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100년 악기 100년 | 기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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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에서의 기타
초창기 재즈에서 기타가 연주되기 이전에는 보통 흑인 몇몇이 모여 만돌린이나 벤조 같은 악기로 흥을 돋울 뿐 그 외의 다른 목적은 없었다. 그야말로 연주인이 있는지 조차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인기 없는 악기였던 것이다. 즉, 재즈에서의 기타는 하나의 독립된 악기로 인정받지 못하고 악단의 하모니를 위한 단순한 역할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기타가 대중들로부터 사랑 받고 연주인의 수도 하나 둘 늘어나게 된 데는 로니 존슨의 역할이 매우 컸다.
로니 존슨은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밴드에서 활동했으며 재즈에서 기타를 솔로로 연주한 초창기 인물이었다. 특히 로니의 기타 연주는 블루스가 가미되어 끈적이는 발라드에서 빛을 발하였고, 짧은 시간에 하나의 음계로 복잡한 즉흥연주를 구사해 큰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로니의 개척 정신을 이어받은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기타리스트 프레디 그린이 선보인 리듬 연주로 인하여 기타라는 악기의 인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로니 존슨의 동료 기타리스트였던 로니 랭은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했는데 로니와는 반대로 정통 재즈에 기초한 주법을 사용해 좀 더 화려한 코드를 연주했다.
30년대 스윙 시대의 기타리스트 테디 번은 지미 닷, 클라리넷 주자 지미 눈, 시드니 베세 등과의 연주로 대가의 반열에 올라있었고, 역시 같은 시대에 활동한 알 케시는 새로운 형식의 코드와 멜로디 위주의 즉흥연주로 인기를 얻었다. 오스카 무어는 어쿠스틱 기타가 아닌 일렉트릭 기타를 사용했는데 즉흥 연주 시 하나의 음계와 여러 코드를 사용해 당시 가장 진보적인 기타리스트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재즈 기타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30년대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재즈 기타의 대부 장고 라인하르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프랑스 집시 출신인 장고는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그라펠리를 만나면서 색다른 연주에 눈을 뜨게 되었고 찰리 크리스찬과 비교되기에 이른다. 장고 라인하라트가 재즈사에 있어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장고(Django)’라는 집시 풍의 연주를 스윙과 접목하여 연주했기 때문이다. 일부 재즈 연주인들은 이 독특한 연주법을 자신들의 주 연주 테마로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장고는 화재로 인한 튼 화상으로 왼손가락 중 약지와 중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을 사용하지 못했다.
장고의 영향을 받은 오스카 앨먼은 장고의 연주 기법과 기타 스타일 모두를 모방했지만 즉흥연주만큼은 장고를 뛰어 넘는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쳇 베이커, 스탄 겟츠 등과 협연하면서 널리 알려진 벨기에 출신의 린 토마스는 역시 장고의 모든 것을 그대로 옮겨왔고 필립 캐서린은 장고의 연주를 모방해 자신의 스타일로 만든 뛰어난 기타리스트이다. 비렐리 레그린은 장고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독특한 연주를 잘 살려 일렉트릭 기타의 최고봉에 오른 기타리스트이다. 특히 비렐리는 퓨전으로 옮겨와 더욱 활발한 활동을 선보였는데 천재 베이시스트 자코 파스토리우스와의 협연은 아직도 명연으로 남아 있다.
장고의 영향을 받은 연주인들에 이어 재즈 기타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찰리 크리스찬에 대해 살펴보자. 찰리 크리스찬은 텍사스 출신의 흑인 재즈 기타리스트로 블루스, 록, 내쉬빌 사운드 등 대부분의 기타리스트들에게 영향을 준 인물이다. 그의 기타 플레이는 기존의 어쿠스틱 재즈 씬에서는 신선한 바람이었다. 일렉트릭 사운드를 재즈에 접목시켜 화려한 효과를 선보이며 40년대 비밥 사운드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연주 패턴과 즉흥연주에 있어서는 기존의 재즈 기타리스트들이 연주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는 등 언제나 도전 정신이 충만한 플레이어였다. 찰리 크리스찬의 하모닉은 재즈 기타의 최고로 통한다.
찰리 크리스찬은 자신이 사용하던 깁슨 어쿠스틱 기타의 보디에 ES-150이라는 전자 픽업을 물려 애용하였고, 이 기타는 최초의 깁슨 일렉트릭 기타로 등록되었다. 찰리 크리스찬은 베니 굿맨 오케스트라를 통해 데뷔했는데 당시 베니 굿맨은 기타 사운드가 자신의 오케스트라에 사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나 매니저와 프로듀서의 요구로 할 수 없이 찰리를 맞이해 연주했다고 한다. 당시 베니 굿맨의 악단은 모두 백인이었는데(찰리 크리스찬은 흑인) 특히 베니 굿맨이 그가 흑인이라는 점에 강한 반발을 했다가 찰리와 연주를 함께 한 이후 머리를 맞대고 클라리넷을 연주하며 춤까지 추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전해진다.
이것만으로도 찰리 크리스찬의 연주가 얼마나 뛰어난 연주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찰리 크리스찬의 위대함은 역시 연주 테크닉에서 잘 나타난다. 당시까지만 해도 재즈 기타 연주는 단순한 리듬 웍에 불과했으나 찰리의 연주는 지금의 스윕 피킹과도 흡사하게 기타 줄을 위 아래로 오르내리며 빠른 속도로 피킹했고, 왼손으로 기타 줄을 구부려 연주하기도 했다. 또 미끄러지는 듯한 슬라이딩 주법을 고안하는 등 혁신적인 연주 기법을 창안했으나 25살이라는 한창 나이에 요절해 그의 기타 연주는 그다지 많은 앨범에 담기지 못했다.
찰리 크리스찬의 뛰어난 플레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연주인으로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프레디 그린이 있다. 프레디 그린은 코드를 중요시 여기는 리듬 기타 플레이어로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했지만 찰리 크리스찬의 연주법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타이니 그라임스는 찰리의 영향 아래 블루스를 이용한 테크닉을 구사해 끈적이면서도 멋진 즉흥연주를 선보였다.
재즈 기타 뿐만 아니라 모든 기타 역사에 있어 늘 거론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깁슨 기타의 이름을 빛낸 레스 폴이다. 레스 폴은 기타리스트로서, 그리고 레코딩 엔지니어로서의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고 실험적인 연주 방식을 채택하기로도 유명했다. 찰리 크리스찬과 장고의 연주를 절충한 연주법을 선보인 케니 버렐은 50년대 하드 밥 시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하드 밥의 무거운 톤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깔끔한 연주와 독특한 스케일로 인기를 얻었다. 케니는 이후 쿨 사운드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케니 버렐과 함께 하드 밥 시대 활동한 허브 앨리스는 스윙감이 뛰어난 기타리스트로 60년대에는 바니 케슬과 함께 한 순회 연주로 재즈 기타를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바니 케슬은 비밥 시대부터 꾸준한 활동을 했는데 다양한 스케일과 테크닉으로 무장하여 장고, 찰리 이후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인정받았다. 바니 케슬의 연주는 기타에 있어 디지 길레스피이자 찰리 파커였다. 그는 당시 가장 빠르고 난해한 테크닉을 구사했고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연주와 하모니, 코드를 자신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생각 그대로 자유자재로 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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