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es Davis (마일스 데이비스) - 시대를 초월한 예술적 미감과 통찰력. 오직 단 하나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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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한 예술적 미감과 통찰력
오직 단 하나의 이름!
새롭게 마일스 데이비스의 미공개 앨범이 또 우리에게 소개됩니다. 1985년도에 녹음되었던 음원들을 토대로 세 명의 프로듀서가 다시 매만지고 레코딩을 입혀 만든 이 작품은 무척이나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동시대의 R&B, 힙합이 기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치 <Doobop>의 새로운 2탄같이 들리는데, 마일스 데이비스가 워너시절 만들어내었던 이런 작품들이 못내 어색하고 듣기 불편해할 애호가분들도 계시리라 봅니다. 반면 젊은 음악팬들은 이걸 들으면서 새로운 감흥을 느낄 수도 있겠죠. 그는 이런 식의 선택을 할 때 무조건 젊은 세대를 택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일스는 늘 파격적이었고 기존의 틀에 안주하는 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생애 마지막에 시도한 음악이 힙합이었다는 점은 그의 선구안이 얼마나 최신, 최첨단에 놓여 있는가를 깨닫게 합니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바로 이 점, 오래전 잃어버렸던 앨범의 재발매를 통해 그의 탁월한 음악적 감식안이 얼마나 시대를 초월해 왔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80년대 마일스 데이비스는 그 어느 시대보다 더 적절한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글/ 김희준, 마커스 밀러
사진/ Warner Bros, Rhino, Richard Rothman, Suzanne Rault
재즈사에 가장 독보적인 커리어를 가진 존재를 한명만 꼽으라고 하면 그게 가능할까? 100년이 넘는 역사를 거치면서 대단한 음악가들이 얼마나 많이 등장했는지, 그리고 각 하위장르들은 얼마나 다양하게 분파되어 왔는지를 고려한다면 애초 질문자체가 어리석게 느껴질 법 하다. 하지만 커리어에 방점을 두고 생각해본다면, 그러니까 음악적인 성취와 더불어 대중들과의 접점을 늘 유지하면서, 평단의 인정도 두루 받고 명성까지 얻어낸 경우를 두고 이야기한다면 한 사람으로 압축될 수 있다. 마일스 듀이 데이비스! 동료 뮤지션들조차 존경과 경외심으로 바라보았던 놀라운 카리스마의 소유자! 그처럼 음악을 하고 또 성공을 거둔 연주자는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즈의 여러 사조를 선구적으로 시도하고 또 널리 알리게 만드는 힘, 트렌드를 주시하면서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재빨리 자신이 가져와 시도하는데, 그걸 어찌나 세련되고 멋지게 뽑아내는지, 이건 애초 마일스의 것이라는 진실에 가까운 착각을 하게 만드는 능력이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그가 6년간의 칩거생활을 벗어나 다시 ‘81년 현역으로 복귀했을 때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을거라고 예상했고 그가 실패를 맛볼 것이라고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마일스 데이비스였고 바뀐 시대에도 훌륭히 적응했다.
물론 80년대의 음악에 대해 혹평을 하는 평론가들, 뮤지션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작품에 따라 편차가 심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실제로 이전에 비해 음악적으로 더 피상적인 면을 보여준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는 80년대 신서사이즈와 각종 테크놀로지 장비의 세례를 받은 팝을 가지고서도 무척이나 근사한 인스트루멘틀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으며, 더불어 라이브에서 즉흥연주의 무게감도 늘 일정하게 유지했다.
그것을 위해 늘 뛰어난 젊은 연주자들을 밴드에 포진시켰고, 그들과 음악적으로 소통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자신이 재즈 아티스트라는 걸 결코 잊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그가 30년간 함께 해왔던 콜럼비아 레이블을 떠나 워너로 왔을 때, 젊은 마커스 밀러와 함께 <TuTu>를 만들고 나서 또 다른 여정을 시도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그의 정신이 여전히 날카롭게 살아서 시대를 바라보고 또 호흡하려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시대의 음반들이 세기의 명작, 걸작으로 칭송되는 것에 그 의미가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새로운 도구, 새로운 사운드에 얼마나 쉽게 감각을 깨우치고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변함없이 멋지게 찾아가느냐에 있다.
