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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k

데이빗 샌본(David Sanborn) 추모칼럼 - 그를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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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bute Special

 

데이비드 샌본(David Sanborn) 1945.7 ~ 2024.5

 

그를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변명  추도문을 대신해서 

 

지난 512일 데이비드 샌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나와 같은 1960년대생 재즈 팬들에게는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어느덧 청춘은 저 멀리 사라지고 인생은 중년을 넘어 노년을 향하고 있으니 40년 전에 만났던 음악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그럭저럭 받아 들일만 한 것임에도 부음이라는 것은 늘 당혹스럽고 허망하기 그지없다. 그래서일까, 이 글은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아 데이비드 샌본을 기억하고 싶다.  /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     


 

내가 데이비드 샌본의 음반을 처음 들은 것은 1985년이었다. 그때 나는 이미 아트 블레이키 재즈 메신저스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50년대 앨범을 듣고 그 시절의 재즈에 목이 타는 갈증을 느끼고 있던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음악은 당시 국내에서는 윈턴 마살리스를 통해 너무 현대적이고 복잡한 방식으로 들을 수 있을 뿐, 거의 만날 수가 없었다. 무단 복제로 제작되던 소위 빽판으로도 내가 듣고 싶었던 스트레이트 어헤드 재즈(그때는 정통 재즈라고 흔히 불렀다)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이 당시 국내 음악 감상의 현실이었다.

그날도 원하는 재즈 음반을 구하지 못 한 채 레코드 가게에서 나서려는 참이었다. 그때 주인아저씨가 권했던 앨범이 데이비드 샌본의 [곧장 심장으로 Straight To The Heart]였다. 당시로서는 구경하기 힘들었던 수입반(그 당시 보통 원판이라고 불렀다)이었다. 앨범 커버에서 와이셔츠 단추를 풀고 가슴을 드러낸 채 카메라를 바라보며 섹시하게 웃고 있는 샌본의 모습은 당시 정통 재즈에 목말라하던 엄숙주의 재즈 키드에게 그다지 믿음을 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내게 좋은 음반을 많이 권해주던 주인 아저씨는 이 앨범에 담긴 10분이 넘는 연주곡 <Smile>이 죽인다며 나를 계속 유혹했다. 미군부대 PX에서 은밀히 빠져 나온 밀수판이었던 수입반은 보통 라이센스 음반이라고 불렸던 국내 제작 음반이 3~4천원 하던 시절에 15천원이 넘는 고가품이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뭔가에 홀렸는지 그 음반을 사서 들고 집에 오고 말았다. <Smile>은 그럭저럭 들을만 했지만, 내 용돈을 거덜내면서 내 방 음반 선반에 한켠을 차지한 데이비드 샌본의 앨범은 R&B적인 비트와 전자 사운드를 뿜어내며 내게 그다지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2 그의 80년대 대표작중 하나이자 팝 퓨전 장르를 떠나 훌륭한 완성도를 지닌 라이브 앨범.jpg

 그의 80년대 대표작중 하나이자 팝 퓨전 장르를 떠나 훌륭한 완성도를 지닌 라이브 앨범

 

퓨전 색소포니스트라는 딱지

하지만 당시는 샌본의 시대였다. 얼마 후 샌본이 키보디스트 밥 제임스와 함께 녹음한 1986년 작 [더블 비전 Double Vision]과 이듬해 샌본의 작품 [마음의 변화 A Change of Heart]가 연이어 국내 제작 음반으로 발매되었으니 그 무렵 샌본은 국내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색소폰 스타였다. 그것은 국내만의 특별한 상황이 아니었다. [Double Vision][A Change of Heart]는 미국에서도 플래티넘과 골드 레코드에 올랐으니 이때는 확실히 샌본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당시 나는 그의 음반에 무관심한 기이한 재즈 팬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3, 4년 후(1989년 혹은 ’90년이었을 것이다) 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물론 놀랍다는 것은 순전히 나의 기준이었다). 한낮에 집에 홀로 있으면서 TV를 보다가 데이비드 샌본이 사회를 보며 직접 연주를 들려주는 프로그램 <나이트 뮤직 Night Music>을 우연히 AFKN을 통해 본 것이었다. 그런데 무심히 TV를 보고 있던 내게 전설과도 같았던 소니 롤린스가 화면에 등장한 것이 아닌가! 난 레코드가 아니라 실제 연주하는 그의 모습을 그날 TV를 통해 처음 보았고 더 놀라운 것은 롤린스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퓨전색소포니스트 데이비드 샌본과 함께 연주를 한다는 점이었다. 이럴 수가! 롤린스의 모습을 직접 보고 있다는 경이로움은 모든 것을 덮을 수 있었지만 1950년대 앨범 [색소폰 콜로서스 Saxophone Colossus]을 통해 순수의 시대를 내게 전해준 그가 샌본과 함께 연주한다는 사실은 당시 어리숙했던 내게 혼란스러운, 불편한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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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부터 1990년까지 2년간 진행되었던 TV 라이브 쇼 나이트 뮤직에서 함께 연주하는 알토이스트 필 우즈와 데이빗 샌본. 데이빗 샌본과 마커스 밀러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재즈에서 팝, 록,  R&B 등 아주 다양한 실력파 뮤지션들을 섭외해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스타일만을 바라보는 공허한 평론

