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Special Column - 굿즈가 되어버린 LP, 럭셔리 라이프의 BGM 재즈플리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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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시장의 성장세 이면에 숨겨진 불편한 현실들에 관하여
굿즈가 되어버린 LP,
럭셔리 라이프의 BGM 재즈플리
글/MMJAZZ 편집장 김희준
바야흐로 LP, 바이닐이 유형 음악 컨덴츠의 대세가 되어버린 시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죠. 이미 국내외를 막론하고 음악 구매자들의 기호는 LP로 넘어간 지 오래되었습니다. 시장에서의 성장세와 파급력을 고려한다면 LP가 피지컬 앨범의 주도권을 잡은 건 족히 6년은 넘었다고 봅니다. 반면 CD는 이제 해마다 생산량, 판매량 모두 급감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다만 지난 2021년 한해 CD 생산및 판매량이 깜짝 반등하긴 했습니다만, 이게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이 어렵습니다. 최소한 올 한해의 지표를 두고 파악한 뒤에나 유의미한 계측결과를 어림해 비교할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아무튼 작년 한해 바이닐의 전 세계 생산량및 판매량은 모두 다 90년대 초 이후 최고치를 또 다시 경신했습니다. 미국 시장의 경우 전년도인 2020년도에 비해 무려 51% 이상 시장판매 규모가 커졌는데 2700만장 규모에서 4200만장 정도로 1년 만에 판매수치가 급격히 올라갔죠. 또한 이런 추세는 최소 수년간 계속 이어지리라 전망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해마다 바이닐의 성장세가 끊임없이 오르다보니 이젠 연령대를 막론하고 어느 세대에나 위화감이 없는 매체가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 10~20대 젊은 고객들도 기꺼이 LP 바이닐을 구입하는데 돈을 쓰며, 그들을 소비대상으로 한 바이닐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LP가 핵심 매체였던 시기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MZ 세대들이 이렇게 LP에 관심을 갖고 이를 소비하는 것을 두고 여러 종류의 의견과 해석이 분분하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이 아날로그 매체의 실제 매력과 진가를 제대로 인식하고 접근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이 LP를 사고 또 포터블 턴테이블을 구매해 LP를 사용하는 것은 그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이미지, 느낌이 친숙하고 바이닐 소리가 반가워서 그런 게 아니라 이전에는 접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했던 신기하고 독특한 경험이 되기 때문인 게 훨씬 큽니다. 그들은 LP를 기꺼이 소비하긴 하되, 그 속에 담긴 아날로그 감성과 소리의 맛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상대적으로 극소수의 구매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며, 대다수의 젊은 소비층들은 그걸 인식하고 체득하지 못합니다. 그걸 제대로 체득하기 위해선 조그만 포터블 오디오 기기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며 여기에도 어느 정도 비용을 투자해야만 합니다만, 그렇게 접근하는 젊은 세대 애호가들은 사실 얼마 되지 않죠(추가로 부연하자면 그런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LP 시장의 발전이 야기한 변화는?!
사실 지난 2020년부터 지금까지 2년여 기간 동안 우리는 COVID-19의 대유행으로 인해 지극히 협소해진 활동반경을 갖고서 생활해야하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불가피하게 서로간의 접촉과 대면을 피해야 되는 이 상황에서 바이닐의 성장세는 둔화되거나 꺾이지 않고 오히려 더 가속화, 확장된 경향이 보였어요. 이런 성장이 과연 어디까지, 혹은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 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만, 본 칼럼의 주제와 목적은 그런 LP의 양적 성장세와는 사실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보다 이런 LP의 산업적 중흥이 우리의 음악 감상 태도와 소비 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포인트죠.
앞서 언급한 대로 10~20대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LP, 바이닐은 어필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소비의 대상으로서 바이닐이 갖는 위상과 파급력과는 별개로 현재 가장 빈번하게 이용되는 감상의 소비 패턴은 디지털 음원, 그 중에서도 바로 플레이리스트입니다. 과거로 치면 일종의 컴필레이션 앨범들과 유사한 것인데 특정한 소재, 대상, 타이틀과 미사 여구 등을 동원해 제목, 컨셉트를 정한 뒤 이 제목과 주제에 얼추 어울린다 싶은 곡들을 골라 한 묶음 형태로 정리해 올리는 것이죠. 유튜브는 물론이고 스포티파이나 애플뮤직, 유튜브 프리미엄, 타이달등 전 세계 주요 디지털 음원 서비스 업체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경쟁적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소개하고 있으며 감상자들도 이 플레이리스트를 적극적으로 소비합니다. 기이하지 않습니까? 아날로그 매체의 대표적 상징인 LP가 매년 20~30, 크게는 40~50% 정도의 성장세를 보인지 5년이 넘어가는 와중에도 실질적인 음악 감상의 패턴은 플레이리스트라는 아이러니하면서도 이중적인 현실!
