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와 버드나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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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와 버드나무
Willow Weep For Me
산부인과 전문의가 되었던 첫 해에는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십 여 년 동안 잠깐의 여유도 없이 늘 바쁘고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살아 온 것에 대한 회의도 들었다. 더군다나 5년 간 도시 중심가에 위치한 병원에서의 수련 생활은 찌들대로 찌든 감성을 완전히 메마르게 만들었다. 무작정 이 도시를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도시의 회색 빛 빌딩들이 싫었다. 숨쉬는 푸른빛이 너무도 그리웠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새로 얻게 된 직장은 동해안의 작은 바닷가 언덕 위의 하얀 병원이었다. 본래 호텔을 지을 계획이었던 만큼 진료실에서 내려다보이는 해안이 아름다워 도시 생활에 찌든 마음이 맑게 치유되리라 믿었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600 병상 가운데 400 병상을 정신과가 차지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그곳에서 상처 난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언덕을 내려와 보리밭 샛길을 걸어 해안 도로에 이르면 곧장 해변에 닿았다. 그 해변에는 자그마한 모래사장이 있었고 양옆은 울퉁불퉁 솟아 오른 바위들로 이루어진 해안 절벽이었다. 진료가 끝나고 나면 으레 그 아담한 모래사장에 앉아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그곳에서 바라본 바다는 참 오묘했다. 바다는 하늘에 따라 여러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해가 뜨는 아침이면 하늘의 빠알간 모습을 비추어 이제 막 잠에서 깬 해가 부끄럽지 않게 해주었고, 화창하고 푸르른 날에는 더욱 더 푸른빛을 담아내어 흥을 돋구어 주었다.
그리고 화가 나 잔뜩 찌푸리고 바람이라도 불어대면 성난 물결을 만들어 누가 하늘을 화나게 했느냐고 같이 노하면서 어두운 잿빛으로 분을 풀어주었다. 그렇게 하늘과 바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엮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꾼은 하늘과 바다뿐이 아니었다. 하늘의 색에 따라 변하는 바다처럼 들판도 계절 따라 색색의 의상을 갈아입었다. 계절에 따라 화사한 꽃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푸르른 신록의 전설과 황금 빛 곡식의 꿈을 이야기 해 주었다. 특히 사월 말께서 오월 초에는 진초록 옷을 입고 있었는데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초록의 물결은 생명의 강렬한 에너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이 청보리임을 알게 된 것은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어떤 소녀를 통해서였다. 내가 그곳에서 보냈던 날들이 큰 의미 없이 무료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마지막 생을 보낸 소녀의 하루하루는 내가 지낸 십 년만큼의 시간과도 같았다. 그녀의 슬픈 이야기는 그녀의 아버지부터 시작된다.
삶의 마지막에 다다른 소녀
그녀의 아버지는 대학시절 유신을 반대하다가 간첩으로 몰려 삼척군 신기면이라는 태백산 자락 인적 드문 벽촌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신분을 숨기고 밭을 가는 어느 노인의 집에서 일을 도와주며 살게 되었다. 혼자 사는 노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서울에 있는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작업 도중에 손을 다쳐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자 고향으로 내려와 일을 돕게 되었다.
서로 일을 도와주며 생활하다 보니 그와 노인의 딸은 사랑하게 되었고 몇 년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둘은 식도 올리지 않은 채 부부로 살았다. 그 후 그들에게는 아기가 생겼지만 병원에도 가보지 못하고 집에서 아이를 낳다가 하혈이 심한 산모는 딸을 낳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렵게 혼자서 딸을 키웠는데 딸은 아버지를 닮아 매우 똑똑해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 쓰는 재주가 있어 아버지를 놀라게 하곤 했다. 딸이 자라면서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가까운 읍내에는 학교가 없어서 조금 떨어진 도시로 보내 자취를 시켜주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 어느 날부터인가 딸의 배가 점점 불러오는 것이다. 가끔 집에 들렀을 때에나 만날 뿐이다 보니 처음에는 그저 살이 찌는 줄로만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병원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처음 본 그녀의 배는 만삭의 산모 같았다. 진찰 결과 난소암이 의심되어 큰 도시의 대학 병원으로 전원 시켰으나 한 달 만에 다시 되돌아왔다. 이미 간과 폐에까지 전이된 말기 암이라는 것이다.
수술 후 항암제 치료를 받으면 약간의 수명연장은 기대해 볼 수 있었지만 그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다고 했다. 검사료마저도 간신히 장만했다는 것이다. 거기다 신분상의 노출을 꺼려 큰 도시로는 도저히 갈 수 없고 어차피 불가능하다면 이 병원에서 마지막을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한 달 사이 그녀의 상태는 많이 악화되어 있었다.
그때가 4월말이었다. 언덕 아래 들판은 온통 진한 초록빛 청보리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창 너머 바다가 보이는 병실로 회진을 갔을 때 소녀는 폐에 물이 차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면서도 내게 말을 건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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