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를 음악으로 읽다] - 구리하라 유이치로, 오타니 요시오, 스즈키 아쓰후미, 오와다 도시유키, 후지이 쓰토무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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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하라 유이치로, 오타니 요시오, 스즈키 아쓰후미, 오와다 도시유키, 후지이 쓰토무 공저
김해용 옮김 | 영인미디어 | 2018년 01월 31일 | 324P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몇 권이라도 읽은 독자는 그의 소설에 음악이 ‘통주저음’처럼 깔려 있는 것을 체험했을 것이다. 자신의 작품에 음악을 중요하게 활용하는 작가로 밀란 쿤데라를 들 수 있다. 그는 클래식을 편애하면서 노골적으로‘록은 쓰레기’라고 폄하한다. 반면 하루키는 팝ㆍ록ㆍ재즈ㆍ클래식을 아무런 위계 없이 평등한 대접한다. 덧붙이자면, 쿤데라와 하루키는 강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자라는 공통점 말고는 아무런 접점이 없지만, 체코의 작곡가 레오시 야나체크를 통해 만나는 지점이 있다. 쿤테라는 야나체크와 같은 체코 출신이면서 그에 대한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야나체크에 정통하고, 하루키는『1Q84』(문학동네,2009)에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주제가처럼 사용한다.
하루키는 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많은 독자를 가진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렇다보니, 하루키가 새로운 소설을 내놓을 때마다. 음반사들은 은근히 ‘하루키 특수’를 기대한다. 예컨대 일본에서만 300만부가 팔린『1Q84』(2010년 10월 집계한 1~3권 총계)는 조지 셀이 지휘한 클리블랜드 관현악단의 <신포니에타> CD를 1만장이나 팔려나게 하면서 품절 사태를 빚었다. 그래서 하루키가 작중에 어떤 곡을 언급하느냐에 따라 레코드의 회사의 주가가 달라진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사정이 때문에 하루키 작품과 음악의 관련성을 다룬 비평도 당연히 많아야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전방위 평론가 구리하라 유이치로가『무라카미 하루키를 음악으로 읽다』(영인미디어,2018)를 기획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는 지금까지 나온 문학 평론가들의 하루키론 가운데 음악 관련 비평을 검토하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 무라카미 하루키론의 대다수는, […]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 등장하는 음악을 ‘기호’로만 치부해왔다. 분위기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소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하지만 에세이나 인터뷰 등을 보면 곧바로 알아챌 수 있다시피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음악은 그가 사랑하는 문학 작품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존재이다.”
하지만 하루키의 소설보다 그 속에 나오는 음악이 “작품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존재”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만약 이 기획자의 말이 옳다면, 모차르트의 오페라와 바그너의 악극은 음악보다 대본이 더 본질적이고, 베토벤의 <9번 교향곡> 역시 작곡자보다 피날레를 장식하는 합창에 가사(시)를 제공한 실러가 더 위대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므로 구리하라 유이치로의 발언은, 여태까지 나온 하루키론에서 하루키와 음악 사이의 깊이 있는 비평이 없었다는 것을 과장되게 나타낸 것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2010년에 출간된 이 책의 제1장은 색소폰 연주자이기도 하면서 알버트 아일러에 대한 책을 쓰기도 한 오타니 요시오다. 그는 기획자로부터 하루키 소설 속의 재즈를 검토해달라는 임무를 맡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하루키는 대학을 졸업 하고 난 후인 1974년부터‘피터 캣’이라는 재즈 바를 경영하기 시작해서, 1979년『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소설가가 되고난 뒤까지도 잠시 동안 재즈 바를 유지했다. 