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으로의 회기 2
- 엠엠재즈
- 조회 수 204
날아라 갈매기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하다보니 어느덧 집에 돌아와 방안 전축 앞에 서 있었다. 성적이 많이 올라가면 사준다는 약속으로 갖게 된 그 당시 나의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던 인켈의 모델명 1-2-3-4 전축이었다. 모노 라디오 카셋트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사운드였다. 턴테이블의 고무판에 행여 먼지라도 있을까 염려되어 깨끗이 닦고서는 음반을 꺼내 올려놓고 LP용 스프레이를 뿌렸다. 그리고는 음반이 가장 깨끗한 상태일 때 녹음을 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투자한 크롬 공테이프를 준비하고는 드디어 바늘을 음반 위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치이익 하고 바늘이 음반 테두리를 지나갈 때의 소리를 낸 후 대가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몇날 몇일을 꿈꾸었던 음악이 흘러 나왔다. 감동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이 음반을 갖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던가. 감히 앉지도 못하고 벽에 기댄 채 두 눈을 감았다.
숨막히는 전율에 소름이 돋아나오며 14년 전 1972년의 뉴욕이 보였다. 칙 코리아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록 음악의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재즈는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리듬앤 블루스에 밥 계열의 재즈를 접목시켜 소울이라는 장르를 만들었지만 옛날 스윙재즈가 누리던 영화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 대안이 퓨전이라는 방식으로 재즈에 다른 음악을 들여오는 것이다. 그러한 여러 시도들을 규합해 내놓은 것이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
칙 코리아는 고민 고민 끝에 라틴 음악을 가미하는 것을 생각해 냈다. 브라질 드러머인 아리토 모레이라(Airto Moreira)와 보컬리스트인 그의 아내 플로라 프림(Flora Purim)을 불렀다. 베이시스트 스탠리 클락(Stan Clarke)과 플루티스트 조 파렐(Joe Farrell)도 가세해 명반을 녹음했고 결국 그 해 각종 시상식을 휩쓸며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되었다.
눈을 떠 다시 재킷을 보니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그 푸른 바다는 수많은 대중 즉 재즈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을 의미하며 그 갈매기는 수평선 너머 거대한 퓨전재즈의 무리-퓨전록, 컨템포러리 재즈, 팝재즈, 뉴에이지 및 월드뮤직 등이 포함된-가 몰려오는 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재즈가 영원한 세계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재즈중독의 시작
그 이후로 갈매기 앨범을 수도 없이 반복해 들어 크롬 테이프가 늘어져 끊어졌건만 결코 질리지 않았으며 15년이 훨씬 지난 지금 들어도 늘 같은 감동을 준다. 지금은 주로 CD로 듣지만 LP의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결국 그 이후로 재즈에 푹 빠지게 되었고 팻 메시니의
요즘에는 재즈 전문 방송도 생기고 재즈 라이브카페까지 생겨 여러 가지로 재즈를 접할 기회가 많아 이런 시기에 재즈를 듣기 시작하는 이들이 부럽기까지하다. 한참 목말라할 때 이런 환경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힘들게 구해서 들었던 그때의 음악들에 더욱 애착이 간다. 술 담배를 끊고 모은 돈으로 레코드 가게에 가서 재즈 코너의 A부터 Z까지 한 장 한 장 뒤져서 고르고 고른 앨범을 간신히 사고서는 듣고 또 듣고 새겨질 때까지 들었던 때가 그립다.
이제는 음반 매장에 가서 한 열장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게 되었지만 듣기라기보다는 소장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때처럼 흥분되고 집에 갈 때까지 가슴 조이는 맛이 없다.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한 곡씩 인트로 부분만 듣고는 다음 곡으로 넘긴다.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조금씩 다 들어버린 탓에 맘에 안 드는 앨범은 그대로 선반에 꽂혀져 일년에 한번도 손이 안 갈 때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재즈는 나의 모든 감정을 표현해주며 끝없이 샘솟는 샘물처럼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목마름을 적셔준다. 재즈여 영원하라.
안녕하세요, 엠엠재즈 웹사이트 관리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