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앨범 ⚡토마스 스트뢰넨 Thomas Strønen [Relations] ECM/2024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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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Strønen <Relations> ECM/2024
Thomas Strønen Drums, Percussion
Craig Taborn Piano
Chris Potter Soprano Saxophone, Tenor Saxophone
Sinikka Langeland Kantele, Voice
Jorge Rossy Piano
2. The Axiom Of Equality (with Craig Talborn)
3. Weaving Loom (with Chris Potter)
4. Koyasan (with Sinikka Langeland)
5. Beginners Guide To Simplicity (with Sinikka Langeland)
6. Nemesis (with Sinikka Langeland)
7. Nonduality (with Jorge Rossy)
8. Ephemeral (with Chris Potter)
9. Pentagonal Garden (with Craig Talborn)
11. Ishi (with Jorge Rossy)
12. KMJ (with Jorge Rossy)
음악가의 자유로운 발상과 상상력은 언제나 옳다
토마스 스트뢰넨(Thomas Strønen)의 이 새 앨범은 이전부터 그가 보여주어 온 창의성의 연장선에서, 또 한 번 신선한 결실을 맺은 작품이다. 이 앨범에는 오버 더빙(한 연주자가 먼저 녹음한 뒤, 다른 연주자가 그 위에 다시 연주해 녹음하는 방식)이 주요 작곡 기법으로 사용된 트랙들이 실려 있다. 마치 반주 음원을 틀어 놓고 그 위에 연습하듯 연주하는 방식이지만, 이를 예술적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하면, 연주자는 모든 감각을 열어두고 가장 ‘음악적인’ 순간을 직관으로 포착해야 하는 흥미로운 지점에 다다른다. 그와 동시에, 물리적으로 단절된 공간에서 혼자 벽보고 말하기를 하듯 고립감에 빠지기 쉬운 양면성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앨범 속 음악들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듯이, 그 음악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예술적 실험이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2018년부터 약 4년에 걸쳐 녹음, 완성된 이 앨범은, 먼저 스트뢰넨이 녹음한 드럼과 타악기 트랙에서 출발한다. 원래 예정되었던 앨범 녹음 스케줄이 예상보다 일찍 마무리되자,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Manfred Eicher)가 제안한 솔로 타악기 녹음이 시작된 것인데, 당시에는 순수 드럼과 타악기 앨범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트뢰넨은 이 녹음물을 여러 음악가들에게 전해주어 각각의 해석을 덧입히길 바랬고, 이전에 함께 작업한 적 없는 연주자들—크렉 테이번, 조르제 로시, 크리스 포터, 시니카 랑에란— 을 초대했다고 한다. 그렇게 가상의 시간과 공간에서 ‘드럼 트랙’이 ‘선율과 화성을 포함한 음악’으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은, 스트뢰넨이 말한 “개개인의 목소리가 더해져 모든 것이 완성되는 순간”이었으며, 스칸디나비아 민속부터 뉴욕 재즈의 즉흥성까지 서로 다른 음악적 언어들이 하나의 유기적 흐름을 찾게 된 셈이다.
첫 트랙은 스트뢰넨의 솔로 드러밍으로 시작되며, 제목 Confronting Silence 는 일본 현대음악 작곡가 토루 타케미수의 글에서 인용했다고 한다. 공과 정주의 소리를 연상시키는 긴 심벌의 쇠소리들과 잔향은, 듣는 이를 흡입하듯 그 자체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눈길을 끄는 지점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두 피아니스트의 대조다. 크렉 테이번은 사전 정보 없이 스트뢰넨의 퍼커션에 즉흥적으로 반응하여, 음 하나하나가 실험적 파동을 일으키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반면 초기 멜다우 트리오의 드러머에서 지금은 바이브라폰과 피아노를 두루 연주하는 조르제 로시는, 넓고 잔잔한 풍경 속에서 피아노를 울리며 앨범 전체에 깊고 유려한 호흡을 부여한다.
이어 북유럽 민속음악에 뿌리를 둔 시니카 랑에란은 Nemesis 에서 드럼 그루브를 매개로 마치 캐치볼을 주고받는 듯한 생동감을 만들어낸다. 북유럽 전설의 풍부한 서사를 연상시키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전개가 인상적이다. 테너 색소포니스트 크리스 포터가 스트뢰넨의 드럼과 충돌하듯 만나며 빚어내는 순간은 후기 콜트레인을 연상시킬 만큼 격정적이다. 드럼의 베이식 트랙은 루가노의 Auditorio Stelio Molo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는데, 스트뢰넨의 섬세한 브러시 톤부터 풍부한 공(gong)의 울림까지 투명하게 포착한 점이 눈에 띈다. 연주자들은 불필요한 소리를 배제하고, 기본만 남긴채 진솔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결과적으로는 ‘오버 더빙’을 통한 공동작업과 섬세한 사운드 엔지니어링이 결합해, 하나의 ‘음악적 지도’를 제시한다. ‘즉흥’을 매개로 펼쳐지는 다채로운 장르와 전통, 그리고 녹음 공간의 특수성이 겹겹이 쌓여 독특한 서사를 형성한 셈. 이를 통해 스트뢰넨은 다양한 음악 세계가 충돌하고 교감하며 새롭게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글/재즈 기타리스트 정수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