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Tribute - 가공할 멀티 테크닉으로 빈티지 소울 재즈의 진수 펼쳐냈던 거인 -조이 디프란체스코(Joey Defrancesco)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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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 오르간 주자/색소포니스트, 트럼페터
가공할 멀티 테크닉으로
빈티지 소울 재즈의 진수 펼쳐냈던 거인
조이 디프란체스코(Joey Defrancesco) 1971.4 ~ 2022.8
글/MMJAZZ 편집장 김희준 사진/Mack Avenue, Michael Woodall
처음 그의 부고소식이 전해졌을 때 너무 황당했고 좀체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다 최근 맥 에비뉴 레이블로 이적한 이후 변함없이 신작을 발표하며, 90년대 못지않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 보이고 있는 중이었기에, 그의 사망 소식은 사고사가 아닌 다음에야 가짜뉴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나름의 판단까지 했었는데, 그와 함께 해왔던 사이드 맨들과 동료들, 특히 크리스찬 맥브라이드 같은 이들의 추모 코멘트를 보고나서는 더 이상 의심을 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죠. 결국 NPR이나 뉴욕타임즈, 다운비트와 같은 공신력 있는 매체등을 통해 그의 사망에 관한 공식적인 기사가 뜨면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실로 판명이 나버렸습니다. 1971년생으로 이제 만 51세의 나이밖에 되지 않는 압도적인 기량의 B-3 해먼드 오르간 연주자이자, 색소폰과 트럼펫도 무척이나 잘 다루는 멀티 플레이어! 팔방미인 조이 디프란체스코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매니저 역할을 병행해주었던 그의 부인을 통해 전달된 바로 그의 사인은 수면 중 심장마비라고 하는데, 평소 다른 지병에 관한 언급은 없었지만, 아마도 지나친 비만으로 인한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점이 그에게도 있지 않았을까 나름 짐작해봅니다. (처음 사망소식이 전해진 8월 말경에는 정확한 사망요인이 언급되지 않았는데 이후 며칠 지나서 심장마비라고 몇몇 매체를 통해 기사가 전해졌습니다)
아무리 가는데 순서가 없다지만 이런 소식에 연관되기에 그는 아직 많이 젊고 한창 전성기를 유지할 나이대라는 점에서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특히나 미 본토에서도 걸출한 해먼드 오르간 주자가 생각보다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에서 그와 같은 최상위권 기술자의 부재는 아주 큰 손실일 수 밖에 없죠. 90년대 재즈 신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크게 받았던 일군의 당시 젊은 재목들, 조슈아 레드맨과 크리스찬 맥브라이드, 브래드 멜다우, 로이 하그로브 같은 연주자들과 함께 일찌감치 스타덤에 올랐던 그는, 비슷한 시대에 등장했던 해먼드 오르간 주자들, 래리 골딩스나 존 매데스키, 샘 야헬 같은 이들보다 훨씬 더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고 인기도 월등히 높았는데 가장 큰 요인으로 볼 수 있는 게 바로 타 오르간 주자들과도 비교가 안될 정도의 어마어마한 테크닉 때문이었습니다. 동료, 선후배들을 막론하고 그가 오르간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어안이 벙벙해지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가공할 속주는 뛰어났고 무대 위 함께 협연하는 연주자들마저 일순 관객으로 만들어 버릴만큼 임팩트가 컸죠. 아무리 그의 아버지가 오르간 주자였고 그로 인해 새파랗게 어린 유년시절부터 이 악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었다지만, 이 정도로 기술이 뛰어난 건 뭐니 뭐니 해도 그의 재능이 남다른 탓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을 겁니다.
B-3 해먼드 오르간의 진정한 마스터
그가 생전 주종으로 다루었던 B-3 해먼드 오르간이라는 악기의 주요한 특성은 일차적으로 독특한 비브라토로 표현되는 고유한 소리에 있지만, 기존 멜로디와 화음을 소화해내는 것에 더해서 악기 자체에 내장된 풍성한 배음장치들을 다양하게 연출해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왼손을 활용한 베이스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결코 빼놓을 수 없을 텐데, 바로 이 점 때문에 해먼드 오르간 주자의 작품에선 대부분 베이스 연주자가 빠져 있곤 합니다. 그 말은 건반으로 주선율을 연주하면서 동시에 왼쪽으로 베이스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그루브도 엮어낼 수 있어야 하는, 이른바 멀티 테크닉이 갖춰져 있어야 하는 악기가 바로 이 B-3 해먼드 오르간이라는 거죠. 그 점에서 필자 개인적으로 그간 봐온 여러 레전드급 해먼드 오르간 주자들 가운데 과거와 현재, 장르를 모두 막론하고 기술적으로 단연코 원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뮤지션이 바로 조이 디프란체스코입니다.
