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니 배런(Kenny Barron) - 진솔한 인간미 담은 거장의 '감동 모놀로그'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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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y Barron
커리어 3번째 피아노 솔로 앨범 발표한 재즈피아니스트
진솔한 인간미 담은 거장의 감동 모놀로그
1943년생으로 올해 6월이면 만 80세가 되는 노장 피아니스트 케니 배런은 누가 봐도 훌륭하다고 인정할만한 쟁쟁한 경력을 쌓아왔음에도 어딘지 스타 플레이어와는 거리가 다소 멀게 느껴집니다. 20대 초반부터 리 모건, 디지 길레스피, 로이 해인즈, 프레디 허바드 같은 최고 스타들과 함께 협연해왔으며 전성기 구간이라고 할 수 있는 40~50대 시절에도 그의 곁에는 스탄 게츠, 론 카터, 데이브 홀랜드, 버스터 윌리암스, 찰리 헤이든 같은 당대 최고급 연주자들이 늘 포진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발표해온 리더작들은 대부분 저널및 평단의 호평및 찬사를 받았으며 그래미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또 그간의 음악적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도 The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에서 매년 레전드급 재즈 뮤지션들에게 수여하는 Jazz Master를 수여받기도 하는 등 거장 뮤지션으로서의 인정과 예우를 충분히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여기에는 그가 오랜 세월 솔리스트나 리더로서보단 콜라보레이션 연주자로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아왔고 그 스스로도 자신을 먼저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게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추가로 젊은 시절부터 늘 일관되게 간직해온, 트렌드와는 무관한 음악성도 연관이 있을테고요.(따져보면 케니 배런과 비슷한 성향을 지녔던 행크 존스, 토미 플래내건 같은 분들도 그랬죠) 하지만 그런 일면을 내려놓고 오직 그의 음악, 그의 피아니즘에 귀기울여보면, 정말이지 곳곳에 보석과도 같은 아름다움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다만 그 아름다움은 화려하거나 도발적이지 않아서 우리의 눈에 쉬이 들어오지 않을 따름입니다. 글/MMJAZZ 편집장 김희준 사진/ Carol Friedman, Philippe-LEVY-STAB
90년대 중반 당시 케니 배런.
아마도 지난 재즈역사에 등장한 탁월하고 비범한 피아니스트들 중, 케니 배런만큼 본인의 연주를 먼저 내세우는 것보다 상대연주자와의 교감에 더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에 더 특화된 뮤지션도 드물 겁니다. 따뜻한 정감을 담아 연주하는 그의 피아노는 스윙, 비밥, 하드 밥의 전통적인 재즈의 유산을 고스란히 내재한 가운데 자신과 성향이 맞는 연주자라면 선, 후배를 막론하고 진심으로 대화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죠. 이런 점이 어느 샌가 고유한 그의 음악적 특질이 되어 케니 배런의 음악을 평론가들이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사려깊음’, ‘따뜻함’, ‘넘치는 인간미’, ‘우아함과 다정함’, ‘배려심’, ‘듀오 마스터’와 같은 것들입니다. 지난 달 재즈의 새로운 고전에 소개했던 스탄 게츠와 케니 배런의 걸작 듀오 앨범 <People Time>만 들어봐도 쉬이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음악적 성향이기도 하죠.
