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Review Column(Archive) - 생사의 고비 넘어 비로소 얻어낸 예술적 성취! - 프레드 허쉬 트리오(The Fred Hersch Trio)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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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red Hersch Trio <Sunday at the Village Vanguard>
생사의 고비 넘어 비로소 얻어낸 예술적 성취!
글/MMJAZZ 편집장 김희준
현존하는 재즈 피아니스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도 서정적인 멜로디를 작곡하고 또 즉흥연주로 들려줄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하라면 당신은 누구를 꼽겠는가? (아! 물론 이 질문이 다소 유치하고 선정적이라는 걸 필자 역시 잘 안다. 음악처럼 듣는 이의 주관과 이해의 영역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분야에서 이렇게 특정 카테고리로 줄 세우는 방식을 필자 역시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 그런 주제로 이야기하다보면 때론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므로 한번쯤은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아마 국내 재즈 팬들에게 위의 질문을 던진다면 키스 재럿, 브래드 멜다우, 엔리코 피에라눈치, 그리고 프레드 허쉬 이 네 명의 연주자들이 서로 경합을 벌이는 상황이 적잖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들의 음악에서 서정성, 선율미는 여타 다른 요소들만큼이나 아주 중요하며 특히 팬들의 사랑을 받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만약 필자에게 이 질문의 답을 요구한다면 개인적으로 망설임 없이 프레드 허쉬를 첫 번째로 선택할 것이다. 그의 서정미는 타 연주자들과 비교해 훨씬 내성적이며 내밀하고 섬세한 결을 갖고 있다. 빌 에번스에게서 이어진 이 감성이 더욱 여리고 잔향의 여운을 지닌 채 발현된 프레드 허쉬의 피아니즘은 오랜 세월을 거쳐 숙성되고 정교해지면서 이젠 즉흥연주 시에도 음 하나하나가 매끈하게 다듬어진 듯한 인상을 주는 프레이즈가 뽑아져 나오는 경지에까지 다다랐다.
특히 그의 연주가 90년대 이후부터는 일말의 기복도 없이 항상 최상의 경지에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한데,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겐 HIV 바이러스로 인한 치명적인 건강상의 문제가 늘 도사리고 있어 언제 자신의 커리어가 예기치 않은 시점에서 갑자기 마감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8년 페렴으로 인한 합병증세로 그가 깊은 혼수상태에 빠졌고 2주 동안 깨어나지 못했을 때엔 그의 연인을 비롯해 주위의 지인들은 이번이 마지막일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가질만큼 심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는 의식을 되찾았다. 그때 이후부터였다. 프레드 허쉬가 삶에 대한 태도와 음악을 바라보는 시각에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 것은. 이 시기이후 한동안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었던 그는 꾸준히 재활에 매달렸고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근육의 반응속도가 현저히 떨어져 이전과 같은 숙련된 레벨의 연주를 다시 들려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다시 피아노 앞에 앉을 수 있게 되고 이전처럼 연주를 할 수 있을만큼 회복하고 난 뒤 새로이 트리오 라인업을 구축했다.
흠잡을 데 없는 케미스트리를 보여주었던 이전의 트리오 멤버들인 베이시스트 드류 그레스와 드러머 나쉿 웨이츠가 떠나고, 2009년부터 새롭게 베이시스트 존 에이베어와 드러머 에릭 맥퍼슨으로 이루어진 트리오 멤버를 가동시켰는데 이들은 사실 앞선 멤버들에 비해 지명도나 커리어가 부각되는 연주자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프레드 허쉬의 피아노 사운드에 아주 적합했으며 특히 리더를 서포트하고 돋보이게 하면서 그저 수동적으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교감을 더욱 깊게 추구하는 인터플레이 측면에서 비할 데 없이 아주 탁월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프레드 허쉬는 두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하면서 한층 더 긴밀하고 높은 수준의 인터플레이를 시도할 수 있었고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피아노에 다가오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았다. 이런 프레드 허쉬의 열린 태도는 두 연주자들에게 한층 자연스럽고 편한 상태에서 연주에 참여할 수 있게 했는데, 코마 상태를 겪고 난 뒤 죽음을 더 가까이 느껴본 그는 매순간 연주가 자신의 마지막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이는 전에 없이 그의 집중력과 감성을 더욱 예민하고 선명하게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그의 이런 변화는 팀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그것은 더욱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계속 선순환되는 결과를 낳게 했다.
이들 세 명은 어느덧 햇수로 8년째, 디스코그래피로는 2장의 라이브 앨범을 포함해 총 다섯 장을 함께 만들어내었다. 지금까지 다양한 뮤지션들과 트리오 라인업을 형성해 앨범을 만들어 왔던 프레드 허쉬이지만 동일한 멤버로 이렇게 많은 결과를 일구어낸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2014년도에 발표되었던 <Floating>에 이어 2년 만에 새로이 선보이는 라이브 앨범 <Sunday Night at the Village Vanguard> 는 그에겐 마치 집과도 같은 친숙한 공간인 빌리지 뱅가드에서 다시 한 번 연주된 것으로 그의 오랜 팬들에겐 더없이 친숙할 것이다. 음악 역시 그렇다.
이 트리오의 음악세계! 여리고 섬세하며 다정하고 사려 깊은 감성의 흐름이 피아노뿐만 아니라 베이스와 드럼에서도 풍부히 넘쳐흐른다. 마치 모든 악기들이 다 선율미를 지향하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다. 그러면서도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며 서로 교감하고 대화하는 광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훌륭하다. 여러 역경을 뒤로 한 채 환갑의 나이에 비로소 맞이한 그의 음악적 성취에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며 아무쪼록 더도 말고 건강히 지금과 같은 행보만 보여주시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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