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디 가르도 & 필립 파웰 (Melody Gardot & Philippe Powell) - 파리, 그리고 브라질의 고품격 낭만 담아내다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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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ody Gardot & Philippe Powell
유럽과 남미를 잇는 낭만적 로맨티시즘
재즈 팬은 물론 이제는 일반 음악 팬들에게까지 폭넓게 사랑받고 있는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멜로디 가르도. 가르도의 목소리와 노래는 ‘천천히 스며든다’ 혹은 ‘알게 모르게 빠져 든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도발적이지 않으면서 차분하고 은은하게 깊은 감성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글쓴이는 처음 그녀의 데뷔작 <Worrisome Heart>가 발표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가르도가 지금과 같은 인기를 얻게 될지 생각하지 못했다. 재즈와 팝, 포크의 중간 경계 어딘 가에 있는 듯한 음악, 담백하면서 서정적인 보컬 등 당시 등장하던 다른 메이저 음반사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과 비교해 가르도만의 특출한 비기(秘器)가 잘 드러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강대원 사진/유니버설 뮤직, Franco Tettamanti
불행과 행복은 마치 동전의 양면 같아!
데뷔작을 통해 ‘Worrisome Heart’라든지 ‘Goodnite’ ‘Quiet Fire’ 같은 곡들이 나름 ‘신인’ 가르도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면 이듬해 발표한 두 번째 앨범 <My One And Only Thrill>(2009년)은 이름 선전 이상의 인지도 굳히기에 크게 한 몫을 한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타이틀 곡인 ‘My One And Only Thrill’ ‘Baby I'm A Fool’ ‘If The Stars Were Mine’ 등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중들에게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스며들기 시작한 것. 무엇보다 스물 넷의 나이라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음악적 성숙함에 놀라웠고 또 돋보였는데 이와 관련된 그녀의 영화와 같은 배경 스토리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었다.
(이미 MMJAZZ를 포함해 여러 경로로 사전 소개된 내용이지만 간략하게 한번 더 언급할까 한다)
2003년 11월 당시 19살이었던 가르도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불운하게도 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는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지금에 와서는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사고 이후 가르도는 치료를 위해 1년 동안 병원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어야만 했다. 척추와 골반 부상으로 똑바로 누울 수도 없는 처지였다고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머리의 부상은 기억상실 증상까지 유발하여 재활에 있어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뇌손상 회복을 위해 가르도는 의사로부터 음악 치료를 추천받았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곡을 쓰거나 작사를 하기 시작했다. 필라델피아 커뮤니티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하며 디자이너를 꿈꿔왔던 그녀지만 10대 중반부터 지역의 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만큼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 팝은 물론 락, 재즈, 포크 등 그녀는 다양한 음악을 일찌감치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고로 인해 빛과 소리에 예민해진 가르도는 예전처럼 자유롭게 음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없었고 마치 그녀가 지금 하고 있는 음악처럼 조용한 음악 위주로 듣게 되었다고 한다. 음악 치료를 시작했지만 피아노에 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가르도는 등을 기댈 수 있는 상태가 되자 기타 치는 법을 배우며 음악을 만들어갔다고 한다.
퇴원 후에도 재활 및 후유증 극복을 위해 그녀는 음악 작업을 지속했다. 빠른 회복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갑작스런 사고는 그녀의 일상을 참 많이도 바꿔 놓았던 것. 가르도는 식이요법, 불교로의 귀의, 휴머니스트로 새롭게 주어진 삶에 적응해나갔다. 2005년경 그녀는 병원에서 틈틈이 만든 곡들을 모아 EP <Some Lessons: The Bedroom Sessions>를 만들었고 이를 필라델피아 라디오 방송국에 보냈다. 가르도가 방송국으로 보낸 EP는 음악 관계자들을 거치고 거쳐 결국 유니버설 뮤직에까지 전달, 가르도는 <Worrisome Heart>를 발표하며 메이저 음반사 데뷔라는 큰 성과를 내게 되고 싱어송라이터로서 큰 발을 내딛게 되었다.
(사실 간단히 축약해서 과정을 적다보니 의외로 단순한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수많은 가수 지망생들의 데모테잎 사이에서 관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는 건 이미 그녀의 음악적 매력이 저 시기에도 남달랐다는 얘기다. 아이러니하게도 불행한 사고를 겪고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지만 그로 인해 그녀에게 잠재되어 있던 음악적인 재능이 새롭게 부각된 것이다)
한편 현재의 가르도가 있기 까지 그녀의 음악적 방향, 중심을 잡아준 인물이 있으니 바로 명 프로듀서 래리 클라인이다. 글쓴이가 생각하기에 클라인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 프로듀싱을 맡았다면 아마도 가르도의 현재 위치 내지 음악적 방향은 다소 다르게 전개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클라인의 탁월한 음악적 혜안과 안목은, 가르도를 단순한 보컬리스트가 아닌 개성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음악가의 반열로 올려놓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여겨진다. 앞서 서문에서 멜로드 가르도만의 특별한 매력이 잘 느껴지지 않았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 그녀의 고유한 보컬 뉘앙스에 잘 어울리는 밴드 사운드를 조율및 연출해낸 것이 음악적으로 반등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렇게 래리 클라인에 의해 설계된 가르도의 음악적 지향점은 2015년작 <Currency Of Man> 같은 소울 음악에도 적절히 녹아들었고 이뿐만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사회에 대한 사상과 소신을 밝히는 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짐작된다. 중간에 클라인과 약간의 공백기가 있었지만 가르도와 클라인의 협업은 <Sunset In The Blue>(2020년)에서 다시 이어져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을 헤쳐 나가는데 나름의 공헌을 하였다. 또한 노라 존스를 그래미 여왕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싱어송라이터 제시 해리스의 참여 역시 가르도의 성공을 도운 중요 조력자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담백하고도 깊이 있는 첫 듀오 콜라보레이션
2년 만에 발표되는 새 앨범 <Entre Eux Deux>는 여러모로 전작 <Sunset In The Blue>와 비교 내지 대비가 되는 작품이다. <Sunset In The Blue>가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반면 본작은 오로지 필립 파웰이 연주하는 피아노 한 대와 가르도의 보컬로만 완성된 소편성의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음악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번 앨범은 가르도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첫 듀오 앨범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또한 가르도가 필립 파웰과 처음 함께 녹음했던 것이 바로 전작 <Sunset In The Blue>에서였기에 두 앨범은 상반된 편성과 별도로 묘하게 음악적인 연관성을 맺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당시 파웰은 ‘There Where He Lives In Me’ ‘You Won’t Forget Me’ 2곡에 참여).
