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랜포드 마살리스 쿼텟(Branford Marsalis Quartet) - 시대 초월한 재즈의 가치 바로 여기에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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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조이 칼데라조, 에릭 레비스, 브랜포드 마살리스, 저스틴 폴크너
Branford Marsalis Quartet
50년전 선배들이 남긴 걸작에 대한 압도적 재해석
시대 초월한 재즈의 가치 바로 여기에
2019년 이후 만 6년만에 새로운 신작으로 돌아온 브랜포드 마살리스와 그의 오랜 팀메이트인 쿼텟 멤버들. 피아니스트 조이 칼데라조, 베이시스트 에릭 레비스, 드러머 저스틴 폴크너의 라인업이 다시금 뭉쳤습니다. 그것도 커리어 처음으로 블루 노트 레이블과 마살리스 뮤직이 계약을 체결해 블루노트 레이블 소속으로 첫 앨범을 발표한다는 소식까지 더해졌죠. 절친이었던 건반주자 케니 커클랜드의 사망 이후 새롭게 시작된 이 쿼텟 라인업은 길게 따져보면 26년이 되지만(팀 내에 막내격인 드러머 저스틴 폴크너의 가입이 2009년에 이뤄졌기에 최종 라인업으로 고려하면 16년째가 됩니다) 여전히 서로에 대한 음악적 연결고리가 확고하고 단단합니다. 멤버들 각자 자신의 작업 및 주변 동료들과의 교류를 자유롭게 이어가다 함께 해나가야 할 아이디어가 포착되면 바로 소집되어 단단한 팀워크를 행사하는 이들은 재즈 그룹이 장기적으로 팀을 운영해나갈 수 있는 좋은 방식을 가져가는 중이라고 봅니다. 꾸준히 그들의 새로운 작업을 기다려온 필자와 같은 팬들의 입장에서도 아주 바람직한 시도로 보이고요. 그런데 이번 새 앨범 작업은 너무 의외이고 또 놀랍기만 합니다. 특정 한 앨범을 통째로 고스란히 다시 재연하는 시도라니요?
글/MMJAZZ 편집장 김희준 사진/Jack Smith, Eric Ryan Anderson, Blue Note Rec.
전혀 예상치 못한 의외의 프로젝트
아마 어느 누구도 이렇게 앨범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당대 최고의 재즈 색소포니스트이자 재즈 신의 보기 드문 엘리트 가문이라고 일컬어지는 마살리스가의 맏형이기도 한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새로이 발표하는 정규 앨범이 자신들의 오리지널 하나 없이 기존의 타 뮤지션 작품을 그대로 가져와 연주한다?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죠. 재즈사 전체를 놓고 봐도 이는 흔치 않은 경우에 해당됩니다. 특정 뮤지션들이 마음에 드는 곡 한 두개를 리메이크 하거나 선배 레전드 뮤지션의 전체 작품 리스트들 가운데서 곡을 셀렉션해 헌정 형태의 앨범으로 만들어내는 경우야 종종 있는 일이지만 특정 앨범 전체를 트랙 순서까지 그대로 가져와 연주한 경우가 지금까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재즈사에 길이 남을 여러 명반들 중에서도 가장 명성이 높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 조차 이런 식으로 후대에 작업이 이뤄진 경우가 트롬본 연주자이자 작,편곡가인 콘라드 허윅(Conrad Herwig)이 2004년도에 발표한 <Another Kind of Blue : The Latin Side of Miles Davis> 정도인데 이건 컨셉트 및 악기 구성, 편곡 방향에서 확연하게 원작과 구별이 되기에 의도자체가 잘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Belonging>의 경우는 이와는 사뭇 다르죠. 밴드 구성 및 악기 편성까지 동일합니다. 편곡에서 새롭게 재해석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해도 다소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점이 보이는 프로젝트를 선택한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그런데 돌이켜보면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작품들에서 이와 다소 비슷한 경우가 딱 한번 있긴 했었습니다. 바로 2002년도에 발매되었던 <Footsteps of Our Father>인데, 여기에서 그는 소니 롤린스의 커리어 초기 58년도 명반 <Freedom Suite>에 담긴 동명의 트랙과 존 콜트레인의 역사적인 거작 <A Love Supreme> 수록곡 전체를 담아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품은 그 외에도 오넷 콜맨과 존 루이스 곡들을 추가로 포함시켜서 어느 한작품으로만 트랙이 채워지는 걸 피했습니다. 허나 이번 새 앨범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특정 앨범 한 작품의 전체 수록곡들로만 채워 앨범 전체를 그대로 리메이크한, 실로 재즈 신에서 아주 예외적인 시도가 이뤄진 작품인 겁니다.
