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프리셀 (Bill Frisell) - 창조적인 발상에 여유와 깊이까지! ‘재즈 기타의 피카소’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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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Bill Frisell
15년만에 기타 트리오 앨범<Valentine> 발표한 전방위 기타리스트
창조적인 발상에 여유와 깊이까지!
‘재즈 기타의 피카소’
어딘지 천재적이면서 무척이나 괴짜스러운 과학자의 이미지가 그를 볼 때마다 뇌리에 떠오릅니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느낌과 이미지이지만, 그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창조해낸 음악들을 보면 이 느낌이 그리 틀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일렉트릭 기타리스트라면 누구나 다 쓰는 이펙트를 가져다 이렇게 기가 막히게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그렇고(물론 이펙트 사용가짓수와 조합은 어마어마합니다만), 그렇게 만든 사운드와 자신의 놀라운 즉흥 선율을 함께 랑데부시켜 말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입체적인 사운드를 뽑아내는 것도 일반적인 연주자의 상상력에서는 도저히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죠.
다른 기타리스트들이 2~3차원에 머물러있다면 빌 프리셀은 4차원 이상의 비전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발상이 그의 데뷔 초창기인 80년대 초반부터 이미 시도되고 있었다는 겁니다. 당대 어떤 기타리스트들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창성과 신선함은 이제 세월의 흐름에 더해 깊이와 완성도 유연성까지 갖추게 되었고, 그의 고유한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수많은 기타 후배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와 같은 개성의 소유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는 걸 보면 분명히 그는 별종임과 동시에 ‘천재중의 천재’입니다.
서문/편집부
본문/정수욱, 김희준
사진/Blue Note, Monica Frisell
요즘은 주변의 많은 것들이, 특히나 ‘요즘 음악들이, 실체나 본질을 논하거나 들여다 볼 틈도 전혀 없이 너무나도 빠르게 왔다가 머무르기를 거부하며 사라져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앨범 <Valentine> 은 모든 걸 멈추고 다시 바라보며 집중하게 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사실, 기타리스트 빌 프리셀의 음악과 기타 사운드 자체가 이러한 의미를 애초부터 지향하고 있는 ‘정의’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일종의 정적인 ‘흡입력’ 같은 거죠.
물론 그런 매력을 지닌 많은 음악들이 장르를 떠나 있어왔고, 빌 프리셀의 음악적 특징에도 있을 따름이지만, 결코 흔한 건 아닙니다. 음악적 진정성을 담으면서 동시에 신중하면서도 깊이와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아내는 게 핵심인, 이제 내년이면 70세가 되는 이 거장의 커리어는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재즈의 스포트라이트 한 가운데가 아닌, 그렇다고 변방도 아닌, 어느 한 코너에서 묵묵히 자신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지켜내어 왔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음악을 두고 B급 정서라고 말하거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일부 인디음악의 감성 작업과 연결 지어 말하기에는 애초 완성도의 차원이 다릅니다.
표현방식과 지향점에서 다소 비주류적인 성격을 가질 뿐, 음악 자체의 퀄리티, 만듦새는 당대 최고수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난 20여년간 미국음악 시장에서 메인 스트림으로 등극한 연주음악 장르중 하나인 ‘Americana’의 대표 뮤지션이기도 한 만큼 그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기엔 장르 자체가 좁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최근 앨범들, 특히 재즈 기반과 그의 독창적 기타 플레잉을 잘 들어 볼수 있는 연주들을 들어보면 확실히 정점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후배 기타리스트들이 출현해왔으며 그의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 특히, 텔레캐스터와 펜더 튜브 앰프의 사운드는 어떤 고유한 스타일과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빌 프리셀 트리오 (좌로부터 토마스 모건, 빌 프리셀, 루디 로이스톤)
새 앨범에 담겨진 느림과 사유의 미학
새 앨범 <Valentine>에서는 그와 트리오 멤버들이 라이브 녹음의 상황을 설정해놓은 뒤 좀 더 창의적인 자유로움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20세기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지’ 못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그의 창의적 지표가 이 시대를 낭만적으로 바라보고 긍정을 표현하려고 했다는 추론이 너무 단순한 상상이 아니길 바라면서 앨범을 듣다보면, 그의 음악적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새 앨범에는 자신의 ‘Song Book’ 레퍼토리들, 재즈 스탠더드, 팝 넘버, 그리고 미국 민요 등을 두루 골라 연주 하고 있습니다. 선곡을 살펴보면 현재의 글로벌 팬데믹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이 전 세계적 현상은 생물학적인 저해라기보단, 인간의 의식과 태도에 관한 시험이라는 관점에서 보편적 정서를 찾으려는 빌 프리셀의 노력도 아울러 반영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희망이라는 가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메세지도 섬세하게 들어가 있죠. 이런 배려 아닌 배려는 ‘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 , ‘Winter Always Turns Into Spring’, ‘We Shall Overcome’ 등의 곡 제목에서도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번 앨범의 첫 곡, ‘Baba Drame’ 은 그가 2003년 발표한 앨범 <The Intercontinetals> 에 수록된 아프리칸 아티스트 보부카 토레의 곡입니다. 원곡과 커버의 차이가 마치 아프리카 음악과 블루스의 간극 정도로 멀지만, 마치 공간과 시대를 초월한 이국적 표현을 심플해 보이는 기타 트리오로 재해석 하며, 앨범을 시작합니다.
