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 배커랙(Burt Bacharach) 추모 칼럼 - 틴 팬 앨리의 계승자, 재즈에 영감을 준 마지막 히트메이커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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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bute special
버트 배커랙(Burt Bacharach) 1928.5 ~ 2023.2
틴 팬 앨리의 계승자,
재즈에 영감을 준 마지막 히트 메이커
글/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
1968년 <빌보드>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곡은 단연 비틀스의 <헤이 주드 Hey Jude>였다. 오티스 레딩의 <부둣가에 앉아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 크림의 <사랑의 햇빛 Sunshine of Your Love>, 사이먼 앤 가펑클의 <로빈슨 부인 Mrs. Robinson> 등도 연말 결산 순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바야흐로 록과 소울, 포크의 시대가 이미 도래했음을 알리는 결과였다. 2년 뒤인 1970년에도 흐름은 계속되었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Bridge Over Troubled Water>였고 게스 후, 잭슨 파이브, 레어 어스, 비틀스의 노래들이 연말 결산 10위권을 점령했다.
그런데 이 순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시대의 흐름과 동떨어진 히트곡이 눈에 띈다. 팝 트럼펫 연주자 허브 앨퍼트가 노래를 부른 발라드 <당신과 사랑에 빠진 이 남자 This Guy’s in Love with You>는 <헤이 주드>의 해였던 1968년 연말 결산 7위에 올랐으니까 말이다. 카펜터스가 리메이크한 사랑스러운 발라드 <너에게 가까이 Close to You> 역시 1970년 연말 결산에서 무려 2위를 올랐으며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에 등장했던 B. J. 토머스의 상큼한 노래 <내 이마에 떨어진 빗방울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도 같은 해 결산에서 4위에 올랐다. 그것은 세칭 록의 시대에 벌어진 조용한 이변이었다.
16년 뒤인 1986년의 연말 결산 순위를 보자. ‘80년대를 보수주의의 시대라고 부르고 이 시대에 성인취향의 팝이 다시 부활했다고 하지만 음악은, 더 나아가 연예산업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 프린스, 마돈나가 대중음악을 점령하고 있었고 MTV를 통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결코 스타가 될 수 없는 시대가 1986년이었다. 하지만 그 해에 사람들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뜻밖이었다. 디온 워윅이 부른 <친구가 있는 이유 That’s What Friends Are For>가 그 해에 연말 결산 1위에 오른 것이다. 글/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 사진/Getty Images,
틴 팬 앨리의 계승자
어느 시대에나 시대 역행적인 인기 음악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선호와 유행은 그만큼 들쭉날쭉하다. 하지만 <너에게 가까이>에서부터 <친구가 있는 이유>까지 ‘시대착오적’인 히트곡이 한 작곡가에게 나왔다면 그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 시간의 간격은 무려 23년이고(<너에게 가까이>는 원래 1963년에 작곡되었다) 대중음악에서 23년, 그러니까 한 세대의 시간은 영겁과도 같다. 그런데 그 시간을 가로지른 인물이 있다. 한 세대의 간극의 두고 히트곡을 지속적으로 만들었던 작곡가 버트 배커랙. 그는 그 시간을 한참 건너서 최근까지 여전히 곡을 쓰다가 지난 2월 8일 눈을 감았다. 향년 94세.
하지만 배커랙의 음악이 특별한 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대중적인 감각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음악은 재즈 연주자들에게 특별한 자극을 주었고 그것은 재즈와 대중음악 사이의 특별한 고리였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재즈와 대중음악의 연결 고리는 눈에 띄게 빈약해졌다. 대중음악의 주도권이 록과 포크, 소울로 넘어가면서 소위 싱어-송라이터의 시대가 도래했고 그 속에서 재즈 연주자들이 연주할 레퍼토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1920년대부터 재즈 연주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던 전문 작곡-작사가들의 ‘틴 팬 앨리’ 시대는 ‘50년대를 끝으로 막을 내리고 있었다. 아울러 재즈 역시 그들의 즉흥성을 극대화하면서 점점 더 전위예술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재즈는 여러 주변 음악 속에서 점점 고립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60년대 작곡가 버트 배커랙의 존재는 매우 특별했다. 그는 여전히 전문 작곡-작사가의 전통을 이어갔고(작사가 핼 데이비드는 배커랙의 대표적인 협력자였다) 동시에 그들의 노래를 가장 잘 소화하는 전문 가수의 시대를 이상향으로 삼았다(디온 워윅은 배커랙 노래의 최고 해석자였다). 로큰롤/ 팝 시대의 그는 보기 드물게도 영화 음악,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통해 히트곡을 만들어 냈고 그것은 틴 팬 앨리 시대의 계승이었다. 맨해튼 틴 팬 앨리에서 북쪽으로 20블록 떨어져 있던 브릴 빌딩(Brill Building)은 배커랙, 데이비드 외에도 제리 리버와 마이크 스톨러, 조니 머서, 클라우스 오거먼, 필 스펙터, 도널드 페이건과 월터 베커의 사무실이 운집해 있던 ’60-‘70년대 판 틴 팬 앨리였다.
2008년 다시 함께 카메라 앞에선 버트 배커랙과 디온 워익. 그녀는 얼마전 버트 배커랙의 타계 소식에 자기 친가족을 잃은것 같다며 애도를 표했다.
