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Tribute - 장르 초월한 위대한 음악적 비전과 통찰력의 소유자! - 퀸시 존스(Quincy J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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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시 존스(Quincy Jones) 1933.3~2024.11
최고의 '재즈 빅밴드 편곡자'에서 20세기 '넘버원 팝 프로듀서'까지
장르 초월한 위대한 음악적 비전과 통찰력의 소유자!
글/MMJAZZ 편집장 김희준
미 대중음악전반에 끼친 거대한 영향력과 함께 프로듀서라는 역할과 중요성을 누구보다 크게 부각시킨 거물중의 거물 퀸시 존스가 한국시각으로 지난 11월 4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자택에서 수면중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지지만 사실 그는 꽤 오래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미 10년 전 한국에 내한했을 때도 그랬고, 이후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해 수차례 의식을 잃고 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을 만큼 그의 건강상태는 좋지 않았죠. (당뇨와 혈압문제가 아주 심각했다고 하는데, 이 점은 2018년 공개되었던 그의 다큐멘터리 [Quincy]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도 뇌동맥류 파열로 죽을 고비를 한차례 넘긴 적이 있죠)
그럼에도 그는 이후 10년 가까이 더 삶을 연장했으며 이전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공식석상에도 종종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멍크 인스티튜트와 스미소니언 흑인 음악 박물관 설립의 기획단계에부터 적극적으로 참석해 공식석상에서 이야기할 때마다 재즈를 비롯한 흑인음악의 중요성, 가치에 대해 잊지 않고 강조하곤 했습니다. 11년 전 한국에 왔을 때에도 이점은 마찬가지였죠.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대중음악을 하더라도 재즈에 대한 이해를 갖고서 할 필요가 있다. 재즈에 담겨진 리듬, 화성, 선율과 사운드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 갖춘 상태에서 대중음악을 할 때 훨씬 더 내실 있고 뛰어난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견해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했었는데, 그의 이 지론은 사실 따로 부연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게, 퀸시 존스 그 자신이 그 명제를 몸소 실천해 어마어마한 대성공을 거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잭슨의 걸작 3부작 [Off the Wall], [Thriller], [Bad] 에 참여한 세명의 주축 인물들. 좌로부터 퀸시 존스, 마이클 잭슨, 로드 템플턴
초기 시절 재즈 트럼페터에서 대형 앙상블 작, 편곡가로 카운트 베이시, 프랭크 시나트라, 사라 본, 다이나 워싱턴 같은 거물 보컬리스트들과 함께 일해 왔으며 1960년 본인이 직접 퀸시 존스 빅밴드를 조직해 앨범을 만들어 낼만큼 재즈에 진심이었죠. 20대 중반 대형 앙상블 작,편곡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가서 나디아 블랑제와 올리버 메시앙에게 가르침을 받을만큼 학구적인 열정도 대단했습니다. (그가 흑인이라는 걸 감안하면 당시로선 아주 이례적이며 지금도 좀처엄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야심차게 조직한 자신의 빅밴드가 음악적인 탁월함과는 별개로 상업적으로 큰 실패를 맛본 뒤 대중음악 쪽으로 방향을 점차 선회하기 시작해나갔으며 이후 머큐리 레코드사의 부사장직을 역임, 그와 함께 영화,TV 음악 작업및 솔로 아티스트의 작, 편곡, 프로듀서 역할로 명성을 쌓아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리더작들을 쏠쏠하게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그의 대중적 명성은 영화 음악및 팝 프로듀서에서 비롯되었죠. 