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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첫 등단한 이후 40년 이상 시와 소설을 두루 써오고 있는 장정일 작가가 음악 이야기가 담긴 종류의 여러장르 책들을 직접 읽고서 쓴 서평, 리뷰 혹은 에세이

Johnk

[이 한줄의 가사 ; 한국대중음악사의 빛나는 문장들] - 이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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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줄의 가사  

한국 대중음악사의 빛나는 문장들

 

이주엽 지음 | 열린책들 | 2020년 02월 25일 출간 | 272P

 

이주엽의『이 한 줄의 가사』(열린 책들,2020)는 “한국에서 거의 처음 시도되는 가사 비평”이라는 출판사의 소개 문구를 달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여러 필자들이 한국의 대중가요를 거론하는 자리에서 간간이 가사에 대한 촌평을 곁들이기도 했지만, 한 권의 책을 통째 가사 ‘비평’에 바친 책은 아직까지 없었다. 그러나 출판사의 소개 글이 대체로 과장을 포함하고 있듯이, “가사 비평”은 이 책과 어울리지 않는다. 서문에 밝혔듯이, 지은이는 “번뜩이는 가사 한 줄의 아포리즘을 건지려고 했다.”

 

지은이는 “문학과 음악이 한 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서른아홉 곡의 대중가요 가사를 고른 뒤, 거기에 자신의 감상과 이해를 도우는 사회적 맥락을 덧붙였다. 선정된 서른아홉 곡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곡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도나우강의 잔물결>에 윤심덕이 가사를 붙인 <사의 찬미>(1926)이고, 가장 최근의 곡은 혁오의 <TOMBOY>(2017)이다. 유행가 가사에 비친 근대 한국인의 삶을 두 노래만 갖고 비교해보라면 그야말로 달라진 곳이 없어 보인다.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일까/ […]/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우에 춤추는 자도다”(<사의 찬미>) “젊은 우리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 가는데”(<TOMBOY>)

 

‘세계의 명화(名畫)’나 ‘꼭 보아야 할 영화 100선’류의 책, 또는 정평으로 이름난 필자가 쓴 서평 모음집 따위를 손에 넣으면, 누구라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나오는 장부터 찾아 읽게 된다(없으면 실망을 넘어, 아예 그 책을 쓴 사람의 안목마저 불신하게 된다!).『이 한 줄의 가사』도 예외가 아니어서, 나는 하덕규가 곡을 쓰고 노랫말을 붙인 <가시나무>부터 찾아보았다. “네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조성모가 다시 불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노래는 이영애와 김석훈이 출연한 뮤직비디오의 강렬한 서사 때문에 안 그래도 연가로 자리 잡은 이 노래가 또 한 번 슬픈 연가로 장르 윤색 되었지만, 원래 이 노래는 연가가 아니라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기독교 대중음악)이다. 노래 속 ‘당신’은 이성이 아니라 절대자(신)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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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야 어떻든 <가시나무>를 처음 들었던 순간, 이 노래의 첫 두 구절은 스무 살 무렵의 우상에게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 1980년 중반, 앤 차터스의『나는 죽음을 선택했다: 사랑과 혁명의 시인 마야코프스키』(까치,1985)를 읽고, 나는 단박에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1893~1930)의 시와 머리 스타일(까까머리)을 흉내 냈다. 책 속에 있는 그의 사진을 오려 책상 앞에 붙였고, 사진 아래의 여백에 그가 쓴 싯귀를 옮겨 적었다. “나에게 나는 너무도 작아서/ 나는 자꾸 나를 떠나가려 하네.” 마야코프스키의 싯구에는 갑갑하기 짝이 없는 세상으로부터 탈출하고픈(뒤엎고 싶은) 젊은 날의 낭만주의적 열정이 배어있으며, 청춘의 무모한 열정이 어느 정도 식고 나서야 하덕규 처럼 내 속의 빈 터로 남은 타자를 성찰 할 수 있다.

