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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 골슨(Benny Golson) 추모 칼럼 - 우리는 베니를 기억합니다(We Remember Benny!)
- Joh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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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bute Special
베니 골슨(Benny Golson) 1929.1 ~ 2024.9
우리는 베니를 기억합니다. We Remember Benny
1956년 세상을 떠난 트럼펫 주자 클리퍼드 브라운을 위해 프레스티지 레코드가 발매한 [클리퍼드 브라운 추모 앨범 Clifford Brown Memorial]에는 클리퍼드가 1953년에 속했던 두 밴드의 녹음이 남겨 있다. 그중 첫 번째 밴드는 1953년 6월에 녹음을 남긴 태드 데머런 9중주단으로, 여기에 속한 클리퍼드는 데머런 밴드의 간판 주자였던 패츠 나바로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연주자는 클리퍼드 브라운, 이드리스 술리먼 (이상 트럼펫), 허브 멀린스 (트롬본), 지지 그라이스 (알토 색스), 베니 골슨 (테너 색스), 오스카 에스텔 (바리톤 색스), 태드 데머런 (피아노), 퍼시 히스 (베이스), 필리 조 존스 (드럼)로 짜였다.
이 밴드는 오늘날의 시각에서는 화려했지만 불행히도 단명하고 말았다. 자신의 빅밴드를 젊고 새로운 멤버로 일신하고 싶었던 라이어널 햄프턴이 데머런 밴드의 클리퍼드 브라운, 지지 그라이스, 오스카 에스텔을 영입해 유럽 투어를 떠난 것이다. 새로운 멤버들은 햄프턴 빅밴드에서 아트 파머, 퀸시 존스(이상 트럼펫)와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 젊은 연주자들은 햄프턴과는 다르게 완벽한 모더니스트들이었다. 개별 활동을 금지한다는 햄프턴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 비바퍼들은 2개월 동안의 투어 속에서 유럽의 젊은 연주자들과 여러 장의 음반들을 녹음했다(특히 클리퍼드와 지지 그라이스는 CD 석 장 분량의 녹음을 프랑스 보그 레코드에서 녹음했다). [클리퍼드 브라운 추모앨범]에 실린 클리퍼드 브라운-아트 파머 올스타스의 ’53년 9월, 스웨덴 녹음도 그 일부분이다.
1959년 재즈텟을 결성, 이후 평생에 걸쳐 음악적, 인간적 관계를 이어온 절친 트럼페터 아트 파머와 함께한 베니 골슨. 1961년도
1953년 테드 데머런, 라이오널 햄프턴 두 밴드의 연주자들은 이후 전개될 모던재즈의 중요한 한 부분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태드 데머런을 시작으로 클리퍼드 브라운, 아트 파머, 퀸시 존스, 지지 그라이스, 베니 골슨, 퍼시 히스, 필리 조 존스는 모던재즈에서 독특한 계보를 만들어 간 동지였다. 그들은 모두 강렬한 스윙을 구사하는 하드 바퍼였으면서 데머런이 그랬던 것처럼 정교한 작곡과 편곡을 추구했던 섬세한 장인들이었다.
그들은 늘 함께했다. 아트 파머는 베니 골슨과 재즈텟을 결성해 인생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전에는 지지 그라이스와 퀸텟을 꾸렸다. 이후 지지는 클리퍼드의 후계자 도널드 버드를 만나 재즈랩을 결성했고 퀸시 존스는 1959년 의욕적인 자신의 빅밴드를 결성하면서 역시 아트 파머와 베니 골슨을 영입했다. 필리 조는 데머런의 음악을 계승한 밴드 데머러니아를 창단해 만년의 에너지를 쏟아 부었고 클리퍼드 브라운도 단 2년의 시간으로 막을 내린 맥스 로치 와의 5중주 활동 속에서 데머런의 <The Scene is Clean>, <Flossie Lou>, 골슨의 <Step Lightly>를 녹음했는데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베니 골슨의 명곡 <Stablemates>가 의미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그는 그 무렵에 함께했던 동지들에게 이 곡을 바쳤다. 이 곡을 1955년에 최초로 녹음했던 마일스 데이비스는 자신의 퀸텟 멤버이자 필라델피아 출신으로 베니 골슨과 친구였던 필리 조, 레드 갈런드, 존 콜트레인을 통해 이 곡을 손에 넣었다. 그러므로 클리퍼드 브라운이 세상을 떠났을 때 또 다른 명곡 <I Remember Clifford>가 베니 골슨의 펜 끝에서 나왔다는 점은 당연하다. 골슨은 비통한 마음으로 동료를 위한 진혼곡을 썼고 클리퍼드의 또 다른 후계자 리 모건의 트럼펫 연주를 통해 1957년에 첫 녹음을 남겼다.
