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앙 질베르토(João Gilberto) 추모 칼럼 - ‘평생 갈고닦은 소박하고도 위대한 노래’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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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bute Special
조앙 질베르토(João Gilberto) 1931.6.10 ~ 2019.7.6
‘평생 갈고닦은
소박하고도 위대한 노래’
2019년 7월 6일, 브라질의 리오에서 조앙 질베르토가 세상을 떠났다. 1960년대가 시작되기 직전 조앙 한 사람의 기타 연주로부터 태어난 음악, 그 보사노바의 역사가 벌써 70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에 감개무량했던 기억이 아직 새로운데, 그 역사의 창조자가 세상을 떠났다. 보사노바는 영생을 얻었으나, 그 출발점이자 보사노바 그 자신이었던 조앙 질베르토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하나의 시대가 정말로 막을 내렸다는 실감이 든다. 꽤 오래 전부터 머지않아 찾아올 날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역시 그날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글/음악 칼럼니스트, 작사가 박창학
거장의 마지막 날들은 편안한 것만은 아니었다. 보사노바의 출발점이었던 그의 초기작 앨범들을 둘러싼 EMI와의 분쟁{주1}은 10년이 넘게 이어지며 아직 최종적 결말이 나지 않은 상태였고, 제각기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세 자녀{주2}들 사이에도 크고 작은 다툼과 소문들이 들려 왔다. 재정적 파탄을 맞았다는 얘기도 있었고, 실제로 조앙을 돕기 위한 콘서트 등의 이벤트가 조심스레 기획되기도 했다.
2008년 8월의 상파울로 공연을 끝으로, 그렇지 않아도 철저하게 은둔자의 삶을 고집했던 그의 외부활동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졌지만 이런 저런 소문은 이어졌고, 새로운 녹음을 계획하고 있다는 ‘꿈’ 같은 소식도 있었지만, 결국 실현되는 일은 없었다. 따라서 그가 남긴 마지막 오리지널 스튜디오 레코딩은 2000년 카에타노 벨로조(Caetano Veloso)의 프로듀스로 만들어진 앨범 <Voz e Violão> (오직 조앙의 목소리와 기타로만 녹음된 앨범)이 되었고, 마지막 공식 라이브 앨범은 2003년 9월 열린 그의 첫번째 일본 공연 실황을 기록한 2004년 앨범 <João Gilberto in Tokyo>다.
너무 감상적인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지 않기 위해 이 글에서는 외부 활동을 그만둔 시점 이후 새로 발표된 음원들을 되짚어 보면서 그를 추억해 보려 한다. 새 음원 발매와 관련한 그 이후의 굵직한 소식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2016년 발매된 <Getz/Gilberto '76>. 이 앨범은 1976년 5월 스탄 겟츠의 4중주단에 게스트로 참가한 조앙 질베르토의 라이브(샌프랜시스코의 클럽 Keystone Korner에서 11일부터 16일까지 6일간) 음원을 발굴한 것으로, 전곡 조앙의 연주와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스탄 겟츠가 함께 연주하는 곡들은 절반 정도.) <João Gilberto en México> (70), <João Gilberto>(73), <Amoroso>(77)로 이어지는 70년대 앨범들의 흐름 안에서 가장 반짝이던 한 순간을 담은 귀중한 기록이다. 70년대의 라이브를 담은 음원으로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2019년 일본에서 발매된 공연 영상 <João Gilberto LIVE IN TOKYO>인데, 이 영상은 2006년 11월의 세 번째 일본 공연 중 마지막 이틀간의 도쿄 공연을 촬영한 것으로, 12년의 우여곡절을 거쳐 일반 발매된 것이다. 조앙 본인의 동의하에 발매된 생애 첫 공식 영상기록이기도 하다. 2003년의 첫 일본공연과 관련해서는 오래 전 필자의 졸저[라틴 소울]에서도 기록한 바 있지만, 조앙은 첫 일본공연을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워했다. 까다로운 그가 결국 라이브 앨범 발매를 허락할 만큼 음향 환경도 관객의 반응도 그가 원하는 바에 가까웠다. 첫 공연의 좋은 기억은 2004년과 2006년의 제2차, 제3차 일본 공연으로 이어졌고, 아쉽게도 취소된 제4차 일본 공연을 앞둔 시점에서의 2008년 상파울로 공연도 일본의 음향 스태프를 일부러 초청해 준비했다. 