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들 3
- 엠엠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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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urn To Forever
강은 그 주 토요일 오후 리츠 칼튼 호텔 2층 커피 숍에서 선을 보고 있었다.
"이제 늙은이들은 빠집시다. 중요한 건 당사자들이니까 알아서들 잘 하겠죠. 철수야, 차는 대기시켜놨으니까 나갈 때 프론트에 얘기하면 된다.”
강의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여자 측의 어머니와 소개를 시켜주었던 중년의 아주머니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님 회사 주식이 요즘 한창 뜨던데요? 작년에 좀 사놨어야 되는데 병원 일만 하다보니 뭘 알아야죠. 시간도 안 나고...”
여자의 아버지는 대기업의 전자통신계열 사장님이었다.
“그게 뭐 내껀가요? 그리고 전 그런거 상관없어요. 집에서 시집 가라고 맨날 구박해요. 난 좀더 놀고 싶은데... 저 잠깐 볼일 좀 보고 올게요.”
여자가 화장실을 간 뒤 강은 차갑게 식은 블랙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저거 보통 아니군. 선수인 것 같아. 오늘은 선수끼리 만났군. 어차피 이런 거 그냥 재밌게 놀다 가면 되겠군. 하긴 저 정도 집안에 저 정도 인물이면 남자들이 가만 두지 않았겠지. 보아하니 그 에미도 말하는 투나 차림새가 장난 아닌 걸 보면 좋은 학교는 보냈어도 좋은 인격은 가르치지 못했겠군.’
자리에 돌아와 앉는 그녀에게서 희미한 담배냄새가 났다. 강은 피식 웃었다.
“왜 웃어요?”
“어차피 너도나도 별 결혼할 맘 없어 보이는데 서로 시간낭비 하지 말자. 나도 선을 봐야 용돈을 주기로 했거든. 너도 혹시 옷이라도 사준다고 해서 나온 것 아냐?”
“어머, 그렇게 심한 말을...”
“내숭떨지마. 그래도 요 근래 선본 애들 중에 니가 제일 난데? 참 예쁘게 생겼다. 몸매도 죽이고, 모델 대회에 나가도 되겠어.”
여자는 잠시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같이 피식 웃었다. 강이 건네준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녀가 말했다.
“실은 갤러리 명품관에서 본 미소니 니트가 입고 싶었거든. 근데 좀 비싸더라고. 거기다 용돈도 다 떨어졌구해서 선보겠다고 한거야. 후후! 이 옷인데 이쁘지 않니?”
“그래, 이쁘다 이뻐. 기왕 이럴 바엔 우리 오늘 하루 어디 가서 실컷 놀다 가자.”
“그래 좋아. 근데 서울은 싫어. 아는 사람도 많고 복잡해서...”
둘은 호텔 커피숍에서 나와 강의 빨간 색 엘란에 몸을 싣고 올림픽 대로를 탔다. 강은 올림픽 대로에서 잠실 방향으로 계속 가다가 미사리를 지나 팔당대교를 건너 양평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넌 음악 좋아하니?”
“이 손가락을 봐. 어렸을 때 피아노 한 옥타브가 닿지 않는다고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 사이를 찢는 수술을 받았어. 아무튼 베토벤까지 쳤지만 너무 힘들었어. 피아노는 쳐다보기도 싫어. 덕분에 음악은 좀 좋아하게 되었지만...”
“실은 나도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어. 아버지 때문에 의사가 되었지만 말이야. 난 성악을 좋아해서 카루소 같은 유명한 성악가가 되고 싶었지. 그런데 요즘은 재즈를 더 좋아하게 되었어. 클래식은 작곡가의 의도를 잘 살려서 작곡가의 감성을 얼마나 완벽하게 재생하는냐가 중요하지만 재즈는 그렇지 않아. 똑같이 따라하는 것은 재즈가 아니야. 그런 악보는 필요가 없어. 자신의 음악적 감성을 그때 그때 악기로 표현하는 거야. 멋있지 않아? 재즈 잼 세션이 열렸는데 아무도 악보를 가져오지 않았고 각 파트를 맡은 사람들끼리 한번도 맞춰보지도 않았지만 훌륭한 즉흥연주가 가능하지. 이게 재즈야. 클래식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지만...”