[A Great Day in Harlem] 총 57명의 재즈 레전드들이 할렘가에 함께 모여 카메라에 담겨진 순간. 1958년도
모던재즈의 동지들과 마지막 생존자
그런 점에서 지난 9월 21일, 95세의 일기로 눈을 감은 베니 골슨은 퀸시 존스와 함께 이 동지들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그를 영입했던 위대한 밴드 리더들- 햄프턴, 데머런, 디지 길레스피, 아트 블레이키 –은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되었으며 그와 재즈계에서 함께 성장한 필라델피아의 선후배들- 필리 조, 레드 갈런드, 히스 형제들(퍼시, 지미, 앨버트), 트레인, 지미 머릿, 레이 브라이언트, 보비 티먼스, 리 모건, 매코이 타이너 – 도 모두 먼저 세상을 떴다. 그와 함께 재즈텟을 이끌었던 아트 파머와 커티스 풀러도 이미 고인이 되었고 1958년 8월 12일 할렘 126번가 중 5번 애비뉴와 매디슨 애비뉴 사이의 블록에서 사진작가 아트 케인의 카메라 앞에 모였던 쉰일곱 명의 재즈 음악인 가운데서 베니 골슨은 소니 롤린스와 함께 살아남은 마지막 생존자였다.
1929년 1월 25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베니의 소년 시절은 짐작하건대 혼란스러운 내적인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여덟 살 때 삼촌과 함께 조지아주로 간 여행에서 소년은 처음으로 인종차별을 경험했고 그럼에도 이듬해 집에서 장만한 업라이트 피아노로 피아노를 배우면서 쇼팽과 브람스를 연주하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몇 해 후 자신의 음악을 발견했다. 열세 살 때 할렘의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를 방문해 그때 막 태동하던 비밥을 목격했고 이듬해에 필라델피아에서 있었던 라이어널 햄프턴 빅밴드의 공연에서 테너 색소폰 연주자 아넷 콥의 연주를 듣고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버리고 색소포니스트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하워드 대학에 진학한 베니 골슨은 졸업하기 전에 이미 직업 연주자가 되어 있었다. 1953년 테드 데머런 밴드에 가입한 그는 ’56년에 라이널 햄프턴 빅밴드로 자리를 옮겼고 1년 후 그는 디지 길레스피 빅밴드에 입단하면서 모던재즈의 중심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퀸시 존스는 그보다 1년 먼저 디지 빅밴드에 입단했다). 이미 그 시기에 그의 작품은 밴드의 주요 레퍼토리가 되어 있었다. <Stablemates>, <Step Lightly>, <I Remember Clifford>, <Whisper Not>, <Out Of The Past> 등은 디지 빅밴드 시절에 이미 발표한 그의 대표곡들이다.
그리고 또다시 1년 후인 ’58년 베니 골슨은 디지 밴드의 동료였던 리 모건과 함께 아트 블레이키의 재즈 메신저스로 자리를 옮겨 소편성 밴드의 색소포니스트로서 보다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의 명곡들은 멈추지 않았다. <Are You Real>, <Along Came Betty>, <Blues March> 등 당시 재즈 메신저스의 대표곡들은 다수가 베니 골슨의 악보에서 출발했다.
아트 블레이키와 재즈 메신저스에 베니 골슨이 몸담던 순간. 1959년도
1955년부터 ’58년까지 대략 3년 동안에 한 사람의 작곡가가 쓴 곡이 재즈 연주자들 사이에서 이토록 즐겨 연주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든데, 밴드 리더도 아니었던 베니의 작품이 이토록 환영받은 것은 오로지 그의 작품의 매력 때문이었다. 평론가 레너드 페더가 지적했던 것처럼 그의 선율은 마치 파퓰러 송 작곡가가 쓴 곡처럼 솔직하고 선명하게 귀에 꽂힌다. 그래서 그의 많은 곡은 이미 가사와 함께 보컬 곡으로 만들어졌거나 이후에 노랫말이 붙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화성 전개는 미묘하고 세련되어서 상투적이거나 통속적으로 흐르지 않았다. 오히려 반복해서 그의 곡을 자꾸 듣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곡은 모던재즈 시대의 작품이면서도 동시에 아메리칸 송북의 전통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직접적으로 태드 데머런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었다.