브랜포드는 이런 독특하고도 생경한 시도에 대해 앨범 라이너노트에 아래와 같은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에 처음 들어간 해 키스 재럿의 유러피안 쿼텟 앨범 <Belonging>을 처음 들었다. 당시 난 R&B에 매료되어 듣곤 하던 어린 학생이었는데 케니 커클랜드가 이 앨범을 소개해주기 전까지는 작품의 존재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이 작품을 듣고나서 비로소 재즈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후 80년대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을 하면서 당시 함께 활동해오던 케니가 네게 이 쿼텟이 발표한 또 다른 앨범 <My Song>을 들려주었는데 이 앨범을 듣고 난 뒤 무척이나 큰 감동을 받아 레코드 샵으로 달려가 이 팀이 발표한 5개의 작품을 모두 구입했었다
그렇게 키스 재럿의 유러피안 쿼텟에 빠져들었던 젊은 시절의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40년이 훌쩍 지난 2019년도에 발표한 자신들의 앨범 <The Secret Between the Shadow & the Soul> 에 The Windup 을 수록한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과정이었겠죠. 그런데 그 곡의 녹음을 마친 뒤 앨범 수록곡을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팀 메이트인 베이시스트 에릭 레비스가 브랜포드에게 '이곡 하나만 녹음할 게 아니라 <Belonging> 앨범 전체를 녹음해야한다'고 제안을 하게 되죠. "이 앨범 전체가 너무나 훌륭하며 우리 모두 이 앨범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좋아합니다. 그 이후 코로나 펜데믹이 찾아와 잠시 이 아이디어는 소강상태를 맞이했으나 펜데믹이 끝난 뒤에도 우리들 네 명은 이 작업을 계속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죠"
여기서 잠시 시간을 돌려 키스 재럿이 유러피안 쿼텟을 결성하게 되는 시점으로 되돌아가 봅시다. 키스 재럿이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의 레코딩 제안을 받고 나서 ECM 레이블과 첫 인연을 맺은 게 1971년 11월 경 부터이고 유러피안 쿼텟 멤버인 색소포니스트 얀 가바렉과 함께 교류를 시작한 것은 이듬해인 1972년입니다.(두 사람의 음악적 교류를 제안한 것 역시 만프레드 아이허였습니다) 이후 베이시스트 팔레 다니엘손과 드러머 욘 크리스텐센이 참여한 게 1973년이고 첫 레코딩이 이뤄진 게 바로 이듬해인 1974년도에 공개된 <Belonging>인데, 이 앨범은 키스 재럿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만들어낸 첫 작품이며 밴드의 합도 1년여 정도 밖에 되지 않은 20대 중반의 젊은 뮤지션들이 의기투합한 첫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만큼 신선하고 풋풋한 에너지가 작품 안에 감돌고 있죠.
키스 재럿이 이끌었던 유러피안 쿼텟 라인업 (좌로부터) 얀 가바렉, 욘 크리스텐센, 팔레 다니엘손, 키스 재럿
어느 새 발매된 지 만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만, 지금 다시 들어도 음악적 참신함은 여전히 귀를 사로잡으며 특히나 앙상블의 독창적이고 안정적인 합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와 닿습니다. 이 작품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재럿의 매력 만점 작곡능력을 이야기안할 수가 없겠죠. 80년대 중반 이후 피아노 솔로와 스탠더드 트리오 작업에 너무 치중하는 바람에 재럿이 과거 발표해온 훌륭한 작곡이 담긴 곡들이 종종 간과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그는 재즈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임프로바이저임에 분명하지만 더불어 그에 못지않은 걸출한 작곡 능력을 지닌 뮤지션이었습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6곡 모두 재럿의 오리지널인데 간판 트랙이자 스틸리 댄의 도널드 페이건이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자신의 곡에 아이디어를 대폭 무단 차용할 만큼 매력적인 리프와 코드 진행이 담긴 Long As You Know Living You’re Yours 은 심플하면서도 탄력 넘치는 미드템포 8박 록 그루브와 가스펠에 기반한 코드와 멜로디의 진행이 정말이지 들으면 들을수록 귀를 사로잡습니다. Spiral Dance 와 이 앨범의 기획에 발단이 되어준 The Windup 도 마찬가지로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리듬과 하드 밥다운 테마가 일품인 트랙인데 그가 탁월한 멜로디 메이커임과 동시에 놀라운 바운스감을 지닌 그루브 메이커라는 사실을 이 곡들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브랜포드 마살리스와 쿼텟 멤버들 또한 이 작품의 가치가 이 부분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곡을 아예 다른 방식으로 편곡하지 않고 비슷한 템포와 키로 쭉 연주를 이어갑니다. 