내가 데이비드 샌본에 대해서 가졌던 매우 주관적인 편견에서 벗어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 ’90년대 초부터였다. 당시부터 CD는 정식으로 수입되기 시작했고 CD를 통해 재발매된 재즈의 고전들을 지갑이 허락하는 만큼 마음껏 듣게 되었을 때였다. 길 에번스의 1974년 작인 [길 에번스 오케스트라, 지미 헨드릭스를 연주하다 The Gil Evans Orchestra Plays the Music of Jimi Hendrix]를 들으며 라이너 노트를 꼼꼼히 살펴보기 전까지 난 에번스 빅밴드에서 데이비드 샌본의 이름을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도 지미 헨드릭스의 대표곡 중 하나인 <리틀 윙 Little Wing>에서 아우성 같은 빅밴드의 총주가 원곡의 보컬 멜로디를 대신 한 뒤 곧이어 절규하는 알토 색소폰 솔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데이비드 샌본이었다. 그의 솔로는 지미의 기타처럼 포효하고 있었다(그런데 아쉽게도 이 오리지널 테이크는 현재 유튜브에서 찾을 수가 없다. 대신 올라와 있는 것은 후에 음반에 추가된 마빈 피터슨의 트럼펫 솔로 버전이다). 그는 나의 피상적인 편견 속에 있던 스무드 재즈 연주자가 아니었다.

길 에번스 오케스트라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곡 더 언급하자면 길 에번스가 1975년에 녹음한 <킹포터 스톰프 King Porter Stomp>. 젤리 롤 모턴의 곡으로 플레처 헨더슨, 베니 굿맨을 거치면서 재즈의 진화를 대변한 이 곡을 에번스는 이미 ’58년에 녹음한 바가 있는데, 그가 의도한 바는 찰리 파커가 한 단계 더 발전시킨 <King Porter Stomp>였고 이미 세상을 떠난 버드를 대신해서 그 역을 맡은 것은 캐넌볼 애덜리였다. 그리고 18년 뒤에 에번스는 다시 같은 곡을 새로운 편곡으로 녹음하면서 그 주연을 데이비드 샌본에게 맡겼다. 그의 의도는 분명하게 들린다. 버드가 1970년대 살아 있다면 어떤 연주를 들려줄 것인가? 샌본은 숨이 멎는 것 같은 스톱타임 솔로로 버드의 비밥 프레이즈를, 자신의 R&B 풍의 알토 사운드와 섞어서 멋지게 <King Porter Stomp>를 소화했다.

 

4 작,편곡가 길 에번스가 자신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1976년도에 발매한 [There Comes a Time]. 데이빗 샌본이 오케스트라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jpg

 

