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연(Jiyeon Lee) - 제가 가장 행복하게 몰두할 수 있는 작업, 바로 '재즈 오케스트라'죠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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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첫 앨범 이후 10년째 재즈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오고 있는 작,편곡가
제가 가장 행복하게 몰두할 수 있는 작업,
바로 재즈 오케스트라죠
지금까지 총 4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해오면서 한결같이 중, 대형 편성의 작품들에만 집중해오고 있는 작, 편곡가 이지연. 스트링과 브라스의 어울림을 통해 풍성한 사운드의 색채를 여러가지 형태로 표현해내는 과정이 그 어떤 일보다 자신을 매료시키고 또 즐겁게 한다는 그녀. 무척이나 앳되고 소녀 같은 느낌의 외모, 어조와 달리 한번 깊이 빠져들면 앞 뒤 가리지 않고 정신없이 몰두하는 순수하고도 열정가득한 집중력을 갖추었기에 빈곤한 재즈 시장의 여건에서도 이 쉽지 않은 작업을 인내하며 버텨올 수 있지 않았을까.
트리오, 쿼텟 같은 소규모 캄보 편성으로도 일관되게 팀을 유지해 활동하기가 어려운 국내 재즈 신의 여건에 반해, 이지연은 이 순수하고도 일관된 열정과 애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10년째 강단 있게 이끌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실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매 작품마다 꾸준히 자신의 음악세계를 업그레이드시켜나가고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 자신의 오케스트라 팀을 이끌고 활동해오고 있는 그녀의 열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오랜만에 그녀와 만나 허심탄회하게 음악 이야기를 나눠봤다. 인터뷰/MMJAZZ 편집장 김희준 사진/P.O.M
올해로 지연씨가 첫 앨범 <Bright Green Almost White>를 발표하고서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째가 되시더군요. 데뷔 10주년이라고 봐도 좋을 텐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대형 앙상블 편성의 작업에만 집중하고 있으세요. 이런 편성에 대한 본인의 로망, 혹은 강한 애정같은 게 분명 있을텐데 이게 어디서부터 비롯된 건지 궁금해요.
아! 제가 처음엔 클래식 공부를 했었어요.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대학도 클래식 전공으로 들어갔었죠. 하지만 사실 제가 정말 원하고 즐거워서 한건 아니었어요. 클래식 공부를 계속 하면서 그 쪽에 대해서는 열의가 자꾸 식어가는 반면, 상대적으로 스트링이 포함된 영화음악 쪽에는 계속 관심이 생겨났죠. 엔니오 모리코네, 존 윌리암스, 한스 짐머 같은 분들의 작품들인데, 클래식과는 다른 매력이 절 사로잡았었죠. 그때부터 학교도 제대로 안 다니고 방송국에서 드라마 음악 만드는 작업도 하면서 다른 음악적 방향을 찾아갔던 거 같아요. 그러다 재즈를 알게 되고 또 당시 팻 메시니의 음악에 빠지면서 그 사람이 발표한 <Secret Story> 같은 작품에 담긴 스트링 사운드, 작품의 분위기에 커다란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이런 음악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유학을 가기로 마음을 먹고 네덜란드로 가서 10년 정도 공부를 했죠. 그 과정에서 대형 앙상블 편곡도 배우면서 예전 영화음악에 매료되었던 것과 자연스럽게 매치가 되었던 거 같아요. 편성적으로 거의 동일하거나 유사하고 여러가지 현악기와 관악기를 사용해서 소리의 색채감을 풍성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제게는 기존 클래식보다 훨씬 더 많은 동기와 영감을 주었죠. 즉흥연주 또한 클래식에서는 접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었고요. 그리고 이를 위해서 제가 직접 제 곡을 써서 연주한다는 건 비할데 없는 큰 즐거움이었어요. 그때부터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이미 시작된 거라고 보시면 될거 같아요
그렇게 시작된 게 지금까지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는거군요.