성장한 시장규모로서의 바이닐 매체가 세대를 초월해 어필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과 별개로 플레이리스트를 통해서 음악을 듣고 즐기는 게 더 편하고 익숙한 젊은 세대들. 이런 상황을 접하고 보니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이렇게 수요가 넘쳐서 현재 시장공급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만큼 바이닐 시장이 매해 커져가고 있음에도 감상에 있어서 플레이리스트를 더 즐겨 선호한다면 과연 그렇게 만들어지고 판매되는 바이닐은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주로 사용이 되는 걸까요? 이에 관한 한 가지 도움 될만한 사례가 있어서 언급해볼까 합니다.
존 콜트레인의 유일한 블루노트 레이블 녹음이자 레이블 역사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재즈 앨범. 1957년도 녹음및 58년 발매작 [Blue Train].
음악 감상이 아닌, 수집대상으로서의 LP
작년 여름께 국내 서점에 등장했던 책 한권, <블루노트 콜렉터스 가이드> 라는 책을 기억하시는 재즈 팬 분들이 아마 있으실 겁니다. 일본의 한 열혈 재즈 LP 콜렉터가 지난 2009년에 처음 펴낸 이 책은 오랜 세월 발매되어온 블루노트 LP(가급적 초반위주)을 각 일련번호별로 빠짐없이 컬렉션하면서 자신의 아카이브를 쌓아온 저자의 컬렉션 일기와도 같은데, 그가 LP를 소급하는 태도와 방식에서 지금 시대의 기이할만큼 커져가고 있는 LP 시장과의 연결지점을 나름 유추할 수 있었죠. 그는 블루노트의 미국 발매 반을 어떻게든 구입하기 위해 기회가 닿는 대로 중고시장을 살피고 필요하면 경매시장에도 참여해 상태가 좋은 중고반을 확보하는 것 자체에서 큰 만족을 얻고 있었으며, 그렇게 구매한 음반을 정작 듣고 제대로 그 작품의 음악성과 연주자의 플레이를 이해하는 데에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점이 필자에게 아주 이상하게 보였는데, 왜냐하면 그의 블루노트 컬렉션 가이드 책에서 각 작품별로 그의 음악적 감상이나 실제 작품에 관한 여러 가지의 음악적 언급이 다뤄진 건 거의 없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오로지 콜렉팅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팁등을 열거해놓은 에피소드들이 책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따름이었어요. 게다가 잘못된 정보 또한 드물지 않게 보였는데 이를테면 블루노트 레이블 발매반중 가장 높은 세일즈를 기록한 게 소니 클락의 1958년도 녹음, 발매작인 <Cool Struttin'> 이라고 언급하는 대목에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 내에서 이 작품이 인기를 많이 얻었고 여러 차례 재발매 되었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본 내에서의 이야기일 뿐, 실제 블루노트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세일즈를 기록한 재즈 앨범은 지금까지 50만장 이상 누적 판매된 존 콜트레인의 <Blue Train>입니다. 무엇보다 정확한 수치상의 데이터를 제시하지도 않고서, 그렇게 막연하게 단정하듯 언급한 건 개인적으로 납득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죠. 심지어 소니 클락의 그 앨범이 블루노트 레이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라는 점을 들어 블루노트 레이블의 차별된 훌륭함을 강조하는 근거로 삼는 것 자체도 넌센스 였고요.
일본내 재즈시장에서 인기가 높았던 피아니스트 소니 클락의 앨범. 하지만 블루노트 레이블 역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은 이 작품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콜렉터들이 그러하듯 수집하는 것 자체에 일차적인 목적과 만족이 있는 것이고, 시리즈별로 빈 곳 없이 그렇게 콜렉션을 쌓아나가면 최소한 콜렉터로서는 그 자체로 자신의 소임을 다한 것입니다. 현재 LP가 전 세대를 막론하고 인기를 끌고 있는 것에서 필자는 이런 콜렉팅에 대한 유사한 욕구를 발견하게 될 때가 많은데, 바로 최근 발매된 가요 반들의 고가 리셀 거래와 거의 판박이 수준으로 닮아있는 것이 그러합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이 생기게 된 기본적인 이유는 애초 LP 타이틀의 수요자체가 커졌다곤 해도 압도적으로 많지도 않기 때문이며, 그렇게 제작된 수량이 시장에서 소진되고 나면 희소가치가 더해져 품절된 해당 타이틀의 시장가격이 단숨에 기존 판매가의 2~3배 이상 뛰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시장수량이 꾸준하고 안정적이라면 좀 더 생산량을 늘리면 되겠으나 막상 그렇게 할만큼 전체 소비량이 또 크지는 않기에 생산량을 쉬이 늘리기에도 위험부담이 있습니다. 물론 그 수요를 따라갈 만큼의 공급생산량이 전 세계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인 탓도 일부 있습니다만... 그러나 필자의 시각에서 이렇게 LP 콜렉팅이 시장에서 나름 자리잡는 것만큼이나 LP를 통한 음악 감상이 전 세대를 막론하고 고르게 퍼져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필자로선 이러한 시장의 기이한 흐름이 어느 시점에 이르러 결국에는 판도가 바뀌거나 달라질 수밖에 없을 거라고 예측합니다. 지금 당장 매력적인 수집 아이템으로 바이닐이 호감을 얻어내고 있을 지라도 애초 음악감상의 도구로서 LP, 바이닐이 세대 불문하고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그 상품으로서의 수명이 한시적일 수밖에 없는 건 자명한 이치죠.
