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Tribute - 블루 아이드 소울 색소폰의 최정점 - 데이빗 샌본(David Sanborn)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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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샌본(David Sanborn) 1945. 7~ 2024. 5
블루 아이드 소울 색소폰의 최정점
글/MMJAZZ 편집장 김희준
백인이면서 흑인적인 필과 그루브를 담은 R&B 음악을 무척 훌륭히 소화해냈으며 평생 그 영역을 일관되게 지향했던 알토 색소포니스트 데이빗 샌본이 지난 5월 12일(미국시각)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8세이며 사인은 전립선암으로 인한 합병증이라고 하네요.
80~90년대 팝 퓨전, 스무드 재즈 계열 음악이 국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을 때(라디오 프로그램 시그널및 광고 BGM으로 빈번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저작권 해결과는 무관하게 무단으로 쓴 거였지만 말이죠) 당시 색소포니스트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대중적인 지명도를 얻었던 연주자였죠. 케니 G가 팝 인스트루멘틀 연주자로 어마어마한 대박을 치기 전까지 데이빗 샌본만큼 인기를 얻었던 색소포니스트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케니 G가 데뷔 초기 잠시 들려주던 R&B, 퓨전을 일찌감치 저버리고 지나치게 상업성을 강조한 경음악으로 전향한 것과 달리 데이빗 샌본은 평생 동안 자신의 음악적 본령을 건실하게 고수했습니다. 그의 음악적 뿌리는 레이 찰스나 스티비 원더, 오티스 레딩 같은 소울, 그리고 앨버트 킹, 비비 킹 같은 블루스 음악에 커다란 지분이 있었으며, 여기에 기반을 둔 가운데 자신의 음악을 다양한 영역으로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전통적인 재즈에 대한 이해도 잘 갖춰져 있었고 충분히 그런 연주도 소화해낼 실력이 있었지만 그의 지향점은 R&B, 소울, 블루스에 놓여있었죠. 여타 재즈 알토 색소포니스트들과는 톤의 질감, 사운드가 많이 다르며 어떨 땐 테너처럼 들릴만큼 두껍고 거칠게 들리기도 한데, 소위 말하는 댐핑이 상당히 강해서 다른 색소폰 연주자들과 구분이 쉽게 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 색소폰 마우스피스를 옆으로 살짝 빼서 부는 포즈와 어우러져 그의 고유한 개성을 형성하죠. (마우스피스의 재질또한 여느 재즈 색소포니스트들과 달리 메탈 소재의 모델을 자주 사용하곤 했습니다) 이런 그의 사운드는 레이 찰스 밴드에서 알토를 불었던 행크 크로포드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이며 그 스스로도 행크 크로포드(Hank Crawford)에게서 받은 유산을 스스럼없이 존경을 담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70년대 중반 브레커 브라더스와 함께한 데이빗 샌본(왼쪽) 머리숱 풍성하던 젊은 시절의 마이클 브레커 모습이 이채롭다
또 한 가지 그를 두고 이야기할 때 방대한 세션 커리어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70년대 중반부터 80~90년대 중반까지 그의 연주가 포함되지 않은 팝, 록, 퓨전 음반을 찾기가 어려울만큼 어마어마한 세션 경력을 자랑합니다. 제임스 브라운, 스티비 원더, 마이클 프랭스, 알 재로, 데이빗 보위, 로저 워터스, 폴 사이먼, 빌리 조엘, 브루스 스프링스틴, 이글스, 엘튼 존, 맨해튼 트랜스퍼, 제임스 테일러등 대략적인 리스트만 봐도 그가 세션 연주자로 얼마나 쟁쟁한 뮤지션들과 함께 바쁘고 폭넓게 활동했는지 알 수 있죠. 테너의 마이클 브레커, 탐 스캇과 함께 당시 리드악기 세션은 거의 독식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바쁜 세션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데이빗 샌본은 자기 리더작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첫 데뷔작인 <Take Off>를 1975년에 발표한 이후 96년 <Songs from the Night Before>거의 1~2년에 한 장 꼴로 새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이중 여섯 장의 앨범이 골드 레코드, 밥 제임스와 함께한 <Double Vision>은 플래티넘 레코드를 기록할만큼 대중적인 호응이 높았죠. 인스트루멘틀 음반이 100만장을 넘기는 경우는 음반시장이 호황이었고 팝 퓨전이 득세하던 그 당시에도 아주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 케니 G가 천만장을 넘는 메가히트를 기록하긴 합니다만, 이미 평범한 팝 인스트루멘틀로 노선을 갈아탄 이후에 달성한 결과였습니다.