네. 맞아요. 음악적으로 표현해나가는 디테일한 부분들은 유학가기 전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지만 이걸 하려고 하는 이유와 의도는 그때와 동일하다고 말해도 좋을 거 같아요. 재즈를 중심으로 한 오케스트라, 대형 앙상블의 작, 편곡만큼 절 기쁘고 희열을 느끼게 하는 건 아직 없어요.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 같아요.
지금까지 만드신 넉 장의 앨범들 중에서 특히 가장 최근 앨범인 <푸른 꽃>이 사운드 적으로 좀 다르다고 느껴졌어요. 전체 소리가 좀 더 현장감 있게 들리고 악기파트의 연주들, 특히 현악이 이전보다 더 넓고 풍성한 그림을 그려가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로 어떤 부분에 더 주안점을 두었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초기 1,2집 앨범은 확실히 앙상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게 좀 입체적이지 않고 평평한 느낌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을 다르게 가져가기 위해서 3집부터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게 4집에서 한층 더 잘 드러난 거 아닌가 생각해요. 그리고 지난 몇 년동안 제가 지브리를 비롯해 퀸이나 케이 팝, 그 외 영화음악 등 여러가지 편곡및 공연 프로젝트를 소화하면서 무대 경험이 이전보다 더 많아졌는데 특히 콘서트 홀 같은 규모 있는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기회가 확실히 많아졌었어요. 그걸 계속 해나가다보니 팀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죠. 좀 더 다이내믹하고 파워풀한 소리, 그러면서 동시에 입체적인 면이 느껴지는 그런 앙상블을 연출해야 되는거 였어서...그런 경험들이 이번 4번째 작품에 알게 모르게 반영된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이번 작품을 작업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중 하나가 사운드의 레인지, 층들을 어떻게 전보다 더 잘 살릴 수 있을까였어요. 사실 편성과 인원은 동일했거든요. 이를 위해서 나름의 고민을 했고 편곡적으로도 변화를 줬어요. 그리고 하나 더! 녹음한 공간의 차이도 클거라고 생각해요. 녹음 스튜디오가 바뀌었거든요.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의 작품중 <푸른 꽃>을 작품 소재로 하여 만들었다고 하셨잖아요. 그의 작품에서 어떤 점에 영감을 받으신 건가요?
제가 그 작품을 읽으면서 상당히 크게 공감했던 게 다름 아니라 그 소설에서 '푸른 꽃'이 의미하는 바가 제가 하는 창작, 작품활동과 아주 뚜렷하게 연결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곡을 쓰고 연주하면서 스스로 희열을 느끼고 완벽해하며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다 어느 순간 다시 보면 그때 그 느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마치 꿈처럼 사라져버리는 거에요. 이런 과정들이 계속 반복이 되는데 그게 소설에서 주인공이 푸른 꽃을 찾아 만나고 또 돌연 사라지는 것과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이 되었죠. 즉 현실 속에서 이상적인걸 찾고 만들기 위해 곡을 쓰고 연주하는 것, 그렇게 하면서 멋진 걸 만들어냈다고 어느 순간 생각하다가도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전혀 다르게 와닿는 이 과정들이 푸른 꽃의 이야기와 흡사해서 제가 그 책을 한동안 무척 자주 읽었죠. 그게 이번 작품을 만드는 데 실질적이자 기본적인 영감을 준 거에요. 다만 이게 작품의 기본 모티브였지만 차후 살을 붙이고 또 공연을 위해 영상까지 포함되어 만들게 되면서 환경과 지구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추가되긴 했어요. 공연을 위한 컨셉트 영상 만드신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제 이야기가 다소 주관적인 내용인데다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갈만큼 서사도 좀 부족하다고 조언을 해주셔서 그렇게 된거죠. 하지만 실제 곡을 만들게 된 기본 모티브는 여기에 있다고 보시면 되요.