데이비드 샌본의 진가는 단지 사이드맨 녹음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2000년대 초가 되어서, 필자가 레코드 가게를 하면서 중고 CD로 들어온 그의 음반들을 모니터하면서야 안 사실이지만, 샌본은 1976년 작 [마음에서 마음으로 Heart To Heart]에서 길 에번스 오케스트라를 초대해 함께 녹음했으며 그에 앞선 ’75년 작 [이륙 Taking Off]에는 이 앨범의 편곡을 맡은 데이비드 매슈스(David Matthews)의 작품 세 곡을- 실질적으로 이 세 곡은 알토 색소폰을 위한 3악장의 재즈 협주곡이다 연이어 담음으로써 비상하는 그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므로 ’80년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데이비드 샌본의 모습은 그의 음악 전체가 결코 아니었다. 그는 20대 초에 몸담았던 폴 버터필드 블루스 밴드에서부터 스티비 원더, B. B. , 데이비드 보위, 에릭 클랩턴 등 수많은 종류의 음악에 참여했던 레코딩 세션맨이었으니 다채로움은 소수의 연주자에게만 부여된 그의 음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발매 음반으로 1990년에 되어서야 비로소 들을 수 있었던 로저 워터스의 [히치하이킹에 대한 찬반양론 The Pros & Cons of Hitch Hiking]에서도 나는 뜻밖에도 데이비드 샌본의 이름을 발견했으며 고등학교 때 들었던 이글스의 <새드 카페 Sad Cafe>에서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색소폰 솔로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처음 들었던 샌본의 연주였다. 마찬가지로 ’80년대를 지나 ’90년대로 접어들자 그는 1991년 작 [또 다른 손 Another Hand]를 통해 찰리 헤이든, 빌 프리셀, 마크 리보, 테리 애덤스, 그레그 코언 등과 새로운 음악을 탐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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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본의 음악이 말하고 있는 것

물론 이러한 그의 다양한 측면들은 온전히 평가받기가 어렵다. 사람들은 대상을 범주화하고 간단하게 평가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 인식의 속성이 그런 만큼 그러한 점을 평론은 가장 경계해야 한다. 그러므로 평론이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한 사람의 음악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살피고 동시에 그 음악의 장르 또는 스타일을 인정하는 것이다.

20세기 전반기에 재즈는 기존의 음악 평론계로부터 수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들에게 재즈는 열등한 흑인들의 음악이었고 사람들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퇴폐음악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이 정작 재즈를 즐기고 있는 재즈 팬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나 설득력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편견에 사로잡힌 전위주의자, 블루노트 레코드 마니아, ECM 팬들이 데이비드 샌본에게 가하는 비판은 대학교 시절 필자가 샌본에게 느끼는 얄팍한 편견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공산이 매우 크다.

샌본에 대한 평가가 정당한 평론이 되기 위해서 그것이 퓨전이든, 스무드 재즈이든, 샌본이 추구한 스타일을 인정하고 그러한 음악의 범주 안에서 과연 그 작품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그러지 못한 평론은, 적어도 지금 시대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새로운 재즈에 대해서 블루스와 스윙이 결여되어 있다고 평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것은 게으르고 나태한 음악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40년 전쯤에는 들을만 한 이야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감상자들이 음악을 선택하고 감상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데이비드 샌본이 세상을 떠나자 SNS에 올라온 유독 많은 추모의 글들을 보면서 난 조금 놀랐다. , 이렇게 많은 재즈 팬이 데이비드 샌본을 아끼고 있었나? 그것은 으레 유명인이 세상을 떠나면 나타나는 사람들의 반응일까, 아니면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도 그에게 인색했던 평론계에 속한 나 같은 사람이 전혀 헤아리지 못했던 현상일까? 그가 그토록 지지를 받는 음악가였다면 국내외에서 그와 같은 퓨전 스타일의 밴드는 왜 이제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일까. 그의 독특한 음색을 계승한 색소포니스트는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의 우상이었던 알토 주자 행크 크로퍼드는 왜 잊힌 존재가 된 것일까.

 

재즈의 역사는 매우 급진적이었다. 그 급진의 에너지가 120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조를 낳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명인들은 빛을 보지도 못한 채 묘지에 묻히기 일쑤였으며 그리 크지 않은 재즈의 시장은 동시대의 장인들마저도 은둔, 망명, 은퇴의 사지로 몰아넣었다. 다행히도 샌본은 그 험난한 세상에서 현역 연주자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를 적자(適者)로 만들었던 다양성은 때로는 단일한 잣대로 너무 가볍게 평가된다. 그리고 그러한 가벼운 평가가 재즈를 너무도 삭막한 환경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예술가의 영전 앞에서 시시비비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예의 바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샌본이 세상을 떠난 지 이미 한 달 그리고 보름의 시간이 흘러간 지금 샌본의 음악은 우리에게 이 점을 말해주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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