그 당시 그의 가게 단골이었던 재즈 평론가 오노 요시에에 따르면, 하루키의 “가게 앞 간판에는 ‘50년대 재즈’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피터캣이 처음 문을 연 1974년은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ㆍ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ㆍ헤드 헌터스(Headhunters) 등이 일렉트릭 인스트루멘탈 앨범을 발표하면서 재즈계가 크로스오버ㆍ퓨전 열풍으로 막 끓어오르기 직전이었다. 하루키는 이런 때에 20년 이상이나 오래된 과거의 산물인 50년대 재즈를 고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복고라고 할 수 있는 하루키의 이런 취향은 그가 대학생 시절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재즈 카페 ‘SWING’에서 길러진 것이다. 각기 다른 번역자에 의해 두 개의 출판사에서 출간되기도 했던『포트레이트 인 재즈』에서 하루키는 자신이 일했던‘SWING’을 이렇게 소개한다. “이곳의 전문은 트래디셔널 재즈로 비밥 이후의 스타일 재즈는 완전히 무시하는 상당히 독특한 가게였다. 찰리 파커도, 버드 파월도 소용없었다. […] 그 가게에서 일하던 동안 오래된 재즈의 즐거움을 처음부터 배웠다. 시드니 비셰, 벙크 존슨, 피 위 러셀, 벅 클레이턴…….” 하루키의 초기 소설에는 이 세상을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나 유효성도 갖지 못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절대적이고 개인적인 애착”이 중요한 테마로 등장한다. 하루키에게 이런 테마를 심어준 것이 바로 트래디셔널 재즈라고 할 수 있다.
재즈 바를 차리기도 했던 하루키는 훗날 재즈 관련 에세이를 연재하고 단행본을 출판하기도 했지만, 초기 작품에서는 예상했던 것과 달리 재즈 뮤직의 존재감이 희박하다. 오히려 그가 재즈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히트 팝송과 록 뮤직이다. 이 음악들은 “그 소설이 무대로 삼고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정학하게 간파하고 지탱해주는 ‘현실적’디테일로 적확히 선택되어 작품 속의 올바른 장소에 배치”되어 있으며, 하루키의 초기 작품에서 “음악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식(儀式)을 구성하기 위한 촉매”다.
제2장의 필자인 클래식 평론가 스즈키 아쓰후미는 하루키 소설 속에 나타난 클래식을 검토한다. 그는 하루키의 소실에는 왜 이 음악이 사용되는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장면이 누차 나오지만, “이것을 ‘기호의 장난’이나 ‘소외 효과alienation effect,疏外效果’ 등의 편리한 말로 정리”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한다. 하루키의 소설은 종종 이계(異界)나 타계(他界)를 오가는데, 이때 클래식 음악이 하는 역할이 있다. 즉 하루키의 작품에서 재즈가 ‘잃어버린 시간의 감각’을 상징하고, 록이 ‘구체적인 시대를 표현’한다면“클래식은 이계로의 전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제3장은 미국 팝 음악 연구가 오와다 도시유키가 하루키 소설 속의 팝을, 제4장은 프리랜서 작가 후지이 쓰토무가 하루키 소설 속의 록을, 제5장은 이 책의 기획자인 구리하라 유이치로가『댄스 댄스 댄스』에서 하루키가 한껏 경멸했던 80년대 이후의 팝과 하루키에 대해 분석을 하고 있다. 오와다 도시유키에 따르면, 하루키의 초기 소설에서는 대체 가능성 높은 하찮은 음악을 이용해‘기호=부재’를 만들어냄으로써‘상실’이라는 주제를 환기시켰으나, 후기 작품에서는 오히려 세계의 동일성과 “거기에 규칙이나 질서를 가져오는 장치”로서 파퓰러 음악을 이용한다. 또 구리하라 유이치로는『댄스 댄스 댄스』이후 하루키의 작품 안에서 더 이상 록이나 팝이 들리지 않게 된 이유로, 하루키의 주인공들이 60년대 팝과 록에서 추출한 가치로 70년대를 겨우 버텨냈으나, 80년대 이후는 “그런 것이 불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루키가 80년대 이후의 팝과 록을 외면하는 이유는 80년대의 음악에서 고도자본주의의 경영 이론 철학밖에 더 들을 게 없기 때문이다.“‘음악’이라는 것은 결국 ‘사회 시스템이 돌아가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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