이런 가정을 하나 해볼까요? 빌 프리셀을 포함한 10명의 당대 재즈 기타리스트들이 같은 재즈 스탠더드 넘버를 연주한다면 아마 가장 유니크한 버전을 연주할 것으로 미리 예상되는 연주자를 꼽아보라고 주문한다면, 나머지 9명의 기타리스트들도 하나같이 빌 프리셀이라고 말할 겁니다. 단순한 가정이지만 충분한 설득력과 개연성이 있죠. 이번 새 앨범에 담긴 빌리 스트레이혼의 초창기 곡이자 유일한 스탠더드 넘버 ‘A Flower is A Lovesome thing’ 에서 바로 그렇게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특이하게’ 연주 한다기보단, 그의 솔직한 감정과 표현력을 미니멀한 어프로치로 완벽하게 구현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시대에 재즈 스탠더드를 연주하는 가장 독창적인 방법을 찾아낸 한 사람으로 그를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레전드 기타리스트 짐 홀은 빌 프리셀을 두고 ‘기타계의 살아 있는 델로니어스 멍크’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빌 프리셀의 기타 연주와 사운드 메이킹의 유니크함을 매우 잘 나타내는 표현으로, 독창성과 자신의 음악적 진정성을 타협 없이 음악에 잘 표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최근 그의 연주에는 이펙팅보다는 클린하고 투명한 톤과 공간계 효과 음들을 잘 이용하는 어프로치가 과거에 비해 매우 돋보입니다. 특히, 리버스 딜레이나 루프 샘플러등을 활용해, 공간의 음악적 대화와 대조 대비, 프레이징을 거의 완벽하게 나타내는 그만의 ‘표준’ 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매우 미니멀한 보이싱과 이에 기반한 플레잉으로 섬세한 표현과 음악성의 깊이, 두 마리 토끼도 멋지게 잡아고 있습니다. 그 흔한 속주와 피지컬한 플레이 없이 재즈 기타리스트로서 장고 라인하르트, 찰리 크리스찬, 웨스 몽고메리, 짐 홀 등의 ‘첫 세대 재즈 기타리스트’ 이후, 가장 유니크하며 중요한 기타리스트 중 하나가 된 것은 정말 놀랍고 대단한 일이죠
다시 앨범 수록곡을 살펴보면 이전에 발표한 자신의 곡들을 다수 골라 새롭게 연주하고 있는데, 지난 2~3년 사이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이번에 새로이 구성된 트리오 연주자들(베이스에 토마스 모건, 드럼에는 루디 로이스톤)의 인터플레이가 곡들의 분위기를 다른 해석으로 흘러가게 하면서, 기존의 빌 프리셀 이미지와 새로운 ‘편곡’ 버전을 동시에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나 베이시스트 토마스 모건의 베이스 연주는 지금까지의 빌 프리셀 기타 트리오에 참여한 여러 베이시스트 가운데 찰리 헤이든 못지않게 가장 합이 좋은 조합이라고 보여집니다. 드럼이 있는 상황에서도 둘의 대화는 듀오에서처럼 명료하며, 리듬과 다이내믹의 섬세한 변화가 함께 이뤄지면서 이 앨범 사운드 전체를 멋지게 수놓고 있습니다. 또 다른 기타 트리오 라인업에 포함되어 있는 레귤러 베이시스트 토니 쉐어나 빅터 크라우스, 그리고 과거 프로젝트성격으로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는 거물급 베이시스트인 데이브 홀랜드, 론 카터 같은 연주자들과는 또 다른 빌 프리셀을 발견할 수 있게 잘 도와주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pilogue
빌 프리셀의 기타 트리오 음악은 사실 별로 도드라지지 않아서 그렇지 매우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지미 헨드릭스 트리오 이후 등장한 기타 트리오 가운데 아마 외형적으로는 가장 ‘헨드릭스’ 답지 않게 연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헨드릭스의 트리오가 지닌 독창성과 다이내믹은 빌 프리셀 트리오가 갖고 있는 트레이드 마크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퍼즈를 사용한 다이내믹의 변화(이는 이전의 프리셀 트리오 앨범들에서 특히 더 강조되었죠), 리버스 딜레이 등을 사용한 공간감의 왜곡(물론 헨드릭스의 경우 아날로그, 프리셀의 경우 디지탈 샘플러입니다)을 통한 표현력은 기타 트리오의 레벨과 차원을 다른 곳으로 상승시켜 놓았습니다.
최근 빌 프리셀은 음반사와 함께 이 앨범 전체를 LP로 플레잉하며 이야기하는 영상을 올려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SNS 환경에도 잘 적응하며 대중들과 소통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에서 나이가 무색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죠. 커리어 후반기에 와 있는 뮤지션답지 않게 왕성한 투어와 수준 높은 앨범 제작을 하고 있는 그의 절친이자 동기들 팻 메시니, 존 스코필드 등과 같은 연배들이기에 이런 멋진 작품들을 들을 기회가 우리에게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음악적 탁월함을 하나하나 일일이 끄집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번 트리오 앨범은 소식만으로 반가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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