“후후, 보기보단 많이 알고있네? 아무것도 모르는 부잣집 아들처럼 생겼는데...”
“피아노를 좋아한다면... 뭐가 좋을까... 그래. 이건 어때?”
강은 칙 코리아의
“영원으로의 회귀... 제목 멋있지 않아? 재킷도 멋있고. 고등학교때 LP로 처음 들었는데 그땐 재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도 온몸에 전율이 오더라고. 보통 갈매기 앨범이라고 부르지. 그땐 청계천에 가서 빽판으로 구할 수밖에 없었어. 나야 뭐 아버지한테 부탁해서 미국에서 사 가지고 왔지만... 그 갈매기는 매우 상징적이야. 부푼 꿈을 안고 수평선 너머의 넓은바다를 향해 비상하는... 이 앨범을 통해 재즈는 퓨전이라는 방식으로 대중이라는 지평선 너머의 넓은 바다를 향해 성공적으로 날아갈 수 있었지. 멋있지 않아? 영롱한 전자 피아노 소리에 몽환적으로 깔리는 여성 보컬, 듣는 이의 가슴을 휘젓고 다니는 플루트 소리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도 화려한 드럼소리. 퓨전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앨범이지.
퓨전 앨범의 시초라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어보면 조금 덜 다듬어진, 좀 더 원초적인 갈매기 음반처럼 들려. 피아노를 쳤으니까 밥 제임스를 알지? 밥 제임스는 클래식 음악도 했잖아.”
“음. 좀 들어 봤어. 나도 재즈 피아노 쪽은 조금 알아. 키스 자렛이나 허비 행콕, 밥 제임스도 조금 들어봤어. 우리나라에서는 김광민, 신관웅도 알고 서울대의 김성관 교수님도 클래식을 전공하셨으면서 재즈 피아노를 연주하는 분이지. 후후.”
“야~ 이거 대단한데? 지금껏 선본 애들과는 확실히 다르군. 뭔가 느낌이 통하는 것 같아. 아무튼 밥 제임스가 몸담고 있는 Fourplay라는 퓨전 재즈 그룹이 있어.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과연 이게 팝인가 재즈인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듣기 편하고 화려한 기교와 장식이 많지. 그런데 이들의 음악에서 온갖 장신구를 다 떼어내고 화장도 지우면 갈매기 음반과 비슷해져. 거기서 겉옷을 몇 개 더 벗겨내면 비치 앨범이 되고 홀라당 벗기면 본연의 재즈만 남는거야.”
두 사람은 그렇게 음악을 이야기하며 양평으로 가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의 뛰어
난 화술로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그의 음악적 감성에 그녀는 쉽게 마음을 열었다.
“양평으로 가는 길은 북한강을 따라가게 되어서 그런지 경치가 참 좋은 것 같아. 저 조용한 강과 강가를 따라 핀 나무와 꽃들 좀 봐. 너무 멋있지 않니?”
“좀 더 가면 멋진 카페들이 나오는데 지중해라는 곳이 괜찮더군. 통기타 라이브를 하는 곳이야. 둥그렇게 지은 건물인데 바닥이 유리이고 큰 잉어들이 지나다녀. 레스토랑 전체가 큰 어항인 셈이지. 거기서 저녁을 먹고, 양평대교를 건너가다 보면 더 멋진 카페들이 많아. 피라미드처럼 생긴 곳도 있는데 커피는 거기서 마시자. 그 근처에 스페인 하우스라고 강변을 배경으로 한 모텔도 있지. 피곤하면 거기서 좀 쉬고 가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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