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100년 악기 100년 | 보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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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밥 시대에 출연한 새로운 보컬
이렇게 30년대가 흐르고 재즈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할 수 있는 밥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 당시 가장 대표적인 보컬리스트는 역시 엘라 핏제럴드라고 할 수 있다. 엘라는 할렘의 아폴로 시어터 노래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재즈계에 입문해 드러머 칙 웹에게 지도를 받으며 노래를 시작했다. 재즈 역사의 여성 보컬리스트 가운데 엘라의 스캣을 따를 보컬리스트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녀의 스캣은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엘라의 갈라지는 듯한 창법에 도전장을 던진 보컬리스트는 4옥타브를 여유 있게 넘나드는 사라 본이다. 사라의 성량과 옥타브는 웬만한 성악가들을 우습게 생각할 만큼 놀라울 정도로서 엘라와는 다르게 화려한 스캣을 구사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라의 화려한 스캣은(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낀 바에 의하면) 엘라의 기계적인 스캣과는 달리 서정적으로 다가온다는 뜻이다.
사라 본의 즉흥연주는 매 순간마다 코드와 멜로디 라인의 진행을 바꿔 노래했다는 것과 특정 밴드에서 노래할 때 그 밴드의 악기 소리를 모두 보컬로 바꿔 불렀다는 것이 엘라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가장 저음인 베이스가 연주를 하면 사라는 자신의 목소리로 베이스 음을 냈고, 가장 높은 음을 내는 트럼펫이 연주를 하면 사라는 그를 받아 높은 음으로 스캣을 했다. 그만큼 사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를 발전시켜 최고의 보컬을 선보였던 보컬리스트였다.
재즈 보컬 계에서 여성의 활약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을 때 트럼페터이자 보컬리스트인 쳇 베이커가 등장해 애수에 찬 눈빛과 목소리, 그리고 잘 생긴 외모로 수많은 여인들을 울렸다. 특히 쳇 베이커의 속삭이는 듯한 보컬과 약간은 퇴폐적인 뉘앙스가 그를 더욱 많은 사랑을 받는 인기 보컬리스트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보컬리스트로는 부드러운 음성과 촉촉한 분위기로 국내에서도 시대를 초월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냇 킹 콜이 있다. 트리오의 리더이자 피아니스트로 활약하면서 간간이 보컬 실력을 선보였던 것이 대중들로부터 사랑을 받자 아예 노래만 부른 것으로 더 유명해진 케이스다.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정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의 딸인 나탈리 콜 역시 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아 멋진 노래를 선사하고 있다.)
40년대 초 베니 굿맨 악단에서 노래하며 인기를 얻었던 금발의 미인 페기 리는 재즈보다 팝적인 분위기로 성공했고 지금까지 큰사랑을 받고 있는 ‘Fever’는 팝 가수 마돈나가 색다르게 편곡해 더욱 널리 불려지게 되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더욱 빛나는 높은 코를 가진 카맨 맥레이는 독특한 보이싱과 완벽한 화음으로 5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다. 카멘 맥레이의 노래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곡 ‘Black Coffee’를 감상해 보면 왜 그녀에 대한 칭찬을 아낄 수 없는지 실감 할 수 있을 것이다.
클리포드 브라운의 트럼펫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우아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채색한 ‘Summertime’을 들어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헬렌 메릴을 기억 할 것이다. 백인 보컬리스트 헬렌 메릴은 흑인의 목소리와는 대조적인 깔끔한 보이싱으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최고의 가스펠 싱어로 인기를 누렸던 다이너 워싱턴은 매우 높고 뚜렷한 하이 톤과 블루스에 스윙을 접목시켜 큰 인기를 얻었다.
이렇게 재즈와 블루스를 접목시킨 가수들이 활동할 때 등장한 최고의 남성 보컬리스트 프랭크 시나트라는 재즈와 팝을 조화시켜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잘 생긴 외모와 잘 빠진 몸매로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 받았다. 그는 미국인들의 머리 속에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남아 있는 가수 가운데 한 사람으로 미국을 상징한다고까지 표현했던 포근한 음성, 온화한 미소, 낙천적인 성격으로 전 미국을 강타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이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워낙 많은 음반을 발매했고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기 때문에 일본에는 그의 저택도 있고 자주 이용하는 클럽에서 간혹 골든 벨을 울려 클럽의 모든 사람들에게 술을 대접하기도 해 큰 이슈를 남긴 일화도 있다.
베티 카터는 가사 대신 자신이 개발한 특이한 스캣으로 노래하는 이색적인 방식을 선보여 큰 인기를 얻었다. 가끔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의 가사를 읊조리기도 하는데 바로 그것이 모두 스캣인 것이다. 애비 링컨 역시 60년대 이후 최고의 여성 싱어로 손색이 없으며, 셜리 혼의 발라드는 영화 음악으로 많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렇게 미국에서 만들어진 재즈에 아메리칸 니그로들과 전형적인 백인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을 무렵 드디어 제3세계의 보컬리스트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보컬리스트가 바로 브라질의 삼바와 보사노바를 접목한 재즈 싱어 아스트러드 질베르토이다. 그녀는 스탄 겟츠와 함께 보사노바 재즈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고, 그녀의 남편 호아오 질베르토 역시 보컬리스트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보사노바라는 이름을 가장 널리 알렸음은 물론 보사노바 재즈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뮤지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은 추모 공연과 추모 앨범까지 나올 만큼 위대한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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