한편 케니 배런은 사이드 맨으로섯 무려 500장 이상의 레코딩 경력을 갖고 있는데 이는 본인 리더작 수보다 무려 10배 이상 많은 수치입니다. 그만큼 협연에 특화된 연주자가 케니 배런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겁니다. 그가 이렇게 상대와의 협연에 더 집중하는 이유는 누군가와 함께 교감을 나누며 음악을 만들어 나갈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는 듀오나 트리오같은 가장 인원수가 적은 소편성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왔는데 리더작들 중 듀오, 트리오 앨범들이 70% 정도 되며, 그 이상의 편성도 많아봐야 퀸텟을 좀체 벗어나지 않습니다. 1993년도 발매작인 <Things Unssen>이나 2000년도 발매작인 <Spirit Song>의 셉텟 편성정도가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악기 편성으로 레코딩한 작품일거에요. 몇 년 전 후배 피아니스트인 베니 그린과의 인터뷰 대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죠. '내게 음악적으로 가장 큰 도전은 듀오 협연자로서 상대와 얼마나 친화적이며 조화로운 연주를 들려줄 수 있는가' 입니다. 이말 만으로 그의 지향점이 모두 다 설명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지난 1월 공개된 그의 피아노 솔로 앨범 <The Source>는 무척이나 이례적이며 상반되는 성격의 작업이라고 볼 수 있죠. 그처럼 협연자와의 교감을 중요시하고 그런 방식으로 너무나 훌륭한 앨범들을 많이 만들어온 연주자가 놀랍게도 타 연주자와의 협연을 배제한 피아노 독주 앨범을 발표한 거에요. 1981년 <At the Piano> 이후 스튜디오 앨범으로는 41년 만에 처음 시도한 피아노 솔로 레코딩(라이브까지 포함하면 1991년도 <Live at Maybeck Recital Hall, Vol.10> 이 하나 더 있습니다) 심지어 그는 과거 피아노 솔로를 연주하는 것에 대해 수차례 불편함을 토로한 적도 있었기에 더 의외로 다가옵니다. 과연 그가 이번 피아노 솔로를 기획하고 녹음한 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 걸까요?
이번 솔로 앨범 <The Source>에 관하여
이번 솔로 앨범은 전체 9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녹음은 작년 9월에 이뤄졌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행정적으로는 종식으로 가고 있는 시점에 이 앨범을 녹음한 것이죠. 만약 코로나로 인한 제한적 상황 때문에 그가 솔로를 선택했다고 한다면 그건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실제 하려고 했다면 기존의 듀오, 혹은 트리오나 다른 소편성 작업은 스튜디오에서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놀랍고도 흥미롭게 솔로를 선택했죠. 그의 입장에서 오로지 혼자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은 무척이나 난감하고 당황스러운 과제라고 합니다. 오래전 그는 솔로 연주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죠. “내게 재즈는 커뮤니케이션이고 소통입니다. 함께 대화할 상대가 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이렇기에 그를 잘 아는 팬들및 관계자들이라면 이번 솔로 녹음은 아주 이례적인 결과물이 될 수밖에 없죠. 그렇다면 케니 배런은 이번 작업을 하면서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가졌을까요?
우선 레이블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작년 새롭게 런칭한 아트웍스 레코드회사는 케니 배런에게 피아노 솔로를 주문했다고 하죠. 그들이 케니 배런에게 피아노 솔로를 특별히 요청한 경위에 대해선 아직 알려진 바가 없지만 문제는 이 요청에 대한 케니 배런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지난 해 7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한 공연장에서 이 앨범을 녹음합니다. 녹음은 하루 만에 마무리되었고 연주는 라이브처럼 모든 게 한번에 이뤄졌다고 하죠. 그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이들은 별도의 음향보정을 하지 않고 최소한의 믹스다운만 시도했습니다. 앨범을 자세히 들어보시면 공간의 울림 사이사이 미세한 잡음들, 케니 배런의 잔기침 소리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죠. 그러나 이걸 굳이 제거하지 않은 이유는 피아노 소리의 집음 자체가 아주 좋은 탓일 겁니다. 실제로 그 자잘한 잡음들이 앨범 감상에 별 흠이 되지 않습니다.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여전히 피아노 솔로는 자신에게 다소간의 두려움, 어색함을 동반하는 작업이라지만, 평소와 달리 솔로 녹음에 대해 마음이 좀 더 열려 있었고 예전보다는 자신을 더 풀어낼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앨범은 전체 9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 ‘What If’, ‘Dolores Street SF’, ‘Sunshower’, ‘Phantoms’ 까지 케니 배런의 오리지널이 4곡, 나머지 5곡은 스탠더드 넘버들입니다. 스탠더드의 경우 빌리 스트레이혼의 ‘Isfahan’ 과 ‘Daydream’, 텔로니어스 멍크의 ‘Teo’, ‘Well, You Needn't,’ 그리고 얼마전 신예 보컬리스트 사마라 조이가 다시 불러 주목받기도 했던, 1930년도 발표된 스탠더드 곡 ‘I'm Confessin' (That I Love You)’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 곡들은 기본적으로 케니 배런이 앨범과 라이브 무대 포함 적잖이 연주해온 경험이 있기에 그의 입장에선 아주 친숙할 겁니다.
