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한 영화 감독의 빛나는 음악적 통찰력과 혜안.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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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리포트#6 영화 버드맨의 즉흥미학 담긴 타악연주
음악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가진 누군가가 음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에 음악을 개입시키려 하는 것을 보면 남다른 시선과 애정을 갖고 바라보게 된다. 실제로 (그의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의 색소폰 연주나,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의 사돈이기도 한 할리우드 배우 잭 블랙의 기타 연주에는 그들의 다른 활동보다 더 큰 관심이 생기기도 한다.
영화계에도 널리 잘 알려진 수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이터널 선샤인>, <무드 인디고> 등을 연출한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 감독은 인디밴드 드러머 출신으로 자신이 속한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며 영상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미엔 차젤레(Damian Chazelle) 감독은 자신의 고등학교 빅밴드 드러머 시절을 반영한 영화 <위플래쉬>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주목 받은 뒤, 최근 <라라랜드>에 뮤지컬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삽입해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호평도 받았다. 이 코너를 통해 소개된 바 있는, <미드나잇 인 파리>, <카페 소사이어티> 등을 만든 우디 앨런(Woody Allen) 감독도 당연히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클라리넷 연주자 우디 허먼의 이름을 따온 그는 1960년대부터 많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클라리넷 연주자로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호에서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에 번번이 실패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드디어 7전8기 첫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레버넌트(The Revenant, 2015)>의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와 그의 음악인생, 그리고 그가 드러머 안토니오 산체스(Antonio Sanchez)와 협업한 작품 <버드맨 (The Birdman, 2014)>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멕시코 출신의 이냐리투 감독은 두 번째 장편영화인 숀 펜 주연의 <21그램(21 grams, 2003)>으로 할리우드에 안착하기 전까지 다년간 본국에서 라디오 디제이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그는 음악을 선곡할 때 각 곡들의 음악적 관계를 서사적으로 연결시켜 인기를 끌었고, 이는 이후 그가 각본가로 성장하며 음악을 서사의 밑그림으로 사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첫 번째 장편 상업영화 <아모레스 페로스(Amore Perros: Love is a bitch, 2000)>를 촬영하기 전인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총 6개의 멕시코 영화에서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다.
그는 이 시절을 회상하며 “저는 필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제가 음악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I like to make films, but the only reason I do is because I’m a very bad musician)”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멕시코의 전설적인 각본가 길예르모 아리아가(Guillermo Arriaga)와 함께 인간관계, 파괴된 희망, 꿈과 이상을 모티브로 한 죽음에 관한 3부작 <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 <바벨>을 함께 제작하며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서 활약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 3부작을 배우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태프들을 자신과 같은 남미 출신으로 구성했고, 세 편의 영화는 아카데미를 비롯한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평론가들에게도 찬사를 받았다. 마치 남미의 대표적인 음악 장르인 탱고가 예술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갖춘 것처럼, 이 작품들은 무거운 주제의식이나 복잡한 편집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정서로 접근해 대중성 또한 놓치지 않았다.
죽음에 관한 3부작의 음악은 모두 아르헨티나의 기타리스트 구스타보 산타올라(Gustavo Santaolla)와 작업했다. 그는 이미 기타와 샤랑고(charango) 혹은 론로코(ronroco)라고 불리는 남미 스타일의 기타로 몇 장의 연주앨범을 발표하고 많은 이들에게 존경 받는 뮤지션이었다. 이처럼 이냐리투 감독이 현역 뮤지션을 자신의 영화에 음악감독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은 이후에도 계속되는데 이는 그가 음악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각본 작업을 해나가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저는 [아모레스 페로스]를 작업하며 롤링 스톤즈의 ‘Sticky Fingers’ 앨범의 사운드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길 원했습니다. 조금 더 실험적이고 지적인 접근을 했던 [21그램]을 작업할 때는 팻 메시니와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을 끼고 살았죠. [바벨]을 작업할 땐 오페라의 느낌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이미 할리우드에서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냐리투 감독에게 남미의 정서와 음악에 대한 애정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표면적으로, 혹은 이면적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최근 작품 중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작품 <버드맨>에서도 뚜렷이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실제 1989년부터 1대 ‘배트맨’으로 활약한 마이클 키튼(Michael Keaton)이 노쇠한 20여 년 전 슈퍼히어로 스타 역을 맡으며 극적 몰입도를 높인다. 영화 속 브로드웨이 연극을 다루는 액자 구조로 이뤄진 <버드맨>에서 가장 혁신적인 두 가지를 꼽는다면 아마도 영화 전체의 롱테이크 편집(실제로는 16테이크가 연결된 것)과 내재음악(카페 음악처럼 영화의 공간 내에서 소리의 근원을 찾을 수 있는 음악)이나 희극적 장치로 사용한 몇몇 음악(말러나 차이코프스키)를 제외하곤 전체 음악을 드럼셋 하나만 사용했다는 점이다. 특히 희극에서는 극의 흐름에서 박자감이 가장 중요한데 이냐리투는 과감하게도 영화 전체의 사운드를 드럼셋 하나만으로 그 박자감을 디자인했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마치 재즈클럽 공연을 준비하듯 안토니오 산체스가 이냐리투에게 질문을 던지며 드럼 소리를 튜닝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실제 영화에 두 차례 등장하는 드러머는 현재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재즈 드러머 중 한 명인 네이트 스미스(Nate Smith)가 연기했는데 이는 안토니오 산체스가 이미 정해진 팻 메시니 그룹(PMG)과의 투어 스케줄을 조정할 수 없어, 그의 친구인 네이트 스미스에게 연기를 부탁했고 그의 드러밍을 그대로 모방해 녹음한 것이다.
Antonio Sánchez Performs 'Birdman' Score at UCLA
안토니오 산체스는 처음에 버드맨의 음악을 맡아달라는 제안에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그는 이제껏 영화음악을 맡아본 적이 없었고 이런 음악 제작 방식의 자료를 찾아볼 만한 선례 또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각본을 받아본 그는 전통적 영화음악 제작 방식으로, 캐릭터마다 테마를 정해 그들이 등장할 때 자연스럽게 음악이 묻어나도록 리듬 패턴을 다양하게 만들어 제작팀에 보냈다. 하지만 이냐리투 감독은 그와 반대로 훨씬 더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연주가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진다고 생각했고, 그런 사운드를 구상했다. 심지어 그는 몇 년 동안 방치된 것 같은 드럼소리를 원해, 드럼 튜닝을 바꾸고 다양한 심벌소리를 사용해 그 색채감을 더하기도 했다.
<버드맨>은 직접적으로 재즈를 다룬 영화는 아니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도 즉흥성과 실험적인 재즈 요소가 가득한 작품으로, 세계적 흥행은 물론 2015년 제87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을 수상했고 여러 시상식에서 271번 후보로 올라 188개의 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마치 1950년대 간간히 다양한 톤을 위한 장치로만 사용하던 뮤트 트럼펫 사운드를 마일즈 데이비스가 본격적으로 사용하며 그 이후 뮤트 트럼펫 소리를 들을 때 가장 먼저 마일즈 데이비스를 떠올릴 수 밖에 없게 되었듯, 영화에서 드럼셋의 사용은 <버드맨>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밖에 없다. 재즈 드러머이었기에 가능했던 음악적 연출은 안토니오 산체스만이 완성할 수 있는 사운드로 귀결됐다.
이 블랙코미디 영화의 포스터를 바라보며 극장에 들어갈 때는 제목인 ‘버드맨’이 눈에 들어왔지만 극장에서 나올 땐 부제인 ‘예기치 못한 무지의 미덕(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만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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