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에 맞선 상상력, 문화운동 연대기] - 양효실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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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실 지음 | 시대의창 | 2017년 02월 27일 출간 (1쇄 2015년 06월 01일)| 376P
문화란 무엇인가?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문화는 지배계급의 이념과 지배의 정당성을 전파하고 지키기 위한 일종의 진지였다. 이들이 보편이라고 강요하는 문화는 보편이 아니라 자기 예찬이고 선전이면서, 피지배 계급으로 하여금 자발적인 숭배를 이끌어내는 형식이다. 오늘처럼 대중의 기호 혹은 시장의 선택이 문화의 향방을 자연스럽게 주도한다는 대중문화 시대에도 백인, 남성, 이성애자, 엘리트로 이루어진 여론 주도층이 여전히 문화의 심판관 노릇을 하고 있다. 1977년, 영국 여왕 25주년 기념 주간에 섹스 피스톨즈의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가 앨범 판매 1위를 차지했을 때, 영국 음반판매조사단은 순위가 발표되는 차트에 밴드의 이름과 앨범의 이름을 공란 처리함으로써 자신들의 불쾌감을 드러냈다.
양효실의『권력에 맞선 상상력, 문화운동 연대기』(시대의창,2015)는 권력의 관리와 감독에 저항한 다양한 문화운동을 예찬한다. “이 책은 상투적인 말하기와 이미지에 도사린 자신들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더 이상 그 편견 안에 숨어 살기를 거부하고 길거리로 나선 소수자들의 집단적인 문화운동에 대한 것이다. 흑인, 여성, 청년, 동성애자 같은 보편적인 인간에서 제외된 이들, 게으르고 무능하고 히스테리컬하며 예의가 없고 이상한, 그래서 이성적 인간이란 규범에 포섭되지 못한 이들에 대한 것이다. 이들이 입을 열고 ‘우리는 존재한다’고 목소리를 내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어떤 상상력이 현실의 옷을 입고 구체화되는지를 보여준다.”
열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국제상황주의 이론가였던 기 드보르에 대한 소개(1장)를 시작으로 1968년 5월 68문화혁명(2장), 에메 세제르와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의 네그리튀드 운동(3장), 누벨바그와 아방가르드 영화 운동(4장), 반문화로서의 히피 문화(5장), 멕시코 벽화운동(9장), 1960년대 치카노의 정체성 회복 운동(10장), 치카노 벽화운동(11장), 스톤월항쟁과 동성애 운동(12장), 1980년대 에이즈 위기와 액트업의 행동주의(13장), 1970년대 여성주의 예술가들의 공동 작업(15장), 여성주의 예술가 단체 게릴라걸스(16장)를 다루고 있다. 이 가운데서 내가 언급하고 싶은 장은 음악과 연관된 6장(역사적 하위문화와 펑크록 밴드), 7장(레게와 밥 말리, 라스타파리아니즘), 8장(게토 흑인들의 하위문화 힙합), 17장(한국의 자립음악생산조합 아티스트)이다.
우리는 가끔씩 어떤 음악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정작 질문자가 호기심을 느낀 것이 우리의 음악적 기호일 뿐일까? 혹시 질문자는 내 입에서 텔레만, 모차르트, 말러가 나열될 때와 엘비스 프레슬리, 마리자, 조용필이 열거될 때를 기다렸다가 나를 달리 판단하거나 대접하려는 것은 아닐까? 사실이 그렇다. 음악은 순수하게 자신의 취향을 증명해 보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취향이 드러내는 것은 인종적, 지역적, 이념적, 종교적, 성별에 따른 자기 정체성이다. 펑크록, 레게, 힙합이 탄생한 역사적 문맥이나 그 장르가 지지를 얻게 된 최초의 경로가 그것을 입증해 준다.
펑크록은 1950년대, 런던의 도시 개발로 노동계급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생겨났다. 음악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조야하고 단순한 리듬과 단순하고 유치한 가사를 양식화한 펑크록은, 록이 확보하려고 애쓰는 저항의 참호마저 반납한다. 모범적인 체제 저항 청년이 하겐크로이츠를 부착하고 다니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반면, 펑크족은 단지 미움을 받는 것이 좋아서 나치 문양을 붙이고 다닌다.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분노를 사는 것을 자신의 존재 양식으로 택했던 대표적인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 역시 바로 그런 비규정성을 통해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규범 밖에 위치한다. 때문에 그들이 무엇인가를 할 때마다, 점잖은 영국인들은 배설물을 뒤집어쓰는 듯한 모욕감을 느꼈다.
한국에 정착한 레게는 여름 시즌의 바캉스 음악처럼 심각하지 않게 듣고 즐기는 음악이다. 그러나 자메이카 태생의 밥 말리가 전 세계에 퍼트린 레게는 카리브 해의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아프리카로 귀환하려는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 운동과 떼어낼 수 없는 일종의 정치적 노래 운동이다. 밥 말리의 대표곡 가운데 너의 권리를 위해 일어서라는 <깨어나, 일어나(Get up, stand up)>는 워낙 많이 알려진 저항가이지만, 제목만으로는 연가로 착각되곤 하는 <여인이여 울지 말아요(No Woman, No Cry)>의 가사 역시 권력에 굴종하지 않는 꿋꿋한 저항 정신을 담고 있다.
펑크족이 런던 도시 개발의 부산물이었듯, 미국 흑인들의 힙합 문화 역시 1959년부터 1963년 사이에 진행된 뉴욕시 고속도로 건설과 분명 상관이 있다. 힙합 문화는 브롱크스 횡단 고속도로가 브롱크스 지역의 관통하게 되면서 빈민화된 철거지구에 남은 최하층민 청년들로부터 생겨났다. “우리의 발언권은 자유 아니면 죽음이지.” 힙합을 흑인의 정치의식 고취 수단으로 삼았던 퍼블릭 에너미의 <권력과 싸워(Fight the Power)>에 나오는 일절 가사다.
2인 밴드 밤섬해적단의 앨범 <서울 불바다>를 듣고, 그들의 라이브를 들으러 간 적이 있다. 그리고 밴드에서 가사를 전담하는 드러머 권용만의 가사를 40편 넘게 건네받아『실천문학』에 소개했고, 그 가운데 10편이 게재됐다. 가사를 쓰다가 시인이 된 권용만은 인터뷰도 운 맞추어 한다.“두리반이 이 사회를 좀먹고 있어요. 건설사는 뭐하냐? 용역들은 뭐하냐? 해병전우회는 뭐하냐? 어버이연합회는 뭐하냐? 두 번째 두리반이 생겨나기 전에 확 쓸어버려야 하는데, 여태 뭐하냐? 두리반 자리에 30층 빌딩 올려 1층에 해병전우회 컨테이너 갖다 놓고 2층에 어버이연합 납골당 마련해줘야 하는데 도대체 뭐하냐?”이게 시가 아니면 뭐냐?
자본주의가 인간의 모든 욕망을 호출하여 자본으로 상용화하려고 할 때, “예술은 더욱 순수해지려는 쪽에서 자본을 거부”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원래 하나였던 일상과 예술은 이분법적으로 나뉘게 되었다. 하지만 또한 그 이분법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자본의 호출과 전유에도 저항하려고 했던 문화운동은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었다. 이 책 역시 “이러한 문화운동들이 일으킨 변화 혹은 혁명적 가능성을 기록하면서 그 계보에 동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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