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Tribute(Archive) - 과소평가된 탁월한 피아니즘, 폭넓은 음악세계 - 돈 프리드먼(Don Friedman)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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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 Friedman (1935.5 ~ 2016.6)
빌 에반스의 그림자에 가려졌던 숨겨진 명인
과소평가된 그의 탁월한 피아니즘
폭넓은 음악세계
글/MMJAZZ 편집장 김희준
우리가 열렬히 추종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빌 에번스의 얼터 에고 같은 존재(로 재즈팬들사이에서 인식되곤 하는) 피아니스트 돈 프리드먼이 지난 2016년 6월 30일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인인 마릴린 프리드먼에 따르면 공식적인 사인은 췌장암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는 병마로 인해 고통 받다가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했다고 한다. 이미 31년 전 세상을 떠난 빌 에번스와는 달리 꽤 장수한 그는 재즈 신의 전면에서 화려한 주목을 받으며 탑 클래스 뮤지션으로 명성과 부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평생 동안 지속적이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으며 실제 음악적인 성격도 우리가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더 풍부하고 다채롭고, 또 훌륭했던 인물이었다.
사실 필자가 보기에 그는 가진 역량과 작품의 걸출한 성과에 비해 저평가 받고 간과된 면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저평가된 이면에는 빌 에번스라는 재즈사의 상징적인 한 연주자의 존재가 분명히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결코 모방의 차원에만 머물렀던 뮤지션이 아니었다. 1956년 클라리넷주자 버디 디프랑코의 밴드 멤버로 재적하면서 서부지역에서 동부 뉴욕으로 건너올 당시 이미 그의 음악적 기반은 클래식의 하모니를 재즈에 적용하는 방식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으며 이 시기엔 그가 빌 에번스라는 연주자를 미처 알기도 전이었다. 그리고 빌 에번스와 돈 프리드먼, 이 두 사람 사이에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인 베이시스트 스캇 라파로를 만난 것도 동부로 넘어오기 전 LA에서였으며 이미 그곳에서부터 함께 긱(Gig)을 가지며 교감을 쌓아가던 중 자연스럽게 뉴욕에서 빌 에번스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스캇 라파로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1961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돈 프리드먼은 빌 에번스와 돈 프리드먼 두 사람 모두와 각각 팀을 이뤄 연주를 했으며, 실제로 돈 프리드먼과 스캇 라파로는 같은 아파트에서 살며 서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었다고 한다. 물론 돈 프리드먼은 생전 자신의 음악에 빌 에번스가 끼친 영향력을 결코 부인하지 않았다. 뉴욕으로 건너 온 직후 빌 에번스 트리오(베이시스트 스캇 라파로, 드러머 폴 모션)가 빌리지 뱅가드에서 함께 한 공연도 당시 직접 보았으며 빌 에번스가 들려주었던 생경하고도 독창적인 하모니, 코드 보이싱에 관한 아이디어에 많은 영감을 받고 자신의 연주에 적용시키기도 했다는 점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빌 에번스와 분명히 다른 음악적 아이덴티티 또한 형성해 나갔다. 우선 애초부터 버드 파웰로부터 이어받은 비밥의 에센스에 대해 더 크고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으며, 더불어 오넷 콜맨과의 교류를 통해 프리재즈의 영역에 더욱 깊이 발을 들였다는 점은 빌 에번스와는 다른 뚜렷한 차이점이자 그만의 독자적인 행보였다. 여기에 내성적이고 섬세한 빌의 감성과 피아노 터치에 비해 돈 프리드먼은 더 외향적이고 스트레이트하며 시원시원하고 막힘없는 터치와 음색을 갖추고 있다는 차이점도 있다. -돈 프리드먼도 스스로 빌 에번스의 왼손 연주에 비해 오른손은 상대적으로 호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며 자신의 것과는 적잖이 다른 면이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좀 더 남성적이며 호방하며 선 굵고 스트레이트한 사운드를 지닌 밥 성향의 빌 에번스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버드 파웰과 덱스터 고든, 소니 롤린스 같은 연주자들에게서 물려받은 비밥, 하드 밥의 전통적인 유산을 유년시절 재즈를 접한 이후부터 프로 연주자로 경력을 쌓아나간 뒤에도 그대로 간직하고 발전시켜 나간 그는, 활동 초기부터 헝가리 출신의 진취적인 기타리스트 아틸라 졸라나 클라리넷 주자 지미 주프리, 프리 재즈의 거두 오넷 콜맨 같은 뮤지션들과 적극적인 교류를 이어나가면서 음악적으로 정체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러한 음악가들 덕분에 돈 프리드먼의 음악세계는 빌 에번스와 어느 정도 구별되는 면을 지닐 수 있게 되었으며 편성의 측면에서도 더 신선하고 다채로운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는 점은 그만의 독자적인 업적으로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피아니스트 행크 존스와 함께 한 돈 프리드먼 2008년도
누군가의 아류처럼 보인다는 것은 때론 그 아티스트의 커리어에 있어 일정부분은 시선을 끄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결국 독자적이고 창조성을 담보로 하는 예술분야에 치명적인 한계점으로서 결국엔 자신의 입지를 편협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돈 프리드먼은 그 점에서 세간의 시선으로 보기에 다소 불운한 생을 살다간 아티스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평가에 그다지 상심해하지도 않았으며 긍정적이고 일관된 태도로 그저 자신의 음악에 집중하고 몰두했다. 61년 첫 데뷔작 <A Day in the City : Six Variations on a Theme>를 발표한 이후 리버사이드 레이블을 통해 <Circle Waltz>1962년 발매),<Dreams & Explorations>1964년 발매,<Metamorphosis> 1966년 발매) 같은 걸출한 초기 대표작들을 만들었고, 70년대부터는 교육자로서의 활동 및 틈틈이 프로그레시브, 스티플체이스, 햇헛, 소울 노트, ACT같은 여러 중소 레이블들을 통해 트리오와 솔로, 듀오, 쿼텟등 다양한 편성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며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기복 없는 수준의 안정된 디스코그래피, 여기에 기존의 스탠더드 재해석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뛰어난 결과물들을 꾸준히 보여온 것만으로도 지금보다는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특히 필자에게 있어 아틸라 졸라, 리 코니츠와 함께 했던 색소폰-기타-피아노의 독특한 트리오 조합<Thingin’>Hatology/1995 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아선 안되는 인상적인 지점으로서, 편성의 신선함만큼이나 지적이며 격조 높은 앙상블, 어디하나 허투루 넘겨들을 수 없는 밀도감 있는 인터플레이로 독자적인 존재가치를 뚜렷이 보여주었던 바 있다. (무엇보다 빌 에번스와는 연주방식, 즉흥연주 내용등 여러면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이만한 음악적 역량과 디스코그래피를 두루 갖춘 연주자가 세상을 떠난 지 수개월이 지났음에도 다운비트나 재즈타임즈 같은 저널에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필자로선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빌 에번스의 그늘이 너무도 짙게 드리워진 탓일까? 글/MMJAZZ 편집장 김희준
(좌로부터) 돈 프리드먼, 짐 홀, 브라이언 블레이드, 펠레 다니엘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