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Tribute(Archive) - 현 여성 재즈 기악 주자들의 대모이자 선구적 모델! - 제리 앨런(Geri Allen)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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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i Allen 1957. 6 ~ 2017, 6
현 여성 재즈 기악주자들의 대모이자 선구적 모델!
글/MMJAZZ 편집장 김희준
뛰어난 재능과 음악적 감성, 연주력을 고루 갖춘 여성 뮤지션들이 악기 포지션을 막론하고 다채로워진 지금에 비하면 사실 격세지감이란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가 되었지만, 재즈사를 돌이켜 볼 때 보컬 분야를 제외한 악기 파트에서 여성 뮤지션들이 제대로 인정받고 대접받기 시작한 시기는 줄잡아 불과 30여년, 아무리 길게 봐도 4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재능이 있고 출중한 실력을 갖고 있더라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인종적인 이유로 그에 준하는 존중과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같은 동료인 남성 뮤지션들조차 자신의 투어밴드 멤버에 여자가 끼는 것을 아주 불편하게 생각했다. 마약, 섹스, 성적 차별, 자존심등 실로 여러 가지 이유로 말이다) 지금에야 당연히 거장으로 인정받는 메리 루 윌리암스(Mary Lou Wiliams), 마리안 맥파틀랜드(Marian McPartland) 같은 이들도 젊은 시절 활동할 당시 그다지 큰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더랬다.
아마도 계속 음악을 했더라면 레니 트리스타노와 비슷한 길을 걷지 않았을까 싶은, 우수한 재능과 음악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개인적 사정으로 일찍 활동을 접고 음악과는 무관한 길을 선택해야 했던 유타 힙(Jutta Hipp), 평생 마이너 레이블을 전전하며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보여준 음악만큼은 너무나 아름다우며 탁월한 미감을 지니고 있는 제시카 윌리암스(Jessica Williams), 오스카 피터슨을 긴장하게 만들만큼 압도적인 연주력을 갖추고 있었던 도로시 도네이건(Dorothy Donegan) 같은 이들이, ‘만약 성별이 남자였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인지도에 머물렀을까’ 싶은 대표적인 여성 뮤지션들이다. 그 점에서 피아니스트 제리 앨런은(Geri Allen) 자신의 선배들의 불행하고 공정치 못했던 대우에 대해 부당함을 인지하고, 저항하며 스스로 이를 넘어서기 위해 데뷔 당시부터 세션보단 자신의 리더 활동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으며, 80~90년대 재즈가 다시 주가를 높이던 시기에 당당히 신(Scene)의 한 축을 차지해 보였던 여성 아티스트였다. 그녀의 음악은 자신의 정체성과 저항정신에 함께 맞물려 상당히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면을 강하게 드러내곤 했었는데, 이는 대선배인 찰리 헤이든과 폴 모션 같은 이들과의 협연을 통해 더욱 확고하게 구축되었으며,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에도 커다란 기폭제로 작용하게 되었다.
80~90년대 후반까지 트리오 라인업을 구축, 팀워크를 유지했던 폴 모션, 찰리 헤이든, 제리 앨런
‘80년대 초 솔로 커리어를 시작할 때부터 이 여성 뮤지션은 일절 타협과 수정노선을 걷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음악을 일구어 나갔으며 그 과정은 바로 스티브 콜맨과 그렉 오스비같은 이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었던 M-Base Collective에 참가하여 그들과 작품을 연계하고 교류해 나간 것, 그리고 그녀 자신이 깊이 존경해온 오넷 콜맨, 듀이 레드맨, 올리버 레이크, 찰스 로이드 같은 대가 관악주자들의 사이드 맨으로 그들의 노하우와 음악적 접근을 체득하는 것, 이렇게 큰 두가지의 맥락을 유지하며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켜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리더 작을 만들어왔는데, 1987년도 소울노트 레이블 발매작인 <Etudes>, JMT 레이블(1997년 이후 W&W로 회사명이 바뀜)에서 발표된 <In the Year of the Dragon>, 블루노트 레이블을 통해 1997년 제작된, 드러머 토니 윌리엄스에 헌정하는 의미를 아울러 함께 지닌 <Eyes ...in the Back of Your Head> 같은 작품들은 그녀 커리어 전체를 빛나게 만드는 걸작임과 동시에 이 여성 아티스트의 음악적 의지와 지향성이 어떤지 깨닫게 해준다. 그것은 바로 주류, 혹은 트렌드와의 타협을 거부하는 것, 전위성 다분한 반골기질로 뭉뚱그려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며, 결코 익숙한 트래디셔널, 혹은 심플한 팝 스타일의 연주에 기대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이었다.
세 연주자의 음악적 합이 어느 정도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수작 라이브. 1990년 녹음, 1991년 발매
개인적으로 만약 그녀가 조금이라도 안정적인 노선이나 대중적인 성향을 지향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충분히 그렇게 작업해 낼 수 있는 능력과 음악적 센스및 주변 여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탁월한 피아노 연주력과 전위성에 못지않은 수려한 멜로디 감각 또한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길을 택하지 않고 자신의 의도대로 걸어 나갔다는 점에서 더욱 더 높은 평가를 내려야 마땅하지 않을까. 상업적, 지명도의 측면에서 그녀는 데뷔이후부터 얼마전 전 세상을 떠나기 까지 단 한 번도 슈퍼스타였던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누구도 그녀를 허비 행콕이나 칙 코리아, 혹은 후배인 브래드 멜다우 만큼이나 유명하고 대중적 영향력 있는 피아니스트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애초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필자가 보기에 여성 재즈 연주자가 리더로서 여간한 남성 피아니스트를 능가할 정도의 존재감을 보여준 경우는 제리 앨런이 재즈사에서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 바탕에는 성별을 초월한 비범한 피아니즘이 자리 잡고 있었음은 틀림이 없다. 테크닉과 건반 장악력, 탁월한 멜로디 플로우(Melody Flow) 구사능력을 두루 갖추고 있던 그녀는 앞서 언급했듯 살아생전, 오넷 콜맨, 폴 모션과 찰리 헤이든, 듀이 레드맨 같은 거장들의 총애를 받았으며 스티브 콜맨과 함께 80년대 M- Base의 진취적인 음악 단체에 참여해 독립적인 뮤지션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왔다. 그리고 작품 활동을 하는 만큼 그에 응당한 평가를 동시대에 받고 명성을 누려온 몇 안 되는 여성 뮤지션이라는 점은, 그녀에게나 여러 후배 여성 연주자들 모두에게 아주 바람직한 일이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하면 안될 것 같다. 그녀의 활약 이후 피아노를 필두로 색소폰, 드럼, 베이스 등에서 계속적인 여성 아티스트들의 등장과 약진이 이어져왔다는 점에서 그녀의 존재는 선구적인 롤 모델로서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좌로부터) 제리 앨런, 데이빗 머레이, 테리 린 캐링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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