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들 4
- 엠엠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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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Coffee
“이 친구는 성악을 하고 싶어 했었죠. 어이 강선생, 카루소의 앞부분만 좀 해봐.”
“별로 재미없거든요? 우리끼리 할 얘기도 좀 있어서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노랗게 물든 긴 머리에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말했다.
“유선생, 그만 일어나지.”
강은 하얀 회칠을 해 이탈리아 분위기가 나는 벽 한쪽자리에 가서 앉았다.
“오늘은 영 안되는데? 벌써 세 번이나 딱지를 맞았군. 그래도 여기 분위기 죽이지?”
“그렇게 늘 엮이는 건 아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맥주나 좀 더 마시다가 아래층에 재즈 라이브나 들으러 가자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니 가운데에 무대가 있고 무대를 중심으로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난 술 그만 마실래. 진한 커피가 좋겠어. 일찍 깨고 들어가 세미나 준비나 해야겠어”
강은 구석진 곳에 자리잡아 진한 블랙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담배에 불을 붙이며 눈을 감았다. 뿌연 담배연기 속으로 울려 퍼지는 여성 싱어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강한 외로움 때문에 한 잠도 잘 수 없다는 가사로 시작하는 ‘Black Coffee’였다.
I''m feeling mightly lonesome, Haven''t slept a wink,
I walk the floor and watch the door and in between I drink....Black coffee,
Love''s a hand me down brew
I''ll never know a Sunday in this week day room.
I''m talking to the shadows 1 o''clock to four, and Lord how slow the moments go
when all I do is pour Black coffee
Since the blues caught my eye.
I''m hanging out on Monday,
My Sunday dreams to dry...
강은 왠지 낯익은 목소리에 싱어의 얼굴을 보았다.
“아! 이럴 수가...”
그 순간 그의 머리 속으로 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유난히 음악을 좋아했던 사춘기 시절, 성가대에서 테너 파트를 하고 싶어 다녔던 큰 교회, 거기에서 만난, 그보다 더 음악을 좋아하던 소프라노 파트의 그녀, 함께 들었던 많은 음악들, 함께 나누었던 숱한 음악가의 이야기들, 연습이 끝난 성가대실에 남아 노래했던 두 파트만의 완벽한 화음, 둘만의 공연 후 마시곤 했던 자판기의 블랙커피, 파바로티의 카루소를 흉내내며 훌륭한 성악가가 되려던 꿈, 함께 가고 싶었던 음대, 반드시 서울 의대를 가야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무참히 깨져버린 꿈, 집안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직접 그녀를 만나 다신 못 만나게 했던 어머니, 깊은 상처에 대학을 포기해버린 그녀, 다른 의대는 안 된다고 3수까지 했던 힘든 공부, 대학을 포기한 그녀가 통기타 가수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 재수시절 그 카페에서 들었던 그녀의 많은 노래들, 그녀의 부모를 만나 그녀 때문에 재수를 실패했다고 트집 잡던 어머니, 멀리 이사 가면서 다시는 찾지 말아달라고 울면서 그를 보낸 그녀, 독한 술과 뿌연 담배로 지샌 그 숱한 방황의 날들, 다신 음악을 듣지 않겠다고 모두 갖다버린 LP, 어느 날 문득 말도 안 되는 불협화음에 온 마음을 뺏겨버렸던 일, 그 이후 중독된 재즈, 블랙커피를 마실 때마다 떠오르던 성가대 실에서의 그녀 모습...
너무나 많은 생각과 감정에 주체하지 못하고 행여 그녀가 자신을 알아볼까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두 곡을 더 부르고 무대에서 내려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바닥이 점점 흐려지더니 뜨거운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니, 강선생 왜그래?”
눈물을 닦으며 강이 말했다.
“드디어, 그녀를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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