데머런의 전통을 이은 중도주의
어떤 면에서 비밥의 극단성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 그의 작품들은 테너 색소폰 연주에도 일정 정도 반영되었다. 1950년대 테너 색소폰 연주자들은, 알토 색소폰과는 다르게, 크게 두 종류로 나뉘었다. 비밥 스타일을 중심에 놓고 이전 시대의 스타일을 일정 정도 수용한 테너맨들과 비밥을 출발점으로 이후의 스타일을 개척해 간 연주자들이다. 전자에 속한 연주자들로는 덱스터 고든, 러키 톰슨, 소니 롤린스 등이 있고 후자에 속한 연주자들로는 존 콜트레인, 지미 히스, 조니 그리핀 등을 들 수 있다. 베니 골슨은 전자에 속했다. 그의 음색은 따뜻했으며 그의 프레이즈에서는 콜먼 호킨스, 돈 바이어스 등 비밥 이전 시대의 향기가 묻어났다. 그래서 그의 연주는 리 모건의 하드 블로잉 혹은 아트 파머의 릴리시즘과도 멋진 콘트라스트를 만들어 냈으며 중저음의 커티스 풀러의 트롬본과는 풍성한 화음을 만들어 냈다.
아트 파머, 커티스 풀러와 함께 재즈텟으로 공연하는 베니 골슨. 1995년도
2막에서 완성된 전설
하지만 그의 중도 노선은 1950년대 말부터 이미 불길한 예감을 만났다. 1959년에 결성한 아트 파머-베니 골슨 재즈텟이 파이브 스팟 클럽에서 뉴욕 데뷔 무대를 가졌을 때 LA에서 활동하던 오넷 콜먼 쿼텟 역시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재즈텟과 번갈아 무대에 올라 뉴욕 데뷔 무대를 갖게 된 것이다. 관객들과 언론의 관심은 온통 오넷 콜먼에게 쏠렸다. 재즈텟은 데뷔 무대의 쓰라림을 딛고 의욕적으로 활동했지만 결국 1962년을 끝으로 해산해야 했다.
콜트레인이 아방가르드로 점차 기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전위주의에 대한 골슨의 반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결국 재즈계를 떠나 할리우드에서 TV, 광고 음악계에 몸담게 되는데 비슷한 시기에 퀸시 존스, 올리버 넬슨, 랄로 시프린 모두 뉴욕을 떠나 할리우드로 왔으며 조금 뒤늦게 J. J. 존슨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재즈를 떠나야 했고 미국에서의 재즈는 그만큼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동료 지지 그라이스와 마찬가지로 베니 골슨이 ’60년대에 재즈계를 영원히 떠났다면 전설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0년을 전후해서 재즈계에 복귀한 골슨은 아트 파머와 재즈텟을 재결성하고 다시 재즈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이후 스무 장 가까운 앨범 속에서 발표한 새로운 작품과 편곡은 쉬지 않는 그의 창작의 에너지를 보여주었다. 과거와 같은 파워는 아니었지만 점점 더 무르익어 가는 그의 테너 사운드는 노장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대변해 주었는데 복귀 이후 그가 활동한 기간은 무려 35년이 넘었다.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하고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 [터미널 Terminal]에서 베니 골슨은 자기 자신으로 출연해 영화의 마지막에 연주를 들려주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감동적인 장면은 그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베니 골슨은 이제 홀로 남은 소니 롤린스처럼 색소폰의 거인으로 추앙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또 재즈 역사에서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낸 혁신가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모던재즈의 황금기와 ’80년대 이후 새로운 전통주의 재즈 음반을 모을 때 베니 골슨의 음반을 지나친다는 것은 건성의 컬렉션이기 쉽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 베니 골슨의 음악은 하나의 정수(精髓)였기 때문이다. 그 정수는 마무리였다. 언젠가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예술에서 가장 큰 성공은 본인이 속한 혈통의 시원(始原)이 아니라 마감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베니 골슨의 음악은 하드 밥을 마감했던 것이다. 버나드 쇼가 “더 이상 개선할 수 없는 상태로 끌어 올린 뒤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모차르트 음악에 대한 평가이자 골슨의 음악에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아직도 매력적인 푸른빛을 내며 빛난다. 마치 흙 속에서 찾아낸 사파이어처럼. 글/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 사진/Art Kane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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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아트 파머, 커티스 풀러와 함께 재즈텟으로 공연하는 베니 골슨. 1995년도.jpg (File Size: 342.2KB/Download: 0)
- 6 스티블 스필버그 감독, 톰 행크스와 캐서린 제타존스 주연의 영화 [Terminal] 포스터.jpg (File Size: 137.9KB/Download: 0)