일련의 일본공연의 공식적 기록은 그동안 위에 언급한 2004년 앨범 <João Gilberto in Tokyo>가 유일한 것이었는데, 이제 소리로만이 아니라 영상으로 귀한 공연을 직접 느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2018년에는 <Where are you, João Gilberto?>라는 흥미로운 영화가 등장하기도 했다. 2005년 <Maria Bethânia: Música é Perfume> (마리아 베타니아: 음악은 향수)를 비롯해 브라질 음악에 관해 몇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온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영화작가 조르쥬 가쇼(Georges Gachot)의 이 영화는, 조앙 질베르토의 행방을 찾는 감독 본인의 여행을 담고 있는데 그 모티브가 된 것은, 역시 조앙의 행방을 찾는 여행의 과정을 기록한 독일인 저널리스트 마르크 피셔(Marc Fisher)의 책 <Hô-bá-lá-lá: À Procura de João Gilberto>(오-발-랄-라: 조앙 질베르토를 찾아서) (2016)다. 책도 영화도 국내에 소개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오랜 세월 은둔자 조앙 질베르토의 뒤를 쫓아 온 그의 팬들이라면 관심이 갈 만한 이야기다. 조앙 도나토(João Donato), 미우샤 등 다수의 뮤지션들이 등장해 조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Hô-bá-lá-lá’는 첫 솔로 앨범 <João Gilberto> (59)에 실려 있는 조앙의 자작곡의 제목이다. 사실 조앙의 레퍼토리들은 초기부터 만년의 작품과 활동에 이르기까지 큰 변동이 없고, 그 대부분은 다수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ônio Carlos Jobim) 작품들을 비롯한 초기 보사노바의 명곡들, 그리고 흘러간 시대의 삼바곡들로, 자작곡의 수는 많지 않다. 자작곡들은 연주곡(‘Um Abraço no Bonfá’, ‘João Marcelo’)이거나 허밍으로 노래하는 가사 없는 노래들(‘Acapulco’, ‘Valsa’), 거기에 이 곡과 ‘Bim Bom’(역시 첫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곡.)처럼 짧은 단어나 어구를 반복적으로 발음하는 노래들(그밖에 ‘Undiú’)로, 그러니까 의미 맥락을 가진 가사라는 것을 노래에서 배제한 형태의 음악들이라는 특성을 공유한다.
조르주 가쇼 감독이 만든 조앙 질베르토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Where are you, João Gilberto?> 의 포스터
입술과 혀, 치아의 마찰과 진동이 빚어내는 온갖 소리에 집요하게 집중하는 조앙의 가창 스타일과 이 같은 자작곡들의 공통적 특성과의 관련성은 아주 명백한 것이다. 1973년 이후로는 아예 자작곡이 등장하지 않고, 조앙의 예술은, 그의 머릿속에 빼곡히 쌓인 노래들을 끄집어내서 스스로의 기타와 노래만으로 재해석하는 행위, 바로 그것이었다. 1991년 앨범 <João>까지는 오케스트라, 퍼커션 등 다른 음악적 요소들도 그의 작품에 조금씩 등장하지만 그 경우에도 어디까지나 주역은 그의 목소리와 기타였고, 그 이후의 모든 작업에는 모든 조연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주역만 남는다. 이와 같은 음악적 방법론이 첫 등장 때부터 이미 거의 완성에 가까운 모습이었다는 점에서도 그의 음악은 경이롭고, 그 후 60여년에 이르는 그의 음악활동은, 어떤 의미에서, 늘 같은 작업의 반복이었다는 점에서도 그의 음악은 경이롭다. 범인(凡人)들로서는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한 그의 감각을 생각하면 그것은 그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끊임없는 절차탁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리의 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녹음실의 카펫을 바꿔 깔고 다시 녹음했다는 류의 일화들이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인데, 유일무이한 그의 음악적 방법론 자체가 초인적인 그의 감각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 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그리 과장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얘기다.