그렇군요. 그리고 곡의 형태도 이번 앨범에서는 다소 달라진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흐름과 전개가 이전보다 복잡하면서 다채롭게 넘어간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연주의 표정도 다양하게 들리고
작, 편곡에서 신경을 쓴 부분도 있는데, 그보다 녹음지휘, 프로듀싱에서 제가 세밀하게 신경쓴 게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이번 앨범에서는 제가 전체를 관장하고 프로듀싱으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잡고 컨트롤 한 게 아주 컸던 거 같아요. 그리고 프로젝트 자체가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을 통해 이뤄진 거였다보니 녹음일정과 멤버들과 함께 소통하는 시간들이 전작들보다는 한층 더 여유가 있었어요. 전체 곡들의 스토리가 잡혀 있었고 거기에 걸맞게 음악이 연결되어 흘러가는 식이니까 하나하나 꼼꼼하게 연출을 해야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 물리적, 시간적인 여건이 허락되다보니까 결과에서 달라진 게 반영이 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역시 대형 편성 작업은 연주자들과 소통하고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금전적인 여유가 있어야 더 충실한 결과물이 나오는 거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죠.
지금까지 이지연 재즈 오케스트라를 꾸려오신 게 10년 정도 되시는 거잖아요. 그 사이 멤버들이 조금씩 바뀌기도 했는데, 그래도 다수의 연주자 분들이 함께 해온 시간이 최소한 4~5년 정도는 되는 거 같아요. 이 점을 보면 내 작품을 이해하고 소화해줄 확고한 팀 메이트에 대한 생각이 있으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요. 소규모 캄보도 마찬가지겠지만 대형 편성의 연주는 특히나 서로간의 소통과 이해, 그리고 훈련이 잘 되어 있어야 좋은 결과가 만들어 지기 때문에 레귤러 멤버로 참여하게 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우선적으로 함께 해주기를 원하죠. 색소포니스트 이동욱, 플룻연주자 지백, 드러머 이도헌씨등 다수의 참여 연주자 분들이 지난 2집이후부터 계속 제 작품에 참여해주고 계세요. 색소포니스트 이경구, 트럼페터 김예중씨가 좀 뒤에 참여하긴 했는데 그래도 다들 오래 교류해오고 있는 중이랍니다. 심지어 이 분들과는 다른 파퓰러한 프로젝트, 이벤트 공연에도 최대한 그대로 함께 가고 있는 중이에요. 그렇게 지속적으로 소통을 해오니 확실히 녹음할 때에 한결 편하고 매끄럽게 진행이 되더라구요. 제 스타일을 잘 알고 있으시니까…만약 이후에 제 곡에 따라 작풍이 달라져서 다른 스타일의 연주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물론 변화를 줄수도 있겠지만 레귤러 멤버는 정해서 가급적 유지해가고 싶어요. 제가 너무나 좋아하고 또 존경하는 마리아 슈나이더가 자신의 빅밴드 라인업을 길게는 20년 넘게 유지해오고 있는 것도 다 같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요.
올해 10주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세요? 그리고 추가로 계획한 공연 같은게 있으신지?
사실 남편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전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아 그렇구나.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은 들더라구요. 근데 뭐 솔직히 그다지 특별한 감흥은 없어요. 다만 지금까지 열심히 고생해서 해온 만큼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계속 만들고 또 꾸준히 앨범으로 발표해야 겠다는 생각은 들더군요. 지난해 만든 4집 앨범은 제작 과정에서나 작품 결과로나 개인적으로는 꽤 만족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늘 끝나고 다시 돌아보면 아쉬움이 느껴져요. 이걸 앞으로 더 좁혀가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10주년에 관해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여건이 된다면 지난 10년을 갈무리할 수 있는 공연을 한번 하면 좋긴 할 거 같아요. 그리고 10주년을 이야기하시니 지금까지 옆에서 행정적, 금전적으로 일을 계속 만들어오고 또 제 매니지먼트 역할까지 해준 남편이자 POM 대표 홍경섭씨에게 정말 누구보다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이를 구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처리해야하는 여러가지 일들을 잘 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누구보다 확실하게 알아요. 남편의 탄탄하고 꼼꼼한 조력이 없었으면 저 혼자로는 절대 이렇게 못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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