta de Areia’을 리메이크 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그래미 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재즈 뮤지션으로 최우수 신인상을 타게 만든 3번째 리더작 앨범인 <Chamber Music Society>(Heads Up/2010)에서는 밀튼을 직접 초빙해 게스트보컬로 한 곡에 참여하게 된다. 사실 필자가 보기에 에스페란자의 보컬이 보편적인 서양 메인 스트림 재즈와 흑인 음악에서 조금 다른 궤를 가진 가장 큰 요인이 '웨인 쇼터'의 색소폰 라인을 '나시멘토'의 보이스처럼 부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는데, 그런 지점들이 이번 앨범을 통해 좀 더 명확하게 보였다.
또, 에스페란자와 밀튼은 이 앨범의 대부분의 보컬 트랙을 속된 말로 디지털 포토샵 처리(메이저 아티스트가 이걸 하지 않는 건 극히 예외적인 일이 된지 오래다) 하지 않고 최대한 녹음된 원음 그대로 믹싱하고 있다. 그녀와 밀튼의 ‘유기농 코러스’는 이 꾸밈없는 진정성의 하모니를 아티큘레이션으로 사용하고 있고,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대한 진솔함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고 음악과 그 본질에 접근하려는 에스페란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본다.
Epilogue
그녀는 커리어 초기부터, 사회적 이슈와 인종, 인권 등의 메세지를 표현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으며, 매우 적극적인 행보들을 펼치기도 했다. 2017년부터는 하버드 음대에서 교수진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몇해 전 그녀의 인종, 사회적 관점과 충돌한 학교 정책에 반대하면서 교수진에서 하차하기도 했고, 최근까지 자신의 고향에서 회복을 위한 센터 건립을 위해 힘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소위, ‘천재 혹은 천부적인’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뮤지션들은 음악 안에 음악보다 더 큰 뭔가를 담으려는 경향이 종종 보인다. 주변의 기대라는 중압감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가진 ‘재능’이 이미 주어진 선물에 보답하려는 보상 심리일수도 있지만, 에스페란자 스폴딩, 제이콥 콜리어, 비제이 아이어 같은 ‘천재’들이 스티비 원더 같은 초거물급 뮤지션으로 성장해 자리 잡는 경우는 기대보단 확률이 낮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과정에서 아티스트들의 초기시절 반짝이는 재능이 도리어 헤어 나오기 힘든 박스 코너로 스스로 몰아넣는 덫으로 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대라는 중압감으로 인해 더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내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그로 인한 심리적인 불안감이 한몫한 것이기도 하고.
헌정 앨범들은 늘 있어왔지만 원래 이전 시대나 이미 세상을 떠난 아티스트들에 대한 음악적 경외의 표현이었던 것들이 현재는 생존해계시는 분들, 전성기는 지났지만 음악적 의미의 재조명 등의 여러 이유로 직접 협업을 통해 만들어내는 헌정앨범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만큼 자신만의 온전한 음악세계와 작업의 부담감을 음악시장에서 덜 느끼고 싶은 반증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신작 <Milton+esperanza> 역시 현재 세대의 탑 아티스트가 자신의 음악적 영웅과 같이 만드는 협업이지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조금 다른 관점의 접근이 엿보이기도 한다. 이제 팔순이 넘은 브라질의 국민 가수 중 하나인 밀튼 나시멘토 젊은 시절의 음악적 영광을 끄집어내어 재조명하려고 하기보단, 에스페란자 자신이 갖고 있는 음악적 경외감과 찬사를 마치 ‘할아버지’ 같은 밀튼의 거칠고 두꺼워진, 하지만 진솔한 울림의 목소리 형태로 살아생전 같이 음악을 담아내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래서 앨범 커버 이미지 또한 별다른 꾸밈없이 마치 ‘스냅 인증 샷’처럼 두 사람의 얼굴을 예전 필름카메라로 찍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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