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yuichi Sakamoto <Playing The Piano 12122020>

KAB America/ 2021

Ryuichi Sakamoto : Piano

1. Andata

2. Bibo no Aozora

3. Aqua

4. Aubade 2020

5. Aoneko no Torso

6. Mizu no Naka no Bagatelle

7. Before Long

8. Perspective

9. Energy Flow

10. The Sheltering Sky

11. The Last Emperor

12. The Seed and the Sower

13. Merry Christmas Mr.Lawrence

14. MUJI2020

15. Improvisation-20201212

스스로 관조하는 듯, 깊은 사색 내재된 피아노 음률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거장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지난 해 말 자신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그의 팬분들이시라면 잘 아시겠지만 그는 현재 암 투병중이다. 2014년 이미 인두암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던 바 있으며, 이로 인해 전과 같이 음악활동을 하지 못 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그는 더욱 분발하여 이듬해인 2015년 영화음악 작업에 참여하였고, 이후에도 다국적 감독들과 작품을 함께 하였으며 독자적인 프로젝트도 병행했다. 즉 투병 중 그의 활동 공백을 크게 느낄 수 없었다는 것.

이번 사카모토의 신작은 2020년 12월 12일 도쿄의 스튜디오에서 라이브로 녹음된 음반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당시 관객 없이 온라인 중계로 진행되었다. 2019년 초부터 불어 닥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암 투병을 겪으며 사카모토는 슬슬 자신의 음악적 성과를 정리해나가고 있는 과정으로 보인다. 이러한 와중에 팬데믹이라는 상황은 그에게 더 생각할 거리를 준 것으로 판단된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정리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계획이 틀어졌고 분명 본작도 또 다른 대안으로 나온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가령 공연장 관객들이 입장 가능한 상황이라면 큰 공연장에서 피아노 솔로로 자신의 히트 레퍼토리를 연주하고 이를 레코딩 하여 자신의 인생 마지막의 한 장면을 장식하는 계획 같은 것 말이다.   

아무튼 이번 앨범은 같은 맥락에서 또 다른 마지막을 위한 준비의 한 과정으로 읽힌다. 슬픈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사카모토처럼 사색적이고 음악가를 뛰어 넘어 배우, 모델 등 인생사에 많은 경험을 한 달인의 경지로 보면 그의 이러한 준비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무도 그의 끝이 언제인지, 어떨지 모른다. 아마 사카모토 자신만이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은데 이러한 대비(?!)를 본작 같은 음반 발표를 통해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안타깝게도 올해 초 사카모토는 또 다른 암-직장암-이 발견되었으며 앞으로도 다른 부위에 전이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 작에서 사카모토는 다른 악기 없이 오로지 피아노 한 대로만 연주하고 있다. 마치 사카모토가 자신과 대화를 하는 듯 독백적인 느낌이 강하며, 반대로 팬들은 그의 자화상을 보는 듯 그의 히트곡과 신곡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5곡이라는 많은 곡이 실려 있는데 그동안 사카모토가 만든 주옥같은 레퍼토리를 생각해본다면 15곡은 추리고 추린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선곡에 있어 아마도 자신의 음악생활 정리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인들의 피로감을 음악으로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함께 발동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너무나도 유명한 ‘Bibo No Aozora’ ‘The Last Emperor’ ‘Energy Flow’ ‘Merry Christmas Mr.Lawrence’ 등 고유의 서정적인 멜로디에 기반한 곡들은 피아노 한 대만으로도 충분히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거의 원전에 가까운 형태의 연주로 음악적 새로움은 크게 찾아볼 수 없지만 긴 암 투병 중에 이 연주가 이뤄졌기에 그 깊이나 감성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글쓴이가 애정하는 사카모토의 음반 중 하나가 바로 <1996>이다. 온전한 피아노 솔로 작품은 아니라 본 작과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지만 본 작은 <1996>와 견줄만한 사카모토 음악의 서정성과 진수가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글/재즈 칼럼니스트 강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