필립 파웰이라는 뮤지션이 과연 누구길래 가르도가 이렇게 첫 듀오 앨범의 피아노 파트너로 선택했을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브라질 음악의 거장 기타리스트 바덴 파웰(Baden Powell)의 아들이었다. 가르도는 본 작과 관련한 보도자료를 통해 자신이 빌 에번스와 토니 베넷의 듀오 앨범을 좋아했었다고 하면서 파웰에 대해 ‘브라질의 빌 에번스’라고 표현할 만큼 그에 대한 음악적 믿음과 신뢰가 두터운 것을 엿볼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파웰은 파리의 빌 에번스 피아노 아카데미 출신이라고.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가르도는 현재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파웰 역시 브라질을 떠나 프랑스에 안착해 살고 있고 두 사람은 지난해 파리의 한 스튜디오에서 2주간 함께하며 본 작을 완성했다고 한다. 가르도와 파웰은 단순히 앨범 작업을 위한 보컬리스트-피아노 반주자의 관계에서 벗어나 음악적으로 폭넓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덴 파웰의 고전 ‘Samba em Preludio’같은 보사노바와 샹송에 대한 둘의 애정과 관심은 자연스레 본 작에도 투영되었고 둘은 몇 곡에서 함께 듀엣으로 노래를 하는 등 마치 오랜 기간 교류해온 것 같은 남다른 음악적 친밀함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가르도가 극찬한 대로 파웰의 피아노는 너무 튀거나 화려함을 자랑하지 않고 보컬 반주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중간 중간 양념과 같은 솔로를 곁들이는 등 전체적으로 본 작의 컨셉트가 지향하는 적정한 수준 범위의 서정성 넘치는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파웰은 한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레코드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가 꿈꿀 수 있었던 가장 멋진 선물”이라며 “우리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과 듀오로 작곡하고 공연하는 것은 내가 가진 최고의 음악적 경험입니다. 이 아름다운 음반을 만들기 위한 그녀의 사랑, 그녀의 신뢰, 지도, 내 안의 최고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한 멜로디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고 가르도에게 화답한 바 있기도 하다.
앨범 타이틀인 ‘Entre Eux Deux’는‘ 우리 둘 사이(Between Us Two)’를 뜻하고 가르도는 보 도 자료를 통해 본 작을 ‘시와 멜로디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두 사람의 춤’에 비유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의 춤은 우아하고도 기품 있고 또 서로에 대한 배려로 넘쳐난다고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 참고로 유투브에 공개된 첫 싱글 ‘This Foolish Heart Could Love You’ 뮤직 비디오 영상을 보면 가르도가 의미하는 춤에 대해 십분 공감할 수 있을 것 이다. 또한 가르도가 이전에 발표했던 곡들도 이 듀오 앨범에 몇 곡 수록되어 있는데 오리지널 버전과 다른 보컬-피아노 듀오로 색다른 감상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이번 듀오 앨범은 가르도 특유의 깊이 있는 호흡의 보컬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서두에서도 언급한 대로 가르도의 음악적 매력은 나이답지 않은 차분함과 성숙함에 있는데, 다른 악기 없이 지금처럼 오로지 피아노 한 대에 기대어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더 깊숙이 그녀의 목소리가 지닌 매력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
Epilogue
천부적으로 뛰어난 성량과 파워로 듣는 이를 사로잡는 보컬이 있는가 하면, 일절 내지르지 않고 차분하고 내밀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컨트롤하며 멜로디와 소리에 집중하는 보컬도 있는 법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주앙 질베르투 같은 뮤지션일텐데, 가진 감성과 노래하는 방식에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멜로디 가르도의 노래 또한 기본적으로 같은 카테고리에 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미세한 소리의 떨림, 한 호흡에도 감성을 제대로 담아 디테일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는 그녀의 보컬은 특히 이런 소편성의 연주에서 가진 매력이 잘 부각되는데, 가사의 의미와 곡조가 한 호흡으로 와닿게 하는 전달력 또한 뛰어나 작품을 그냥 흘려듣지 않고 곱씹어 듣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멜로디 가르도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해온 것처럼, 이번 듀오 앨범을 통해 사람사이의 관계와 소통의 의미에 대해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름 아닌 사랑으로 귀결된다. 마치 ‘A La Tour Eiffel’의 낭만적인 뮤직비디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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