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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재즈에 대한 열렬한 편애, 우디 앨런(Woody Allen)

색소포니스트 신현필이 전하는 재즈와 영화 이야기 <마이너리티 리포트>

 

마이너리티리포트 #12 - 취향을 넘어 재즈에 대한 열렬한 편애를 지닌 영화감독, 우디 앨런

 

이미 한 차례 우디 앨런의 영화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이 코너를 통해 한 적이 있지만, 사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개별 작품 하나씩 가져다 풀어도 괜찮을만큼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 더군다나 거의 모든 영화에 담긴 음악들이 다 재즈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 않나?

 

특히나 그는 최신의 재즈와는 아주 거리가 먼, 1920~30년대의 빅밴드, 스윙 시대의 음악들이 담겨진 작품들을 가져오거나 직접 작곡하곤 하는데, 단지 소재의 측면에서 이 음악들이 사용된 게 아니라 스토리와 캐릭터 자체를 직접 영화 담아낸 경우도 종종 엿보인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가 바로 그렇다. 너무나 확고해서 일관성을 넘어 지독할 정도의 고집스러움, 편애를 느끼게까지 만드는 재즈적 취향의 소유자! 현재 어떤 헐리웃 영화판의 감독도 이처럼 재즈에 고집스레 집착하는 감독은 없다.

 

 

1차 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는 1920년대의 번영기를 거쳐 30년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대공황으로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된다.  이에 플레처 핸더슨 오케스트라 (Fletcher Henderson Orchestra)와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등으로 대표되어오던 대편성의 스윙음악들은 경제성과 효율성의 이유로 소편성의 밴드들에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알고 있는 분들이 있을까?

에밋 레이(Emmet Ray)라는 기타리스트를...

 

비록 그는 매일 밤 술에 취해 공연에 늦기가 다반사이고 호색한에 쓰레기더미에서 총을 쏴 쥐를 맞추거나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등 괴팍한 성격과 취향을 갖고 있었지만 장고 라인하르츠(Django Reinhardt)를 제외하고는 자칭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이며, 그의 연주를 듣는 모든 이들 또한 이를 부정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음악성을 갖고 있었다. 다만 RCA 레이블에서 몇 장의 훌륭한 앨범을 남긴 것을 제외하고는 현재까지 그리 알려진 바가 없으며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연주를 그만두고 음악계에서 사라졌다. 이를 두고 당시 다운비트지의 재즈평론가였던 냇 핸토프(Nat Hentoff)는 재즈계의 큰 손실이라며 안타까워했고 우디 앨런 역시 그의 연주를 그리워했다.

 

그의 이름이 생소한 사람이라면 영화 <스윗 앤 로다운 (Sweet and Lowdown,1999)>을 한번 찾아 시청해보길 바란다. 왜냐하면 사실 에밋 레이는 우디 앨런 본인이 주연을 맡으며 자유롭게 외모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을 다큐형식으로 만든 1983년 영화 <젤리그 (Zelig)>처럼  모큐멘터리(Mockumentary)작품 속에서만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감독은 마치 본인의 평소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하기 위해서 영화 자체를 제작기획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많은 재즈 명곡들이 마구 흘러나오고 또 연주된다.

 

영화는 주인공인 에밋의 ‘Limehouse Blues’연주와 함께 시작된다. . 두 번째 연주곡은 ‘Sweet Georgia Brown‘ 이며 실제 무대에서 밴드가 연주하는 장면이 아닌 언더스코어 로서도 ‘Caravan’, ‘All of Me’, ‘Lulu’s Back in Town’, ‘Indiana (Back home Again In)’ 등 30곡이 넘는 재즈곡들이 이 영화에 삽입되어 있다. 특히 클라리넷 연주자로서, 또 지난 번에 이야기한 바 있듯 우디 허먼(Woody Herman)의 열렬한 추종자로서 클라리넷이 재즈연주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며, 시대적인 배경과도 일치하는 1930년대의 연주들이 그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런 경향은 그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적잖이 발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뮤지션인 장고 라인하르츠(Django Reinhardt)가,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 리스트 (Franz Liszt)의 ‘사랑의 꿈(Liebestraum) 3번곡’을 편곡한 연주는 물론이고 소프라노 색소폰을 처음으로 재즈에 도입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독특한 비브라토의 연주자 시드니 비셰이(Sidney Bechet), 현재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빅밴드 리더 빅스 바이더백 (Bix Beiderbecke)이나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연주 또한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재즈 팬들에게는 익숙한 곡들을 영화가 재생되는 95분 내내 감상할 수 있다.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감성, 음악적 기호를 영화로 풀어낸 우디 앨런의 작품들은 1987년작 <라디오 데이즈(Radio Days)> 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

 

 

1930~40년대 전형적인 미국의 중산층 유대인 가정을 묘사하고 있는 이 영화는 가족 각각이 갖고 있는 라디오에 대한 추억을 하나하나 풀어놓으며 시작된다. 각자의 에피소드는 감독 자신의 내레이션으로 퀴즈쇼, 드라마, 뉴스, 콘서트 생방송, 연예인들의 뒷 이야기등 다양한 라디오에 관련된 추억들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한데 엮여져 있다.

 

한편 <스윗 앤 로다운> 의 시대적인 배경이 주로 1930년대였다면 <라디오 데이즈>는 1930년대를 시작으로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4년까지의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공교롭게 1940년대부터 흑백TV가 대중화되면서 라디오시대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영화평론가 데이빗 덴비(David Denby)가 잡지 ‘The New Yorker’에 ‘그 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음악들이 오래된 나무나 벽돌집들의 모습들과 함께 씁쓸하고도 달콤한 향수를 자아내며 어울린다.

 

<라디오 데이즈>는 풍자와 함께 잊혀진 삶에 대한 기억이다’ 라고 쓴 것 처럼 영화 속에선 콜 포터(Cole Porter),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등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명 작곡가들의 주옥같은 곡이 마치 주크박스처럼 계속 흘러나온다. 보통의 전통적인 영화음악이 클래식 선율을 위주로 이루어져 발전되어 왔던 것에 대한 감독 스스로의 절충안인 것 같아 보이는 클래식의 재즈 편곡 연주는 <스윗 앤 로다운>의 ‘사랑의 꿈’ 이어 이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예를 들어 영화를 여는 첫 곡은 러시아의 작곡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orsakov)의 대표적인 곡 중 하나인 ‘왕벌의 비행’을 빅밴드 리더이자 트럼페터 해리 제임스(Harry Jaems)가 재즈로 편곡해서 연주해 1941년에 발표한 버전을 들을 수 있다.

 

 

이처럼 감독 우디 앨런은 각본가이자 배우, 재즈 연주자로서 어떤 감독도 쉽사리 명함을 내밀지 못할만큼 확고한 음악적 취향과 아이덴티티를 갖추고 있으며, 재즈 뮤지션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찍는 한편, 시대를 나타내는 배경으로 본인이 즐겨 연주하거나 듣는 음악을 즐겨 삽입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방식의 영화 만들기 작업은 현재까지도 직, 간접적으로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일관되게 이어져오고 있다. 어쩌면 예술이란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와 관심사를 그림, 문학, 음악 혹은 영상 등의 형식미를 갖고 있는 작품으로 치열하게, 또 한결같이 형상화해가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예나 지금이나 나이를 먹어감에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일관되게 걸어가는 그의 행보에 늘 경외심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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