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들 5
- 엠엠재즈
- 조회 수 163
My One And Only Love
아카시아 꽃향기가 온 밤을 하얗게 물들여 그 설레임 때문에 잠을 설치기 쉬운 밤이었다. 거기다 어느 나이 어린 산모의 고통을 함께 하느라 밤을 꼬박 지새우고 어렴풋이 해가 뜨기 시작하던 어느 봄날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고등학교 동창 녀석이 상기된 얼굴로 여자친구와 함께 찾아왔다.
그 친구는 참 특이한 녀석이었다. 좋아하는 건 꼭 하고야 마는 성격이어서 부모님과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특히 진로문제에 있어서는 음악을 너무 좋아한 탓에 음악을 전공하고 싶어 했지만 종합병원 원장님이신 아버님께서 의사의 길을 종용하는 바람에 삼수까지 해서 의대에 진학한 친구였다. 그렇게 원하던 걸 하지 못한 까닭인지 의과 대학 시절 방황도 많이 했다. 좋아하는 가수나 연주자의 공연이 있을 때면 수업도 빼먹고 지방까지 내려가곤 했는데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의과대학은 거의 한달 가까이 시험을 보는데 그 때도 3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보느라 밤을 새우며 피를 말리고 있었다. 그 때 그 친구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외쳤다.
“야, 너 이 소리 들리냐?”
수화기 너머에서는 희미하게 쏴아아 하는 파도소리가 났다.
“여기가 어디냐 하면 부산이야. 오늘 부산에서 공연 있잖아. 그래서 왔어. 오전에 해부학 시험보고 집에 가는데 활짝 핀 아카시아 꽃향기가 날 유혹하더라고. 다른 과들은 축제하느라 열심히 놀고 있는데 이렇게 시험이나 보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더군다나 오늘부터 부산에서 공연이 시작하거든. 봄 바다는 정말 좋구나. 여름처럼 붐비지도 않고 겨울처럼 처량하지도 않고. 너도 올래?”
친구는 시험이 끝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한과목만 낙제를 해도 일년을 다시 해야 되기 때문에 그 친구는 일 학기 중간고사 이후 스스로 유급을 자청하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물론 집에는 비밀로 하고 그렇게 일년을 보내면서 그 동안 못 했던 일, 가보지 못 했던 곳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지냈다.
가끔 그런 그의 용기가 부럽기도 했는데 특히 시험 때는 더욱 그랬다. 너무 많은 양의 공부를 힘들어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보단 그가 대단해 보였다. 의대는 빨리 졸업하는 게 최고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음악 중에서도 특히 노래 부르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순전히 성가대에 들고 싶은 마음에 내가 다니던 제법 큰 교회에도 함께 다녔었다. 그리고 거기서 여자 친구를 만났다.
그녀 역시 노래를 좋아함은 물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져 성가대 소프라노 파트의 리드싱어를 맡고 있었다. 두 사람은 주말마다 만나서 함께 성가대 연습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가까워졌고 곧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고등학교 삼학년이 되자 그는 진학문제로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음대에 가고 싶었지만 전혀 레슨을 받게 해주질 않으셨다. 결국 아버님이 원하는 의과대학에 지원했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그녀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사정으로 시험도 보지 못하고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졸업 후 일 년을 더 만났지만 의과대학시험에 다시 떨어진 그의 완고한 부모님들은 모든 것을 그녀 탓으로 돌리고 말았다. 결국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만류로 큰 상처를 입은 그녀는 그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엠엠재즈 웹사이트 관리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