<Doobop>의 음악을 듣고 50~60년대 마일스 데이비스를 조금이라도 상상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건 완전히 다른 음악이다. 이번에 새롭게 발매된 신작 <Rubberband>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무려 60세가 되어가는 나이에 젊은이들이 만들어낸 힙합과 R&B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마일스는 조금도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이걸 다른 당대의 뮤지션들보다 더 근사하고 세련되며 격조 있게 표현해냈다는 데 우리는 그저 감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만 돌이켜보면 그는 예전에도 늘 비슷했다. 그의 비밥은 어딘지 다른 흑인 동료연주자들의 비밥보다는 다른 세련된 느낌을 전해줬고, 그가 록 퓨전의 어법을 가져와 시도할 때에도 다른 연주자들과는 뭔가가 달랐다. 훨씬 더 크고 깊고 장대하며 다양한 뉘앙스가 그 안에 존재했다. 그건 이론과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어떠한 미감과 센스, 통찰력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그 점에서 지난 재즈사를 통틀어 명실상부한 원 탑이었다. 웨인 쇼터나 허비 핸콕, 론 카터, 길 에반스, 키스 자렛등 지금껏 함께 연주해온 수많은 거물 뮤지션들이 마일스를 칭송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재즈 아티스트였지만 결코 재즈만을 바라보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건 대중들과의 호흡을 늘 염두에 두었다. 아무리 천상천하 유아독존식 태도와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고 해도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열려 있었고 선입견 없이 평등했다. 이에 관해서 마커스 밀러가 예전 마일스 데이비스의 워너시절 앨범에 관해 썼던 글이 이해하는 데 더할나위없이 좋은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해 일부를 발췌해 소개할까 한다.
자! 마일스의 후반기 마지막 커리어를 파트너로서 직접 함께 해온 중요한 인물중 하나인 마커스 밀러가 바라본 마일스 데이비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글을 읽고 난 뒤 이번 신작 <Rubberband>를 들어보시길 바란다. 좀 더 선명히 음악이 들릴 것이라 자부한다.
나는 종종 ‘당신이 마일스에게서 배운 가장 심오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20년간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해왔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의 대답은 내가 처한 삶의 상황에 따라, 그 순간 내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에 따라 계속 바뀌어 왔다. 하지만 지금 나의 대답은 다시 한 바퀴를 돌아 처음으로 돌아왔다. 오늘 내가 마일스 데이비스로부터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이라 느끼는 것은 20년 전에도 생각했던 것이다. 마일스로부터 배운 비법은 간단하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뮤지션으로서 당신은 연습을 해야 하고 화성, 선율, 즉흥 연주 등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결국 이런 것들은 사람들에게 당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만약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결국 당신은 아무런 할 말이 없는 것이 된다.
마일스는 자신을 알았으며 따라서 하고픈 말이 매우 많았다. 50년 동안 참으로 아름다운 음악으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했다. 그것은 완전히 순간에 충실하고 현재의 예술에 전적으로 몰두한 아티스트의 이야기였다. 마일스는 세계와 그 세계 속 자신의 위치를 설명하는데 천재적 능력이 있었다. 1940년대 그는 모던재즈의 창시자인 찰리 파커 옆에 섰다. 그래서 찰리 파커가 비밥이라 불리는 새로운 음악언어를 개발하고 발전시키는데 옆에서 도움을 주었다. ‘50년대에 그는 웨스트 코스트 재즈 실험을 통해 쿨 재즈가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 그리고 하드 밥에 비해 얼마나 인기가 있을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60년대에는 포스트 밥을 통해 그 자신뿐만 아니라 미국 인권운동 시기 동안 평등과 존엄을 위해 투쟁하고 있던 미국 흑인 전체의 여정을 묘사했다.