재즈와 대중음악의 연결 고리
배커랙의 이러한 음악적 취향은 우연이 아니었다. 1928년생이었던 그는 1940년대 생이 주축이었던 로큰롤 세대보다 비밥 세대에 가까웠으며 이미 10대의 나이에 그는 재즈 클럽을 몰래 드나들면서 카운트 베이시, 디지 길레스피, 찰리 파커의 음악을 들으며 그들의 음악으로부터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960년대 그의 히트곡이 연이어 등장할 때 그의 음악에 열광했던 것은 성인 취향의 감상자뿐만이 아니라 세련되고 섬세한 화성 전개를 눈 여겨 보았던 재즈 연주자들이었다. <아내와 연인 Wives & Lovers>,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은 사랑 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 <알피 Alfie>, <사랑의 시선 The Look of Love>,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거야 I’ll Never fall in Love Again>과 같은 1960년대 그의 곡들은 즉각 그랜트 그린, 스텐리 터런틴, 빌 에번스, 스탠 게츠, 웨스 몽고메리, 스리 사운즈의 레퍼토리가 되었다. 이 재즈 명인들의 공연이 록의 시대에도 여전히 클럽과 콘서트홀을 가득 메울 수 있었던 것은 배커랙의 레퍼토리, 그리고 그의 음악을 기꺼이 연주하려는 연주자들의 안목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협력이었고 훌륭한 음악적 성과를 낳았다.
배커랙의 음악은 지금도 재즈 연주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재즈의 눈길이 아직 다가가지 않은 다른 작곡가들의 존재를 살피게 하는 혜안을 갖게 해준다.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왜냐하면 재즈는 순수하고 실험적이어야 하지만 동시에 대중음악과 분리되어서는 존재할 수 없는 독특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재즈 음악인이 연주한 버트 배커랙 작품집
Stan Getz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 What the World Needs Now] Verve/1968 (Recorded 1966~68)
‘스탠 게츠, 배커랙과 데이비드를 연주하다’란 부제가 달린 이 앨범은 배커랙의 작품이 재즈 연주자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확인시킨 첫 앨범이다. 앨범 타이틀곡 외에도 <아내와 연인>, <사랑의 시선>, <집은 가정이 아니야 A House Is Not a Home> 등 배커랙의 히트곡이 게츠의 테너 솔로와 리처드 에번스가 편곡,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마치 테너 색소폰 협주곡처럼 펼쳐진다(단 <사랑의 시선>만은 클라우스 오거만의 편곡이다). 영화 <알피>의 사운드트랙을 녹음했음에도 배커랙의 주제가를 연주하지 않았던 소니 롤린스를 대신하듯 게츠는 여기서 주제곡 <알피>를 아름답게 연주했다.
Cal Tjader
[캘 제이더, 버트 배커랙에 도전하다 Cal Tjader Sounds Out Burt Bacharach]
Skye/1968 (Recorded 1968)
게츠의 앨범에 연이어 웨스트코스트 재즈의 대표적인 바이브라폰 주자가 발표한 앨범. 록의 시대였던 당시 버트 배커랙의 기이한 열풍을 확인해 주는 앨범이다.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 외에도 <난 작은 기도문을 외워요 I Say A Little Prayer>, <그냥 지나쳐 Walk on By>, <당신은 천국에 가지 못해 You’ll Never Get To Heaven> 등 배커랙이 인기곡이 실려 있다. 프로듀서를 맡은 게리 맥팔랜드 외에도 앨런 파우스트, 마이크 에이븐, 앤디류 리처드슨, 에디 라이스가 빅밴드 편곡을 맡았는데 다분히 1960년대 오케스트라의 느낌이 선명하다. 제이더의 바이브가 즉흥적인 면을 희생한 것 같은 아쉬움은 있으나 그 사운드는 ‘60년대 답게 사이키델릭하다.
McCoy Tyner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 What the World Needs Now] Impulse/1997 (Recorded 1996)
존 콜트레인 쿼텟에서, 그리고 그의 ‘70년대 앨범에서 강렬한 타건을 들려주며 아프리카를 동경했던 매코이 타이너가 버트 배커랙을 연주했다는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지겠지만(그래서인지 이 앨범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그러한 느낌은 분명히 편견의 결과다. 편견 없이 듣는다면 이 음악이 너무도 훌륭한 연주며 동시에 재즈로 연주한 배커랙 최고의 작품집이란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타이너는 강인한 터치와 그와 대조적인 릴리시즘을 적절히 구사하며(콜트레인의 발라드 앨범과 조니 하트만과의 협연 앨범을 다시 상기해 보라) 배커랙의 음악을 한 편의 콘서트홀 음악으로 바꾸어 놓았다. 빅밴드 지휘로만 익숙했던 존 클레이턴의 편곡과 오케스트라 지휘 역시 피아노 독주에 전혀 누가 되지 않는 일품이었다.
Rigmor Gustafsson & Jacky Terrasson Trio
[너에게 가까이 Close To You] ACT/2004 (Recorded 2004)
이 앨범에는 ‘디온 워윅을 찬양하며’란 부제가 달려 있는 만큼 열 네 곡의 수록곡 가운데 열 곡이 배커랙의 작품이다. 타이틀곡 외에도 <그냥 지나쳐>, <난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거야>, <알피>, <지금 세상이 필요한 것>, <내 이마에 떨어진 빗방울>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배커랙의 히트곡이 빼곡히 담겨 있다. 워윅의 목소리로 듣던 곡을 구스타프손의 목소리로 듣는 약간의 생경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시 재즈적인 즉흥성이 필요했는데 노래에서의 그 아쉬움을 채워주는 것은 역시 재키 테라송 트리오의 연주다. 특히 <난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거야>와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에서의 해석은 배커랙 작품과 재즈의 친화성을 잘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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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년 다시 함께 카메라 앞에선 버트 배커랙과 디온 워익. 그녀는 얼마전 버트 배커랙의 타계 소식에 자기 친가족을 잃은것 같다며 애도를 표했다..jpg (File Size: 798.2KB/Download: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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