좌측부터) 마커스 밀러, 데이빗 샌본, 하이럼 블록 80년대 초반
이렇듯 데이빗 샌본은 인기와 지명도, 대중적인 성공까지 거머쥔 보기 드문 재즈/소울 계열 리드 악기 주자였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그의 연주를 두고 지나치게 대중적이며 재즈와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는데 이를 의식해서인지 1991년도 발매되었던 <Another Hand>처럼 상당히 도전적인 이색작, 혹은 전통적인 소울, 펑크(Funk) 재즈의 완성도 높은 접근이 인상적이었던 <Upfront>, <Hearsay>같은 탁월한 작품들도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90년대 이후 그가 만들어낸 리더작들은 80년대보다 좀 더 진중하며 무게감이 충만했으며 솔로연주의 비중도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동시에 팝 성향의 심플한 곡들은 많이 줄어들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연주가 대중적인 것은 맞지만 그게 샌본의 음악을 평가 절하할 이유는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팝 센스가 아주 뛰어났으면서 동시에 흑인음악 전반을 훌륭히 소화해낼 수 있는 기량을 온전히 체득하고 있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뮤지션이었습니다. 그리고 즉흥연주도 거침없이 구사할 수 있었죠. 그게 재즈의 언어이건, 흑인음악의 접근으로 진행되건 상관없이 그는 자유자재로 소화해낼 역량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지금 시대에 돌이켜보면 이렇게 대중적인 감각도 갖추고 있으면서 재즈와 흑인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양자의 간격을 넘나들며 소화해낼 수 있는 동세대 관악 연주자가 과연 누가 있을까요? 심지어 관악기가 아닌 다른 악기영역까지 확장시켜 봐도 이런 다재다능한 연주자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습니다.
2022년 마지막 투어를 가졌을 때의 모습. 좌측부터 데이빗 샌본, 밥 제임스, 마커스 밀러
행크 크로포드, 데이빗 팻헤드 뉴먼,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메시오 파커와 같이 재즈와 R&B, 팝을 넘나드는 색소폰 주자들, 마이클 브레커도 마찬가지인데 이렇게 전천후 음악성을 지니며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는 연주자들의 수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건 재즈 신에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이런 뮤지션들이 있기 때문에 초심자들이 조금씩 재즈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죠. (어줍잖은 분위기만 흉내 내는 유튜브의 수많은 재즈채널들이 만들어내는 싸구려 연주 음악들은 수만개가 있어봐야 재즈 시장이 제대로 성장하는데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합니다)
밥 제임스와 함께한 로맨틱한 팝, R&B 발라드 앨범 <Double Vision>에서 그 특유의 펑키한 그루브가 빛을 발했던 대표작 <As We Speak>,<Straight to the Heart>, <A Change of Heart>, 거기에 <Upfront>, <Another Hand>, <Inside>처럼 진중한 무게감까지 겸비한 아티스트 지향적인 작품까지 만들어낼 전천후적인 예술성을 지닌 뮤지션이 지금 시대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움을 넘어 지금의 재즈 신이 갖는 기형적인 문제점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재즈가 갖는 창조적이며 도전적인 시도들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음악이 가져야 할 본연의 재미, 즐거움이 너무 희석되어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은 아닐까요? 세상을 떠나신 데이빗 샌본을 포함해 어느새 다들 만만찮은 고령이 되신 밥 제임스, 데이브 그루신, 리 릿나우어, 래리 칼튼, 마커스 밀러, 스파이로 자이라 같은 이 방면의 대표적 거물들이 그 당시의 영광이 무색할 정도로 현재 위상이 낮아진 것에 대해서 우리는 한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그들의 뒤를 이어나갈 양질의 팝 퓨전, 소울 펑크 계열 연주자들이 지금 시대에 맞는 스타일과 감성을 담은 형태로 반드시 새로 등장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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