이에 반해 영미권의 LP 시장이 적어도 우리보다는 더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보이는 건 그 동네의 젊은 구매자들은 중고이건, 신품이건 감상을 통한 도구로서 LP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기본적으로 잡혀있기 때문이며, 디지털 플레이리스트외에 LP나 CD같은 피지컬 앨범들을 소비하는 게 음악 팬으로서의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걸 자신의 부모 세대를 통해 접해 와서 이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이닐을 단순한 콜렉팅 대상으로만 보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인거죠.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만들어진 50~60년대 LP들이 현재에 와서 이렇게 말도 안될 정도로 가격이 오르고 소장가치가 높아진 것은, 무엇보다 그 레이블에서 제작된 앨범들의 음악성이 뛰어나고 훌륭한 게 많았기 때문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앨범들이 세대를 초월한 가치를 갖게 된 것도 일차적으로는 그 음악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음악적 결과가 역사적으로 인정받고 검증되어가는 과정을 거쳐서 레이블에 대한 탄탄한 신뢰를 구축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레이블 초판이면 수 백만원, 심지어 몇 천만원을 줘도 구매하겠다는 콜렉터들이 생겨나게 된거죠. 하지만 한 가지 간과된 사실은, 그 초반의 높은 자본주의적 소장 가치를 위해 다른 음악적 기회비용을 날려버리는 건 진지한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큰 손실이자 낭비라라는 점입니다. 과연 초판의 높은 가격대만큼이나 그 음반으로 듣는 존 콜트레인의 <Blue Train>과 캐논볼 애덜리의 <Somethin’ Else>가 그 가격에 상응하는 음악적 만족감을 주는가?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오히려 해당앨범의 고음질 음원, 혹은 CD로 듣는 게 차라리 별 잡음없이 훨씬 좋은 음향적인 조건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상자체의 퀄리티는 더 안정적이고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초반의 보관상태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발매된 지 거의 반세기가 지났으니, 표면에 흠집이 안나있을 수가 없죠)
이제는 장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호가하는 블루노트 레이블의 초반 딥 그루브 . 마치 오래된 골동품들의 소장가치가 시간이 지날수록 오르는 것과 동일한 행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Epilogue
음악을 듣고 소비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그 음악의 실질적인 감상을 전제로 했을 때 그 가치가 이어지고 또 지속이 됩니다. 21세기, 디지털 음원의 시대에 바이닐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이하고 아이러니한 상황이 마치 아날로그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중흥 시대를 연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주지만, 수집의 대상이 되었을 지언정, 근본적으로 음악 감상 방식에 있어서는 본질적인 변화를 야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플레이리스트를 통한 음악 감상에 더 치우쳐 있는 상황인 것이며, 결국 이런 감상형태는 이전 컴필레이션 앨범들이 높은 세일즈를 기록했던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맥락으로 봐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결국 뭔가 바뀐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거죠.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쉽게 우리의 귀를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BGM으로서의 재즈 음악들, 여간한 커피숍에 가면 흘러나오는 이런 음악들이 마치 재즈와 우리의 접점을 더 가까이 가져간 듯 착각을 주지만, 정작 거기에서 누구의 무슨 곡이 흘러나오는 지, 누구의 목소리와 피아노 솔로가 들려지는 지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플레이리스트를 소비하는 다수의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이런 객체화된 음악 감상 방식은 귀에 거슬리지 않는 적당한 볼륨으로만 조정된다면 그 안에서 뭐가 나오건, 심지어 세실 테일러나 오넷 콜맨의 프리/아방가르드 음악이 흘러나오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건 음악을 듣는 게 아닙니다. 그저 그 공간이 허전하지 않고 적적하지 않도록 백그라운드 사운드를 실내 장신구처럼 깔아놓는 것일 뿐인거죠. 이런 감상의 태도! 음악을 대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재즈 팬은 물론이고 실질적인 음악 팬들의 수는 앞으로도 계속 극소수만 존재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외형상의 이슈가 지금처럼 LP가 되건, 혹은 다른 고음질 매체가 되건 간에 그 자리 그대로 계속 공허하게 맴돌 듯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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