그중에서도 마이클 잭슨과의 콜라보레이션은 다들 잘 아시듯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이클 잭슨과의 협업으로 이뤄낸 3장 <Off the Wall>, <Thriller>, <Bad>의 어마어마한 임팩트에 박수를 보내고 3장 도합 미국 내에서만 6천만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린 그 수치에 감탄하곤 하지만 그 앨범 안에 담긴 경이로운 음악적 센스, 아이디어와 사운드 메이킹에 대해선 의외로 잘 언급하지 않습니다. 당시 흑인 뮤지션들이 만들어낸 곡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록적이었던 Beat It, 이 곡의 기타 솔로를 위해 에디 밴 헤일런을 초빙해 역사에 남을 기타 솔로를 만들도록 주문한 것, Human Nature 의 기타및 키보드 인트로에서 들을 수 있는 심플하지만 더없이 효과적인 리듬 리프와 신디사이저의 환상적인 아르페지오 사운드는 개인적으로 반복해 들을 때마다 감탄이 나옵니다. 작곡 자체의 탁월함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죠. 이 곡들의 처음 데모를 들어보면 마지막 완성본이 얼마나 많이 변화되었는지 알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퀸시 존스가 자신의 동료들과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어떻게 사운드를 빌드 업 해낼지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앨범에 담긴 이 완벽하고도 멋진 사운드가 탄생하게 됩니다. Billie Jean 의 심플한 8비트 드럼 솔로에 이은 루이스 존슨의 베이스 인트로는 또 얼마나 귀에 착착 감기나요. 폴 매카트니와 함께 듀엣으로 부른 The Girl is Mine 의 백그라운드 신디사이저와 일렉트릭 피아노, 스티브 루카서의 감칠맛 나는 리듬 기타, 그리고 곡의 적재적소에 드러나지 않게 사운드의 층을 형성하고 있는 스트링과 브라스 파트 연주는 팝음악이 가질 수 있는 음악적 완성도의 정점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퀸시 존스 사단 멤버들과 [Thriller] 앨범에 참여했던 세션 연주자및 참여 아티스트들. 토토의 멤버들인 스티브 루카서, 제프 포카로, 그리고 폴 매카트니
이 모든 작업들을 탁월하게 진두지휘해낸 퀸시 존스와 그의 사단 멤버들, 퀸시 존스와는 너무나 찰떡궁합인 작,편곡가 로드 템플턴, 건반주자 그렉 필링게인즈, 세션 연주자로서 더할 나위없는 균형감을 갖고서 배킹이든 솔로든 딱 알맞게 연주하는 기타리스트 폴 잭슨 주니어와 베이시스트 루이스 존슨, 거기에 토토의 오리지널 멤버들인 제프 포카로, 스티브 포카로 형제와 데이빗 페이치, 스티브 루카서까지 당대 최고의 세션 뮤지션들을 한데 뭉쳐 최고의 팝 사운드를 만들어내도록 할 수 있는 역량과 영향력은 분명 50~60년대부터 재즈 빅밴드및 보컬리스트의 편곡자로서 쌓아온 내공과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죠. 팝음악으로서 심플함은 유지하되 사운드의 층을 정말 다양하고 풍성하게 쌓고, 악기별 밸런스도 완벽에 가깝게 잡아서 디테일한 사운드들을 결코 난잡하지 않게 뽑아내는 그의 세밀하고도 균형감 넘치는 프로듀싱은 발매된 지 40년이 지나 다시 들어봐도 여전히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함을 느끼게 합니다. 1981년도 자신의 솔로 앨범 <Dude> 에 담긴 Ai No Corrida 의 여간한 빅밴드를 방불케 하는 브라스 사운드, 제임스 잉그램의 훌륭한 절창이 빛을 발하는 Just Once 와 One Hundred Way, 투츠 틸레망의 운치 만점 하모니카 연주가 감성을 사로잡는 Velas 같은 곡들의 반주들 역시 스튜디오 사운드의 최정점이라고 말해도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거기에다 그는 흑인으로서의 인권에 대한 자각도 확실해서 TV 드라마 뿌리(Roots)의 O.S.T, 그리고 자신이 직접 영화 제작자로 참여하고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감독을 맡겨 영화를 만들어낸 칼라 퍼플(The Color Purple)같은 작품들을 빌어 강제로 미국 땅에 이주해 노예 생활을 하며 고통받아온 선조들과 그 후예들의 힘들고 비참했던 삶을 잊지 않고 되새기고자 했습니다. 