일단 화려한 오르간 속주는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특히 같은 오르간 주자들도 놀라게 만드는 것이 바로 왼손 베이스 페달을 활용한 연주인데, 연주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시면 그냥 말이 안되는, 완전히 서커스 수준입니다. 일반적인 베이스 워킹 패턴은 기본이고 다양한 싱코페이션에 기반한 그루브를 왼손을 통해 연속적으로 만들어내는데, 별도의 베이스 연주자가 그 라인을 연주한다고 해도 결코 쉬울 거 같지 않은 표현을 거침없이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연주하면서 오른손으로는 종횡무진 솔로라인을 만들어내고, 때론 트럼펫과 색소폰을 함께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런 퍼포먼스를 보고 있으면 일반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넘사벽 기예’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기술을 기반으로 블루스, 재즈, 소울, 펑크(Funk)를 다이내믹하게 자유자재로 엮어내죠. (때론 미드, 슬로우 템포의 빈티지한 블루스에서도 너무 지나치게 속주를 시도해서 듣기에 어색할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선배 레전드들인 지미 스미스나 잭 맥더프, 베이비페이스 월렛 같은 이들의 음악적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의 음악과 연주는 앞서 언급한 모던 해먼드 오르간 주자들, 존 메데스키나 래리 골딩스같은 이들보다 확실히 현대적인 맛은 좀 떨어집니다만, 상대적으로 베이스 페달의 활용도가 미미하거나 심지어 아예 없다시피한 존 메데스키의 연주를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오르간 자체만 두고 볼 때 허전하고 밋밋한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죠. 게다가 그루브감은 그냥 넘사벽 수준입니다. 그 점에서 조이 디프란체스코는 이 해먼드 오르간이라는 악기가 가진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모든 특성을 최고 수준으로 구현해낼 수 있었던 '끝판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악기에 관한 타고난 천부적 재능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오르간을 배운 조기교육(그의 아버지가 50년대 명망있던 오르간 주자 존 프란체스코였으며 조이는 이 악기를 불과 4살 때부터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적성과 노력이 모두 맞아 떨어진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의 커리어행적과 파급효과
그가 프로페셔널 뮤지션들과 함께 무대에 서기 시작한 것은 10대 중반부터였는데 이미 학생시절부터 주변에 소문이 자자했던 그는 바비 맥퍼린,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클락 테리 같은 스타들과 함께 연주하고 또 마일스 데이비스의 말년 투어에도 참여하면서 오르간 신동으로 단숨에 입소문을 탔죠. 그 여파로 자신의 첫 앨범 <All fo Me>를 1989년, 그러니까 그가 만 17살의 나이 때 메이저인 콜럼비아를 통해서 발표하는 행운도 얻게 되는데, 첫 앨범에서부터 휴스턴 퍼슨, 버디 윌리암스같은 베테랑 선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경험치도 쌓아나가게 됩니다. 이후 콜럼비아에서 5장의 정규 앨범을 만든 뒤 콩코드와 하이노트를 통해 거의 1~2년에 한장 꼴로 리더 작을 발표하는데 각 앨범마다 쟁쟁한 재즈 뮤지션들, 지미 스미스, 팻 마티노, 존 맥러플린, 존 스코필드, 제임스 무디, 스티브 갯, 엘빈 존스, 조지 벤슨, 지미 콥등 재즈 역사에 이름을 남길 여러 레전드들과 협연을 가지면서 그의 커리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줬습니다. 특히 최근 그가 선보인 두 장의 리더작은 이전과 비교해 상당히 변화된 면을 보여준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2019년 발매작인 <In the Key of the Universe> 에서 테너 색소포니스트 파로아 샌더스와 함께 프리와 포스트 밥의 영역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했으며 마지막 유작인 <More Music>에선 오르간 외에 그간 여러 경로로 선보였던 출중한 색소폰과 트럼펫 기량을 정식으로 선보임으로서 여느 프로 관악기 연주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죠. 활발하면서도 뭔가 새로운 걸 찾고 또 시도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그의 이른 타계소식은 너무나 큰 상실감을 자아냅니다.
자료를 찾고 정리하면서 알게 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조이 디프란체스코가 데뷔하던 당시 재즈 신에서는 더 이상 예전 같은 오르간 주자들이 등장하지 않고 있었고, 대부분 세션주자로 명맥을 이어가는 정도였습니다. 이유인 즉, 당시 새롭게 개발된 키보드인 신디사이저로 인해 입지가 대폭 줄어들어 해먼드 오르간 회사에서도 더 이상 이 덩치만 크고 무거워 가지고 다니기 힘든 악기를 1975년 이후 새롭게 생산하지 않고 있었다고 해요. 심지어 해먼드 오르간 회사는 1986년도에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조이 디프란체스코는 이런 시대에 등장해서 한물 갔다고 인식되던 오르간으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끌고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후 새롭게 해먼드 오르간에 대한 인식이 올라가면서, 그 시기를 전후해 오르간 연주자들이 수면위로 등장한 것은 조이 디프란체스코의 파급력이 불러온 나비효과라고 말해도 좋을 겁니다. 그리고 문을 닫았던 해먼드 오르간 회사도 일본 스츠키에서 인수한 이후 이 악기를 다시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생전 그는 B3 오르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난 거의 모든 종류의 건반악기들을 좋아한다. 신디사이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신디사이저는 결코 B-3 오르간 사운드를 넘어서지 못한다. 이 악기의 고유한 톤, 둥글고 따뜻한 톤은 무척 감성적인 여운이 있으며 이런 느낌은 다른 건반에서는 거의 받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에 당신의 손놀림 여하에 따라 베이스까지 충분히 커버하는 폭넓은 사운드를 연출할 수 있다. 이런 악기는 B-3 해먼드 말고는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젠 첨단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미디장비를 사용해 여러 가지 종류의 입체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고 또 오르간도 유사한 톤을 흉내낼 수 있겠지만, 실제 B-3 오르간 악기에서 나오는 그 질감과 톤, 손맛과 페달 소리는 여전히 대체 불가능합니다. 전자장비이지만 무척 아날로그한 성격을 지닌 이 악기는 앞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우리 곁에 계속 남아 고유한 사운드를 들려주리라 봅니다. 바로 지금 시대의 B-3 오르간 전도사격인 조이 디프란체스코는 다른 레전드 선배들처럼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우리에게 계속 들려주려고 했던 것이죠. 비록 우리 곁에 더 이상 없지만 이런 오르간 악기의 진정한 맛을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우리에게 들려줬다는 점에서, 다른 선배들과 마찬가지의 예우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나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