기분 좋은 원곡 멜로디만큼이나 상큼함과 밝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I'm Confessin' ’도 매력이 넘치고 ‘Isfahan’ 의 브로큰 타임과 배런 특유의 유연한 루바토도 일품으로 다가옵니다. 거기에 앨범 말미를 장식하는 두개의 오리지널 곡, ‘SunShower’ 과 ‘Phantoms ’는 평소 케니 배런의 연주보다 좀 더 어두우며 진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그의 중요한 음악적 일부중 하나인 라틴, 브라질 음악들이 은은하게 가미된 가운데 무게감 있는 화성전개로 앨범 전체의 색깔을 다채롭게 만드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만약 이 두곡이 없었다면 이번 솔로 앨범은 평가가 분명 반감되었을 겁니다. 앨범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젊은 시절의 샘솟듯 터져 나오는 즉흥 연주력과 깔끔하기 그지없었던 아티큘레이션에 비하면 분명 세월의 여파가 일부 느껴지긴 합니다만, 그게 아무런 흠이 되지 않는 것은 연륜에 비례하는 음악적 표현력과 무게감 때문이라고 봅니다. 앞서 언급한 두 곡도 물론이거니와 스탠더드 넘버들의 해석에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또 곡에 따른 감정도 디테일하게 잘 담아내면서 대가의 경지라는 게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그가 위대한 이유는...
“제가 피아노를 연주할 때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것 중 하나는 감상자들과 감정적인 차원에서 소통하는 것입니다. ‘그거 아주 재미있는데?’ 또는 ‘무척 흥미로웠어’ 같은 식의 반응은 제가 추구하고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들으면서 무언가 감정적으로 깊게 반응하길 원합니다” 케니 배런이 이번 앨범을 진행하면서 남긴 이 말은 그의 평소 음악에 대한 관점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그는 지적인 재미, 호기심으로 인한 여러 가지 사운드적인 접근과 시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피아노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와 리듬에만 관심이 있죠. 이런 태도에 비춰볼 때 피아노 솔로를 시도하는 것은 그에게 여전히 자연스러움보다는 작위적인 면이 더 크게 있을 거라고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내가 피아노 솔로를 진행하려면 자기 안에 있는 음악을 스스로 밀어내서 만들어내야 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강하게 자신을 독려하고 다그쳐야 한다’ 고 한 걸로 봐선 자신의 성향에 그다지 맞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접근인 겁니다. 그렇지만 이번 솔로는 그런 부분을 감안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힘이 들어가 있거나 부자연스럽게 들리지 않습니다. 결국 그의 쉽지 않은 도전이 성공한 셈인거죠.
또한 익숙한 레퍼토리도 그렇고 그의 피아노 연주에서는 어색하고 가식적인 순간 또한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곡을 연주하고 솔로로 확장시키고 또 이완시켜가는 과정에서 케니 배런은 오랜 시간 단련해온, 자신의 사려 깊고 정갈한 흐름을 지닌 피아니즘을 그대로 투영해내는데, 그가 평소 어렵게 생각해온 피아노 솔로 작업임에도 유려함은 그대로이며 마치 상상 속 누군가와 함께 유기적인 대화를 풀어내는 것처럼 들리는 즉흥연주의 내용들은 ‘케니 배런 나름의 방식으로 난제인 피아노 솔로를 결국 해결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압도적인 스케일, 강력한 힘, 거창한 카리스마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위치에서 사람들에게 은은한 감동을 전해주려는 그의 피아노는, 소박한 소시민이 갖고 있는 정서가 재즈에 투영되었을 때 생겨날 수 있는 진솔함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현재 필드에서 활동하는 어느 누구보다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거창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결코 채워줄 수 없는 감동의 휴먼드라마! 케니 배런의 음악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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