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오 [T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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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연주하는 마르신 바실레프스키, 베이스를 연주하는 슬라보미르 쿠르키에비츠, 드럼을 연주하는 마샬 미스키에비츠는 이름만으로는 한국의 재즈 애호가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이름일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도 쉽지 않기에 생경함의 정도는 더하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혹시 트럼펫 연주자 토마즈 스탄코의 [Soul Of Things](ECM, 2002)나 [Suspended Night](ECM, 2004)앨범을 갖고 있다면 다시 한 번 크레딧을 확인해 보기 바란다. 그러면 아하! 하고 이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들이 폴란드 재즈 무대에 등장하고 나아가 유럽 재즈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은 토마즈 스탄코의 힘이 컸다. / 최규용
폴란드 재즈의 국가대표 토마즈 스탄코가 픽업한 심플 어쿠스틱 트리오
1994년 이 폴란드 재즈의 국보급 존재는 세 연주자에게 관심을 갖고 함께 연주하기를 의뢰했다. 이 당시 세 연주자의 나이는 상당히 어렸는데 마르신 바실레프스키와 슬라보미르 쿠르키에비츠가 18세 그리고 마샬 미스키에비츠가 16세였다. 그러니까 10대의 나이에 40살 연상의 트럼펫 연주자, 그것도 폴란드를 대표하고 유럽 재즈를 대표할만한 트럼펫의 거장과 밴드를 이루어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는 이 세 연주자가 얼마나 실력이 처음부터 뛰어났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이들이 토마즈 스탄코와 밴드를 이루어 공연을 하는 모습을 DVD 영상으로 볼 기회가 있었는데 단순히 스탄코의 연주를 소극적으로 보좌하는 것이 아니라 대담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는 놀라움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 ECM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선을 보이는 [Trio]앨범은 아직 20대에 머물러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신예답지 않은 완숙미를 보인다. 물론 이것은 이들이 ‘심플 어쿠스틱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폴란드의 작은 레이블에서 두 장의 앨범을 녹음한 이력이 있다는 사실에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이전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들의 나이가 아니라 이들이 10년 이상을 트리오의 형태로 함께 해왔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재즈의 경향이 순간성을 중시하여 매 앨범마다 연주자들이 가능한 경우의 수에 맞추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인정해야 하는 일이다. 즉 이들은 세 연주자간의 오랜 호흡을 통하여 발생되는 플러스 알파를 지녔다는 것이다.
ECM의 피아노 트리오를 대표할 ‘트리오’
나는 이 앨범을 들으며 이들이 최근 주목 받고 있는 토드 구스타프센 트리오와는 다른 차원에서 ECM의 피아니즘을 발전시키리라 예상하고 있다. 그것은 이들이 구체적인 멜로디 자체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은 작곡을 하고 또 그 곡에는 테마가 있다. 실제 비요크의 곡을 연주한 ‘Hyperballad’나 자작곡 ‘Shine’ 같은 전반부 수록 곡을 들어보면 토드 구스타프센 트리오와 E.S.T.의 중간 선상에 위치시킬 수 있는 이들만의 멜로디적 감각이 느껴진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정해진 멜로디의 모든 음을 순차적으로 연주하기 보다는 띄엄띄엄 바둑을 두듯이 생략에 의한 여백을 주면서 연주해 나가기 때문에 테마는 개방된 상태에서 하나의 분위기의 진행을 제시하는 성격이 더 강하다. 이것은 이미 이들의 이전 두 장의 앨범에서도 드러났던 바이다. 그러나 맨프레드 아이허의 손길 하에서 녹음한 이번 앨범은 그 분위기가 하나의 이야기를 생성해 내는 차원으로 발전된 양상을 보인다. 그것은 앨범 전체를 한 번에 들었을 때 드러나는 것으로 각 개별 곡들의 분위기를 넘어 수록 곡들의 진행을 살펴보면 후반부로 갈수록 멜로디에 대한 개념이 흐려짐을 발견할 수 있다. 대신 로우 톤으로 어두운 공간을 맴도는 즉발적인 상호 연주가 보다 더 전면에 부각된다.
특히 ‘Drum Kick’을 시작으로 ‘Trio Conversation(The End)’로 끝나는 후반 다섯 곡은 연주하며 작곡을 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뛰어난 상호 연주를 들려준다. 그럼에도 앨범 후반부에서 멜로디가 느껴진다면 그것은 앨범 전반부에 대한 환영적 잔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어려운 앨범이 아니라 감수성이 예민한 감상자들에게 촉촉이 다가가는 은밀하고 내면적인 앨범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것은 이들의 연주가 감상자나 연주자 본인들에게 숙고의 시간을 제공하는 느린 연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호 연주가 강조되면 될수록 오히려 트리오의 응집력은 더 강해져 세 연주자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그 합으로서의 트리오의 존재감이 확고해지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은 이번 앨범을 통해서 분명 세계적으로 폭넓은 조명을 받게 될 것이다. 오히려 좀 늦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아무튼 이러한 세계적 조명은 분명 이들을 E.S.T., 배드 플러스, 토드 구스타프센 트리오와 함께 재즈 피아노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감수성을 지닌 트리오로 이들을 위치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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