인터넷을 통해 몇 십 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정보에 즉시 접할 수 있게 된 후, 우리에게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몰랐으면 좋았을 일까지 너무 쉽게 또 너무 빨리 알게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조앙 질베르토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정보 같은 것이 내게는 그런 것이다. 조앙이 살아 있건 그렇지 않건, 내 삶에 있어서의 조앙 질베르토는 다르지 않으며, 앞으로도 나는 끊임없이 몇 장 되지 않는 그의 앨범을 듣고 또 들을 것이지만,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그는 없다는 이 엄연한 사실. 어차피 마찬가지라면 그런 사실 같은 건 끝까지 모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두꺼운 커튼으로 창을 전부 가린 어딘가의 컴컴한 방 안에 여전히 조앙 질베르토는 틀어박혀 기타 줄을 튕기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내 인생은 조금 더 행복했을 것이다. {주3}
어차피 내가 그의 음악을 듣기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그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이상 그는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인생의 어떤 부분들을 형성시켜 준 영웅들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려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니, 이제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잃게 될 일들만 남았다. 나를 아는 누군가와 나를 모르는 누군가. 그를 잃는 것과 동시에 내 삶의 한 부분을 영영 잃게 될 그런 누군가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런 것인 것 같다.
Rest in Peace, Maestro João. 평온과 안식이 당신의 영혼과 늘 함께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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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첫 솔로 앨범 [João Gilberto]를 비롯해 1959년부터 1961년까지 발표된 초기작들을 하나로 묶은 1987년의 편집 앨범 [O Mito] (후에 [The Legendary João Gilberto]라는 타이틀로 미국에서도 재발매 되었다.)가 조앙 본인의 승낙 절차 없이 리마스터링 및 편집, 왜곡, 변형된 형태로 발매된 일에 뿌리를 둔 분쟁으로, 녹음 당시의 레이블인 Odeon의 권리를 승계하고 있는 EMI를 상대로 조앙 본인에 의해 1992년 제기된 이래, 파울로 조빔Paulo Jobim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아들), 카에타노 벨로조 등이 논란에 가세하면서 브라질 음악계에 다양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다.
{주2} 역사적인 앨범 [Getz/Gilberto] (63)의 대히트로 일약 스타가 된 첫 부인 아스트루드 질베르토Astrud Gilberto와의 사이에서 아들 조앙 마르셀로João Marcelo가 태어났고, 두 번째 부인으로 역시 가수인 미우샤Miúcha와의 사이에서는 딸 베벨Bebel을 얻었으며, 2000년대 이후의 소문, 해프닝들의 다수와 관계되어 있는 저널리스트 클라우지아 파이쏠Cláudia Faissol과의 사이에서 2004년 딸 루이자 카롤리나Luísa Carolina가 태어난다. 조앙은 큰아들을 위해 ‘João Marcelo’ (70)라는 연주곡을 만들었고, 베벨을 위해서도 [Valsa] (73)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미우샤는 또 다른 거장 시코 부아르키Chico Buarque의 누나로, 만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활동하다가 2018년 12월 한 발 앞서 세상을 떠났다.
{주3} 인터넷을 조금만 뒤지면 잠옷 차림의 조앙이 거실 소파에 앉아 기타를 튕기며 막내딸 루이자(Lulu)와 함께 노래하고 있는 2015년의 짧은 영상을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가 볼 수 있는 조앙의 마지막 퍼포먼스로 남게 될 기록이다.
참조: 본문에선 요즘 여러 지면을 통해 표기되는 주앙 질베르투, 지우베르투 식으로 표기하지 않고 영어식발음에 가까운 ‘조앙 질베르토’로 일괄 표기했습니다. 이는 본문 글을 쓰신 박창학씨의 의도이기도 한데, 애초 강세가 없는 O는 힘을 빼고 발음해서 우리한테는 'ㅗ'처럼 안 들리는 걸 구분해서 모음 ㅜ으로 표기하는 것인데, 원어민의 입장에선 강세가 있든 없는 O를 발음하는 것이고 강세가 없으니 불분명한 O가 되는 것인데, 그걸 그대로 한글로 흉내내어 표기하느니 그냥 쓰여 있는 글자대로 O로 쓰는 게 좀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그리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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