 

<가시나무>는 특별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대중가요는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다. 교양계층의 일부는 사랑타령으로 도배되어 있는 대중가요를 질색하지만, 한자 문화권에서 시의 원류로 숭앙되는『시경』에 실린 많은 시도 실은 사랑을 읊고 있으며, 거기엔 낯 뜨거운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도 섞여 있다.『시경』의 후예들인 현대의 젊은 시인들이라고 이와 다를까? 대중가요에서 사랑이 차지하고 있는 해악은 사랑에 대한 상투적인 인식과 표현이지, 사랑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런 뜻에서 지은이는 산울림의 <둘이서>와 <아마 지난 여름이었을거야>를 아낌없이 예찬한다.

 

“산울림은 ‘게임 체인저’였다. 기존 음악 판을 뒤엎고, 자신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세상을 지배했다. 그들의 데뷔 앨범은 벼락같았다. 사랑의 감정이 상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 대중음악은 산울림이 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그들은 감성의 혁명가였다. 그들 음악에서 아마추어리즘을 읽어내는 건 부질없다. 미국에서 너바나가 나오기 12년 전 한국 땅에서 이미 얼터너티브 록이 시작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역사적이다.” 산울림은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한 대목처럼, “한마디 말이 노래가 디고 시가 되는” 경지를 이루었다. 비유하자면 그들이 대중가요에서 이룩한 성취는 1960년대에 김승옥이 한국문학에서 이룩한 ‘감수성의 혁명’에 버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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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8할 이상이 사랑타령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대중가요가 한 입으로 사랑만 노래하고 있지는 않다(8할은 전수 조사 끝에 나온 수치가 아니라, 그냥 ‘많다’라는 것을 나타내는 수사다). 그것을 대표하는 장르가 바로 저항가요(민중가요)인데, 말 그대로 ‘대중가요’는 지하가 아닌 지상의 음악이므로, 대중가요 가사에 저항성과 민중성을 담기 위해서는 검열을 피하기 위한 강도 높은 탁마가 필요했다. 그러나 80년대의 독재정권은 학생운동가 출신인 김민기가 만든 곡은 물론, 운동권과 무관했던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왜 불러>같은 노래마저 금지하여 저항가요가 되게 했다.

 

김민기가 작사ㆍ작곡하여 송창식에게 준 <강변에서>(1976)를 처음 들었을 때 소름이 끼쳤다(이 노래를 몰래 음미하는 내가 마치 ‘빨갱이’처럼 느껴졌다). 한국 가요사에 열여섯 살 난 ‘공순이’가 갑자기 난입한 이 광경은 무어라 형언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 노래의 ‘공돌이’ 버전이 시나위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1986)라고 한다면 당신은 웃을텐가. “피곤이 몰아치는 기나긴 오후 지나/ 집으로 달려가는 마음은 어떠한가”라는 가사 속에 공장 노동자를 암시하는 단어는 분명히 없다. 하지만 상처 입은 듯 표호 하는, 그러면서도 넉넉한 낙천성이 뒷받침된 임재범의 반골적인 목소리는 공장 노동자의 퇴근을 노래하고 있지 결코 샐러리맨의 퇴근을 노래하고 있지 않다. 대중가요는 당대의 사회와 문화를 반영할 뿐 아니라,음악 장르와 젠더의 관습 또한 정직하게 반영한다. 헤비메탈은 남성 근육 노동자의 노래이며, <크게 라디오를 켜고>의 가사는 장르와 젠더의 관습에 따라 해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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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와 바닷물은 구분할 수 없는 하나이며, 무용수의 춤과 몸 역시 구분할 수 없는 하나이다. 마찬가지로 노래와 노랫말도 구분할 수 없는 하나다. 하므로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스웨덴 한림원은 하나인 것을 둘로 나누는 만용을 부린 것이다. 즉, 분리할 수 없는 밥 딜런의 노래에서 노랫말만 똑 떼어내 문학상을 준 것이다. 여기서 밥 딜런의 가사가 문학적으로 뛰어난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은 우스개다. 지은이는 역시 “만우절 거짓말”이라는 말로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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