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는 새로운 바하가 필요해! 1
- 엠엠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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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는 새로운 바하가 필요해!
천사같은 그녀와의 슬픈 만남
LA4의 ‘누보바하’와 자끄 루시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인턴으로 근무하던 때였습니다. 응급실을 맡고 있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앰뷸런스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어느 환자가 실려 왔습니다. 2층 옥상에서 떨어진 20대 초반의 여자 환자였습니다. 고와 보이는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의식은 있었으나 하반신의 감각이 없었고 여러 신경 반사에도 이상을 보였습니다. 급히 정형외과로 연락을 했고 그 날 밤새 수술을 했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그 후 한 달이 지나고 응급실 인턴에서 정형외과 인턴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녀를 보았습니다. 담당 교수님의 환자 중에 그녀가 있었던 것입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그녀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마음에 그녀의 차트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나이는 22세로 직업은 유치원 교사이고 사고 당일 저녁 2층 옥상에 말려놓은 고추를 걷으러 갔다가 발을 잘못 디뎌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떨어지면서 척추 뼈가 부러지고 부러진 파편이 척수신경을 손상시켜 다시는 허리 이하를 느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고 믿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너무나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링겔을 꽂고 혈액채취를 하다보니 그녀와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자신을 아프게 한다고 싫어했는데 그럼에도 천연덕스럽게 웃어만 주었더니 곧 그녀도 마음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정말 천사 같은 여자였습니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유아교육을 전공해 유치원에 취직했고 항상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물론 그 일도 몇 개월 못 해봤지만... 아이들과 어울려 행복한 몇 개월을 보내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남자 형제가 없어서 맏이인 자신이 넉넉하지 못한 집안 일을 많이 도와드리곤 했는데 그러던 그 날 이렇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순수하고 솔직하게 하는 것을 보고 왜 이런 착한 사람이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그녀의 맑은 두 눈에 맺힌 이슬을 보면 가슴이 아파 오기까지 했습니다.
그녀는 클래식을 좋아해서 피아노를 배웠는데 이제는 피아노도 치기 힘들게 되었다며 슬퍼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척추 마비환자에게도 가끔 기적 같은 일이 생겨 회복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위로해 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 아님을 그녀도 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린 그저 희망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물론 의사는 환자에게 절대 감정 이입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고, 지금은 많이 무뎌져 어느 정도 환자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지만 의사 초년생이던 그때는 그런 경우를 보면 나도 몰래 환자와 함께 슬퍼했
고 우울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녀는 하루종일 병실에만 있으니 너무 답답하다고, 피아노는 칠 수 없으니 음악이라도 듣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병실에는 라디오 밖에 없었고 6명이 쓰는 방이라 그녀가 좋아하는 클래식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가을이었습니다. 우리는 창 밖의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면서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특히 바하를 좋아했고 듣고 싶어했습니다. 무슨 음악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난 재즈를 좋아하는데 클래식도 좋아는 하지만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당시 인턴이었기 때문에 집에 자주 가기가 힘들어 음악을 들은 지 오래되어서 그녀와 이야기 나누며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반신이 마비되어 변을 제대로 보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열흘이 넘게 변을 보지 못해 관장을 하게 되었는데 관장을 하자 무척 많은 양의 변이 나와 침대 시트까지 더럽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간호사와 함께 치우고 그녀의 몸을 닦아주었습니다. 그녀는 무척이나 창피해하며 끝날 때까지 고개를 돌리고 심지어는 부끄러움에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부터 고개를 돌리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창 밖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드디어 인턴 생활 가운데 한 달에 두 번 갈 수 있는 집에 가는 날이 되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도착하자마자 자고, 잠깐 일어나 밥 먹고, 그 다음날 다시 병원에 갈 때까지 오로지 잠만 잤었는데 그 날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유학간 동생 방을 뒤져서 오래 되었지만 아직 잘 돌아가는 낡은 휴대용 카세트를 찾아냈습니다. 어떤 음악을 녹음해 주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바하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클래식은 보통 사람들의 지식 정도 뿐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괜히 어줍잖게 바하를 녹음했다가 맘에 안 들면 어떻게 하나 고심하며 CD장을 뒤적거리다가 발견한 것은 LA4의 앨범이었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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