그리고 1970년대에 마일스 데이비스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는 재즈의 오래된 가치들이 록과 펑크(Funk)라는 새로운 가치와 맹렬한 전투를 벌이는 퓨전이라는 새로운 개척지를 탐구했다. 그리고 '80년대가 찾아왔다. 이 무렵 우리의 영웅은 60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이미 거의 모든 음유시인(Griot)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럼에도 아직 할 이야기가 있었을까? 내 생각에 마일스의 80년대 이야기는 초기 시절 에피소드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렇다면 60세의 마일스가 우리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이 앨범에서 당신이 듣고 있는 것이 그 결과이다. 그는 쉽고 매혹적인 말년의 향수에 빠지기보다 여러 전자 악기들, 컴퓨터, 시퀀서, 드럼머신에 익숙한 테크노 시대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작정했다. 이번 앨범에서 당신이 듣고 있는 다수의 음악을 작곡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것이 나의 목표였다고 말할 수 있다. 즉, 마일스의 과거를 포함하면서도 미래를 가리키는 음악을 창조하기. 마일스가 얼마나 80년대에 유의미했는지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새로운 음악적 미래로 이끌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나는 작곡가, 편곡가, 제작자로서 마일스의 석장의 CD에서 작업을 했다. 첫 번째 앨범 <Tutu>는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여러 신디사이저, 오버더빙, 드럼 머신 등이 함께 한 이 음악이 재즈였을까? 하는 논란이 있었다. 또 내가 대부분의 악기를 연주하고 대부분의 곡을 썼기에 ‘이 앨범이 마일스의 앨범인가 마커스의 앨범인가?’하는 의문이 있기도 했다. 이에 대한 진실은 ‘마일스가 없었다면 이 이야기들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이 음악에 깊이를 부여한 것은 바로 60세의 나이로 새로운 사운드를 포용한 마일스 데이비스였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그를 위해 쓴 곡을 완벽히 이해했다. 그는 절대 무엇을 명확하게 해달라거나 어떤 하모니를 설명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나는 그로부터 25년 후 ‘Tutu Revisited’ 투어를 하면서 연주자들로부터 음악에 대한 설명을 요청 받고 나서야 새로운 음악을 흡수하는데 있어 마일스가 얼마나 천재적이었는지 깨달았다.
사실, 마일스가 새로운 젊은 목소리들을 발굴하고 이 신예들이 제공해야만 했던 것(음악적 재능)을 그의 작품에 결합에 시너지효과를 나게 하는데 천재적인 능력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존 콜트레인, 웨인 쇼터, 허비 핸콕 토니 윌리엄스, 조 자비눌 등 모든 연주자들이 막대한 양의 창조적 개념들을 마일스의 음악에 부여했다. 이것은 마일스식 예술의 일부를 이루었다. 마일스는 그의 무대에 새로운 에너지를 주입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다. 마일스와 이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즉, 젊은 연주자들을 통해 마일스는 그가 들어가려 했던 시대로 가는 문의 열쇠를 얻었고, 그 대신 신예 연주자들은 재즈 연주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추천장’과 함께 재즈계에 소개되었던 것이다.
1950년대 마일스는 길 에반스와 함께 비슷한 방식, 그러니까 길이 세심하게 만들어낸 편곡에 그의 마술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함께 작업을 했다. 그 결과가 <Sketches Of Spain>, <Porgy & Bess>같은 작품이었다. 길의 악보도 좋았지만 마일스가 그만의 것을 곡에 추가했을 때 음악이 특별한 것, 초월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에 길 에반스가 이의를 제기하리라 생각되지 않는다. 미셀 르그랑과의 관계 그리고 미셀 르그랑이 영화 <Dingo>에 직접 재즈 연주자로 출연한 마일스를 위해 만든 음악과도 마찬가지였다고 믿는다. 미셀 르그랑이 만든 음악은 그 자체로 환상적이다. 그러나 마일스는 그만의 연주로 모든 것에 또 다른 단계의 깊이를 갖게 했다.
이지 모 비(Easy Mo Bee)와 함께 제작한 앨범 <Doo-Bop>으로 마일스는 그가 살아서 보지 못할 미래를 제시했다. 이 음악으로 그는 어떻게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바라는지에 관한 놀라울 정도로 뚜렷한 청사진을 남겼다. 지난 것을 안고 새로운 것을 흡수하며 미래를 향한 음악을 만들면서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바랬던 것이다. 나는 이지 모비가 곡에 단순히 마일스의 연주를 추가함으로써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는 것-음악이 더 폭넓어지고 더욱 깊어지는 것에 분명히 놀랐으리라 확신한다.
이글은 2011년 발매된 마일스 데이비스의 워너시절 컴필레이션 음반 <Anthology : Warner Years> 에 실린 마커스 밀러의 라이너 노트를 번역,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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