그럼에도 이번 새 녹음이 원전과 비교해 차별된 가치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브랜포드 마살리스 쿼텟 멤버들 각자의 음악성과 스타일이 담긴 훌륭한 솔로 연주와 압도적인 앙상블 덕분입니다. 얀 가바렉과는 톤과 솔로 진행등 확연한 차이를 가진 가운데 즉흥연주의 빌드 업에서 엄청난 힘과 감동적인 라인을 뽑아내는 브랜포드 마살리스 (Blossom 과 Long as You Know Living you’re Yours The Windup 의 브랜포드 솔로는 정말이지 압권입니다), 이에 감응해 아름다운 컴핑과 즉흥연주로 스토리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조이 칼데라조의 피아노는 재럿의 유산을 아주 잘 취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매코이 타이너에서 이어지는 자신의 피아니즘 또한 균형 있게 강조합니다. 에릭 레비스와 저스틴 폴크너 두 리듬 주자의 실력 또한 두말하면 입 아픈 수준! 복잡한 변박으로 치장한 현란한 박자 쪼개기가 일절 없이 정박으로만 풀어냄에도 단조롭지 않은 멀티포닉과 역동적인 싱코페이션, 디테일한 심벌의 필인과 펑키한 그루브등이 어우러져 다시 한번 브랜포드 마살리스 쿼텟의 진가를 한껏 드높여줍니다. (The Windup 에서 저스틴 폴크너의 드럼은 그저 미쳤다고밖엔 할 말이 없습니다) 차후 본지를 통해 앨범 리뷰를 별도로 다루게 되겠지만 이만한 역량의 거물 아티스트들은 무슨 프로젝트를 하든 평범하게 풀어낼 리가 없죠. 20세기 초 고전 영화의 성공적인 리메이크와도 유사하게 보이는 이 작품은 분명히 브랜포드 마살리스와 키스 재럿 두 뮤지션에게 좋은 후광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Epilogue
필자 개인적으로 이번 브랜포드 마살리스 쿼텟의 <Belonging> 발매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큰 의문이 이들이 왜 이 앨범을 선택했을까? 였습니다. 앞서 앨범을 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직접 그들이 이유를 언급하긴 했지만 그걸 넘어선 본질적인 음악적 동기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미 명반으로 이름이 알려진 이 작품에 추가로 덧대는 것이 안하느니만 못할 위험성이 다분히 있음에도 이 작품을 다시금 재연하고 싶었던 동기가 뭘까? 그것도 앨범 전체를 고스란히 담아내려고 한 이유는? 그 부분에 대한 궁금증을 두 작품을 함께 이어 수차례 들어보고 나니 절로 납득이 가고 선명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지금 시대의 재즈에서 잘 발견되지 않는 훌륭하고도 개성 넘치는 테마 멜로디들, 대중적인 매력도 분명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재즈의 고유한 성격이 잘 발휘된 작곡과 리듬으로 가득 찬 이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재즈가 계속 간직 해 나가야 할 중요한 미덕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이들은 다시금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브랜포드는 입버릇처럼 재즈에서 좋은 작곡과 멜로디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해왔죠. 지나치게 이론에 함몰된 현대 재즈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오래 전부터 주장해온 대표적인 뮤지션 가운데 한명입니다) 그걸 키스 재럿의 특정 곡 한 두 개가 아니라 아예 자신이 젊은 시절 매료되어 재즈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던 해당 작품을 통째로 가져와 팀 멤버들과 함께 재현함으로서 그들의 음악적 출발점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 지를 선명히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조만간 이어질 브랜포드 마살리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부분에 대한 질의를 주고받을 예정이지만 아마도 이런 의도가 분명 깔려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선배들의 유산에 자신들이 오랫동안 함께 해오면서 쌓아온 즉흥 언어의 풍성함과 팀워크의 탄탄함을 덧대어 냄으로서 선배의 걸작에 대한 존중과 자신들이 쌓아온 음악적 성취를 균형감 있게 보여준 브랜포드 마살리스와 그의 쿼텟 멤버들! 자칫 위험해질 수 있는 시도를 스스로에 대한 솔직함과 자신감을 담은 정공법으로 깔끔하게 돌파해나간 이들의 현명한 고집에 다시금 열렬히 박수를 보냅니다. 역시 당대 최고의 재즈 캄보라는 평가를 받아 마땅한 팀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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