그가 말년에 참여해 가장 공을 들인 프로젝트 중 하나인 스미소니언 흑인역사 & 문화 박물관 행사는 바로 이런 맥락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그는 재즈에 대한 헌정을 나이 들어서 더 강하게 지속시켜 나갔습니다. 재즈 빅밴드로 상업적 실패를 맛본 뒤, 영화음악가 및 팝 프로듀서로 전환, 상상도 못할 부를 축적하고 이후 수많은 러브콜이 쏟아졌지만 그는 생각 이상으로 차분하게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들, 또는 본인의 성에 차는 뮤지션들하고만 작업했죠. (물론 매번 성공하진 않았습니다) 본인의 솔로 작품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Back on the Block> 은 그가 비록 빅밴드로 상업적 실패를 맛보긴 했지만 그럼에도 재즈에 대해 여전히 변치 않은 애정을 가슴깊이 갖고 있음을 다양한 장르적 표현 방식을 통해 드러낸 일종의 ‘흑인음악 찬가’입니다. 앨범의 참여뮤지션 절반 가까이 다 재즈 뮤지션 인 것(부클릿 세션 리스트를 살펴보면 어마어마한 인선에 말이 안 나옵니다), 그들에게 짧지만 솔로를 맡긴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죠. 그리고 젊고 뛰어난 재능의 재즈 뮤지션들을 발굴 및 후원하며 퀸시 존스 아티스트라는 타이틀로 공연을 진행해왔습니다. 11년 전 한국에 갈라 콘서트 형태로 내한했을 때 무대에 섰던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로드리게스, 저스틴 카우플린, 그리고 이제는 빅 네임으로 성장한 싱어송라이터 제이콥 콜리어가 모두 퀸시 존스 아티스트로 이 당시부터 후원을 받아온 뮤지션들입니다. 젊은 시절 자신에게 일을 주고 명성을 쌓도록 도와준 디지 길레스피나 라이오넬 햄튼, 베니 카터 같은 선배들처럼 그 자신도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길 바랬던 퀸시 존스는 다음 세대를 위해 보은을 베풀 줄도 아는 심덕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 며칠 동안 이전 자료들을 뒤적이고 그가 남긴 음악들을 다시 찾아 들으면서 위대한 프로듀서 이전에 얼마나 대단한 역량을 지닌 뮤지션이었는지를 새삼 느낍니다. <Back on the Block>이 올해의 앨범 포함 7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가져갔을 때 시상식을 보면서 당시 어린 마음에 응원했던 뮤지션이 상을 타지 못했던 것에 대한 의아함과 약간의 어이상실을 가졌던 필자가 시간이 지나, 그 결과에 대한 타당성을 깨닫게 된 것처럼 퀸시 존스는 단순한 당대 최고의 히트 메이커로만 바라보면 도리어 놓치는 게 너무 많은 인물입니다. 그래미, 아카데미, 토니, 에미 어워즈, 록앤롤 명예의 전당, 케네디 센터 오너스등 생전 굵직한 상이란 상은 다 받은 이 경이로운 커리어의 성과가 그의 음악 전반을 다 대변해주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뼈와 살을 깎아내면서 만들어낸 음악들에 담긴 확고한 비전과 감각, 장인 정신이 그 이상으로 거대하고 위대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남은 생애 이만한 역량의 음악 프로듀서를 우린 다신 만날 수 없을 겁니다. 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연들인 클락 테리, 레이 찰스, 프랭크 시나트라, 마이클 잭슨을 만나 천국에서 부디 행복한 해후 가지시길. 멋지고 훌륭하며 감동적인 음악들 너무 감사했습니다.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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